떼아모 쿠바 시즌 투 10. 살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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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모 쿠바 시즌 투 10. 살사와 나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흥부자 히스토리 

어린 시절의 나오미는 여간 잔망스러운게 아니었다. 성격은 지금과 정반대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내재되어 있는 '흥부자'의 끼는 감출 수가 없었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의 노래와 춤 동작은 모조리 외웠다. 집에서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혼자서 룰라의 멤버가 되었다가, 조금 뒤엔 투투가 되었다가, 또 한참 뒤엔 영턱스클럽이 되었다. (독자들께서 내가 지금 나열하고 있는 가수들을 모른다면 전혀 비슷하진 않지만 마마무, 여자친구, 블랙핑크로 대체하면 이해에 좀 도움이 되리라.) 

초등학교 소풍이나 야영 때 장기자랑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이었다. 나는 늘 팀을 구성하여 친구들에게 안무를 가르치고 함께 무대에 섰다. 센터는 당연히 나였다. 대학교 때 나는 봉사동아리의 간부였다. 일주일에 한번 다 같이 노인복지관에 가서 목욕 및 청소봉사를 했고 격주로 어르신들과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다. 물론 진행자는 나였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초기 치매 증세를 갖고 계신 분들이라 격렬하고 어려운 동작은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통장은 텅텅 빈 텅장이지만 흥만큼은 흘러넘치는 흥부자 아닌가? 처음엔 관심 없는 척하시거나 수줍어서 미소만 짓던 어르신들도 어느새 덩실덩실 춤을 추게 만들었다. 

 춤을 좋아하고 즐기던 내가 춤추기를 꺼리게 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였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신입일 때만 해도 연말 망년회때 신규 간호사들은 같은 부서 일원들 앞에서 춤을 선보여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자발적으로 안무를 짜고 무대를 꾸미던 나였으니, 그 끼가 어디가겠는가. 당시 유행했던 댄스곡 3곡 정도를 매쉬업해서 꽁트 형태로 무대를 완성했다. 

하지만 조직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염두해야 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결코, 튀지 말 것. 관리자의 눈에 들지 말 것. 이 무대 이후로 나는 각종 대내, 대외 행사 때 마다 무대에 서야했다. '부탁 좀 할게'라는 말에는 강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거절 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나는 늘 거절하지 못했다. 

호텔 강당에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서양인들 앞에서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를 추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춤 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음악에 맞춰 흔들거리는 모든 행위를 멈췄다.

일러스트 이민

나의 살사 정복기 

흥을 잃었던 나의 금무(禁舞) 인생은 길지 않았다. 2010년 쿠바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오늘 클럽에 실력있는 가수가 온대"라는 말 한마디에 클럽을 방문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그 클럽에는 최고로 멋을 부린 쿠바노, 쿠바나들이 꽉 차 있었다. 

드디어 가수가 등장했다. 무슨 내용의 노래인지, 그 가수가 누구인지 전혀 정보가 없었지만 나는 그 에게 정말이지 홀딱 빠지고 말았다. 150kg은 가뿐히 넘길 거구의 가수는 3시간 동안 단 1분의 휴식시간도 없이 격렬하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만난 가수는 쿠바의 국민 가수 아바나 드 쁘리메라(habana d'primera)라는 그룹의 보컬 알렉산더 아브류(alexander abreu)였다. 이건 마치 뭣 모르고 갔던 콘서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조용필이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 쿠바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들었던 쿠바 음악이 이렇게 수준 높았으니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바나 드 쁘리메라 공연 현장

그가 세 시간 내리 열창했던 음악의 장르는 바로 '살사'였다. 알렉산더의 라이브 음악에 흥이 하늘까지 뻗친 쿠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춤사위를 뽐냈다. 나도 그들처럼 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정해진 스텝과 파트너와의 호흡이 필수인 춤이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춤추는 이들의 발을 스캔하여 기본 스텝을 혼자 열심히 밟았다. 아! 너무 재밌어! 흥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이렇게 나는 살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작은 가정집 거실에서 살사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첫 살사 선생과는 어처구니 없는 로맨스로 이어져 최악의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지만(떼아모 쿠바 시즌 투 6. 최악의 연애 편 참조) 그래도 살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사에 대한 열정이 치솟아서 춤에 열정이 있고 실력있는 좋은 강사에게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여행자 거리에서 만난 살사 강사들과 클럽에서 만난 강사들은, 뭐랄까. 열정이 없었다. 잠깐 스치는 여행자에게 기본스 텝만 대강 가르치고 시간을 때우려는 부류가 많았다. 

그러다 마음에 쏙 드는 강사를 소개받았다. 당시 묵었던 까사 주인 아들 R의 절친 A라는 친구였다. 살사스텝에 관한 정규 과정을 배운 게 아니라 길에서 춤을 추고 배웠다는 이 친구는 춤을 정말 사랑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쿠바의 그 누구보다 춤을 잘 췄다. 

A의 첫 수업은 여타의 강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악에 맞추어 준비 운동을 하고. 가볍게 몸을 풀며 기본 스텝을 함께 추었다. 나의 기본실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웬만한 강사들에게 수업을 들으면 늘 칭찬을 들었기에 그와의 첫 수업에서도 이미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A는 철저히 깔아뭉갰다. 그는 내게 살사 음악 듣는 방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음악에 등장하는 각종 악기들의 소리와 규칙성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감고 음악을 분석했다. 리드하는 남자 파트너 없이도 첫 동작의 첫 스텝이 들어가는 순간을 당당히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는 유연성이었다. 날적부터 웨이브를 하며 태어나는 쿠바노와 달리 평생을 목석 같이 직립보행만 하며 살아왔던 나였기에,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동작들은 정말이지 난코스였다. 그는 웨이브를 못하는 내게 몸을 움직이는 기본 원리를 설명했다. 그래도 내가 못 따라가자, 한 시간 동안 의자 등받이를 잡고 앉아 상체를 돌리게 했다. 그렇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자 언젠가부터 나의 상체와 하체를 의지대로 분리하기도 하고 고정하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게 됐다. 

A와의 웨이브 특훈

A는 열정 또한 일품이었다. 본인이 당일 가르쳐준 스텝이나 동작들을 내가 마스터 할 때까지 수업을 끝내지 않았다. 하루 2시간 레슨비를 지급하고도 나는 항상 3시간을 채워서 수업을 했다. 레슨이 끝난 뒤엔 녹초가 되어 까사까지는 거의 사족보행으로 기어가야만 했다. 

반면 잘 때 꿈도 춤추는 꿈을 꾼다던 A는 나의 레슨이 끝나면 다른 한국인 친구의 레슨을 곧장 이어서 했다. 모든 레슨이 끝난 뒤엔 내게 묻곤 했다. 

"우리 오늘 다 같이 클럽 가서 춤 추고 놀래?"

보통 쿠바의 살사 강사들은 함께 클럽에 가는 것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쿠바에서 살사는 이제 철저히 관광객을 상대로 한 관광 유치 수단으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A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클럽을 갈 수 있었던 나는 공짜로 실전 연습이 가능했고, 관심병이 있던 A는 본인과 호흡이 척척 맞는 동양인 파트너 덕분에 세간의 집중을 받아 서로에게 매우 흡족한 나들이가 되었다. 

일상에서의 소통, 살사

A는 몇년 새 월등히 성장했다. 댄스 컴퍼니의 오너에게 춤 실력을 인정 받아 유럽에 원정 공연 및 강연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 바빠진 그는 이제 더 이상 내 차지가 아니다. 겸사겸사 여러 가지 이유로 그와의 살사 레슨은 종결되었다. 

쿠바를 방문할 때마다 취미 삼아 다른 강사들에게 레슨을 몇 번 받았다. 그리고 나서 깨달았다. 어차피 파트너가 바뀌면 이전에 배운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것. 살사는 파트너와의 교감이 중요한 것이지, 나의 욕심만 앞선다고 완성되는 춤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과시하기 위한 댄스는 싫었다. 누군가에게 주목 받지 않아도 되니, 쿠바노들처럼 일상에서 이웃들과 친구들과 신나게 살사를 추고 싶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뭔지 깨달았다. 로컬의 살사였다. 

한편 애인 O군과의 살사 호흡은 수년째 안 맞는 중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손을 잡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분명 나는 박자를 정확히 셌는데 그와 한 박자씩 스텝이 어긋났고 그러다 보면 꼭 춤이 끊겼다. O군은 늘 "난 너처럼 살사를 출 줄 몰라. 미안해"라고 말하며 나와 춤을 잘 추지 않으려 했다. 그와 함께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춤을 추는 것을 목표로 로컬의 살사를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로컬의 살사를 정복하는 건 조금 더 난코스였다. 알기 쉽게 박자를 정확히 끊어서 동작 하나하나를 가르쳐 주는 강사들과 달리 일반인들은 '설명하는 스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날적부터 가능했던 일들이니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왜 안 되지?" 하고 의아해 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 진전 없는 싸움에 지쳐갈 즈음 내 앞에 귀인이 나타났다. O군의 어머니이자 나의 우상인 마리엘라! 잠잘 때 빼곤 늘상 춤을 추며 살아온 그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의 원포인트 강의 덕분에 내가 그동안 놓치고 헤맸던 부분에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드디어! O군과 노래 한곡이 끝날 때까지 끊기지 않고 함께 살사를 추는데 성공했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남자 파트너와 난생 처음 춤 추는 사람처럼 잔뜩 굳어서 췄지만 말이다. 호흡이 어느 정도 맞자, 이제 O군도 나와 춤 추는 것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는 클럽에 가서 함께 어찌나 춤을 많이 췄던지!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가장 행복한 건 O군 뿐만 아니라 그의 삼촌, 삼촌의 이웃 아저씨, 클럽에서 처음 만난 할아버지까지 쿠바의 일반인들과 언제든 살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쿠바노들의 삶에서 음악과 춤은 공기처럼 뗄 수 없는 필수적 존재이다. 잘 추고 못 추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나도 그들처럼 한 공간 안에서 살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한없이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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