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투 11. 외로움이 부른 폭식대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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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모 쿠바 시즌 투 11. 외로움이 부른 폭식대참사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오늘의 에피소드 역시 내 쿠바 역사의 황금기 2013년에 있었던 일이다. 2개월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쿠바를 못 잊어 한 달 만에 쿠바에 돌아갔던 시점이다. 

O군과 연애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때였지만 그를 볼 수 있는 시간보다는 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O군의 직업 특성상 이틀에 한번 밤에만 데이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냈고, 매일 맞이하는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지만, 이따금씩 고개를 내미는 외로움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난 항상 허기가 졌다.

그러다 한번 대박으로 입이 터지는 사례가 발생했다. 까사에서 장기체류를 하다 보니 오고 가는 여행객들과 종종 까사를 쉐어했는데, 한동안 마음을 나누고 지냈던 일행이 떠난 후 빈자리가 컸다. 그 외로움이 입으로 터지게 된 것이다. 

처음엔 이러다 말겠거니 했다. 혹시 생리 전 증후군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도 같다. 쉐어인이 떠난 지 이틀째였다. 아침식사 한 지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은 밥심인데 아침마다 빵과 달걀을 먹으니 허기가 금방 찾아오는구나' 하고 짐작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즐겨 찾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새우요리를 주문했다. 쿠바의 쿡 레스토랑은 1인분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그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새우를 남김없이 입으로 쓸어담았다. 그런데도 어쩐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맛있게 먹었는데도 말이다. 

푸짐한 새우요리

'달콤한 티라미수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다면 이 허기가 달래질 것 같은데!' 디저트 불모지 쿠바에서 그런 고급 진 케이크를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뭐라도 입을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구 시가지를 뱅뱅 돌았지만 마음에 드는 디저트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츄러스 노점으로 향했다. 긴 줄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 설탕 가득 뿌린 츄러스를 받았고 바로 그 옆 초콜릿 드링크를 파는 장소로 이동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그곳에서 핫초코를 한잔 시킨 후 방금 구운 따끈한 츄러스를 콕콕 찍어 입으로 연실 가져갔다. 티라미수 같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은 아니지만 당시 쿠바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언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머리를 탁 스쳤다.

그래!!! 망고 빙수를 만드는 거야!!!!

나 홀로 요리대첩이 시작되었다.

일러스트 이민

쿠바에서 나홀로 '삼시세끼'

시작은 단순한 망고 빙수였다. 머릿속에 빙수의 이미지를 떠올린 후 장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향했다. 5월의 쿠바는 한참 망고철이라 잘 익은 애플망고 장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애플망고를 획득한 뒤 연유와 우유를 구하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을 돌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무역의 통로가 비좁았던 쿠바에서는 원하는 때에 원하는 물건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운 좋게 연유 캔을 구했지만 우유는 마주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 우유가루를 구매했다. 

모든 재료를 구비하자 마음이 설레어 견딜 수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까사로 돌아왔다. 우유가루에 물을 타서 우유를 만들었다. 약간 비릿하고 낯선 맛이었지만 일단 얼려보기로 결정! 제빙기가 없으니 살짝 얼린 뒤 포크로 삭삭 긁기로 했다. 우유를 냉동실에 넣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허기가 나를 또 찾아왔다. 망고빙수 재료를 구하기 위해 너무 움직였나보다.

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향했다. 멀리 나가기는 지쳐서 집 근처 리어카에서 고구마, 오이, 당근을 획득했다. 까사로 돌아와 달걀과 고구마를 삶고 오이와 당근을 초고속으로 다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의 첫 끼인 양 설레는 마음으로 채소를 다졌던 것 같다. 삶은 고구마와 달걀을 포크로 눌러 마구 으깬 뒤 깨달았다.

아뿔싸! 마요네즈가 없구나!

냉장고에 재료를 넣은 후 나는 또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두 군데의 슈퍼마켓을 돌아 운 좋게 마요네즈를 발견했다. 길에서 헤매는 동안 적당히 식은 고구마와 달걀에 마요네즈와 설탕을 투하! 아까 다져둔 채소까지 투척! 마구 섞어주니 고구마 샐러드가 완성되었다. 

힘들게 맛 본 고구마 샐러드

고구마 샐러드를 빵 사이에 잔뜩 발라 입으로 직행하니 오득오득 씹히는 채소가 일품이다. 행복하다! 너무 맛있다. 샐러드 빵 하나를 먹기 위해 쿠바에서 내가 한 노력이 너무도 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하루 종일 허했던 마음이 달래지는 기분이었다. 

마무리로 오늘의 야심작 망고빙수를 먹어주었다. 열심히 포크로 갈아 둔 우유 얼음이 쿠바의 더운 공기로 인해 금세 녹아버렸지만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하루종일 입에 음식을 달고 살았지만 계속 허기가 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익숙한 음식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내일은 만두를 빚어 먹는 거야!

욕망의 망고빙수

사서 고생!
쿠바에서 명절 증후군 체험하기

아침이 밝자, 비장한 각오로 눈을 떴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장바구니와 어제 미리 적어 둔 재료 목록을 챙겨 까사를 나섰다. 구 시가지에서 가장 큰 마켓 두 군데를 가장 먼저 들러 볼 생각에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운좋게 중국 간장과 밀가루를 손에 넣었다. 반나절 동안은 찾아다닐 각오를 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고 나니 오늘의 만두는 운명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돼지고기를 다져 넣을 생각이었는데 마트에서 다진 소고기를 발견했다. 쿠바에서는 소와 말은 국가에서 통제를 하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식재료다. 이건 대박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소를 사기위해 구 시가지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갔다. 아쉽게도 숙주를 구할 수가 없어 양배추와 양파 그리고 마늘만 사서 까사로 돌아왔다.

찜닭을 해먹기 위해 한국에서 챙겨 온 당면을 만두에 양보하기로 결심했다. 당면을 물에 불리고, 다진 소고기에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후 다진 마늘을 넣어 냉장고에 잠시 숙성을 시켰다. 까사에 있는 냄비 중 가장 큰 것을 이용하여 밀가루로 만두피 반죽을 시작했다. 얼마나 치댔을까. 손목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반죽이 쫀득해지길 바라며 베란다에서 잠시 숙성을 시켰다. 양배추와 양파를 가늘게 채 썰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만두 빚을 준비 완료!

구성지게 한 곡 뽑아내고 미각 잃은 장금이 흉내내며 양배추도 집어먹고 혼자 실성한 여자처럼 깔깔대고 웃다가 다시 양배추를 채치고 나니 이미 반나절이 지나있었다. 하루종일 일한 것 같은데 아직 만두 한 조각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베란다에서 숙성시킨 반죽을 동그랗게 썰어 중국간장 병으로 하나씩 밀어 펼치기 시작했다. 만두피 다섯 개쯤을 밀었을 때 나의 구성진 곡조는 쏙 들어가고 욕 방언이 터져 나왔다.

에그 이 미친 생명아. 한국에서도 빚기 싫어서 명절증후군이 걸리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지구 반 바퀴 돌아 여기 와서 만두나 빚고 자빠졌냐! 클럽 가서 살사나 추고 모히또에 랑고스타나 먹으면 되지 무슨 얼어 죽을 만두야 만두는!

아마 옆에 누가 있었다면 혼잣말을 쏟아내는 내 모습에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그렇게 만두피까지 완성되고 나니, 만두의 속 양념을 어떻게 할 지 고민이었다. 다진 소고기를 세 군데에 나누어 담았다. 기본 간만 되어있는 소고기, 중국간장과 참기름을 넣은 소고기, 토마토 퓨레와 치즈조각을 넣은 소고기. 세 가지 버전으로 양념을 하고, 열심히 채 썬 양배추와 양파를 넣어 버무렸다. 

만두 빚기

그리고 드디어!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첫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열심히 치대고 숙성시켰지만 찰기가 부족했던 만두피 탓에 동그랗게 끝을 접어 마는 신공은 선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름 세 가지 속 재료에 맞게 세 가지 버전으로 만두를 빚었다. 

한국에서는 설날에 다섯 개 정도만 빚다가 은근슬쩍 도망가곤 했는데 쿠바에서는 도망가봤자 대신 빚어줄 엄마도 없다.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나 혼자 다 빚어야 한다는 뜻이다. 두 시간 동안 허리 한 번 못 펴고 만두를 빚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번 익혀서 소분하여 냉동까지 해야 한다. 한 접시는 바삭하게 튀겨 까사 주인 R에게 갖다 주었다. 의외로 토마토 퓨레와 치즈를 넣은 만두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완성된 튀김 만두 3종세트

 

다시 까사로 돌아와 밤 9시가 되어서야 나의 첫 만두 시식이 이뤄졌다. 식욕이 탱천하다 못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는구나. 혼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빚은 만두는 10점 만점에 11점으로 맛있었다. 설거지까지 마친 나는 침대에서 떡실신이 되어 잠들었다.

아바나의 나눔 천사

하루종일 빚었던 나의 만두는 쪄 먹고, 튀겨 먹고, 라볶이에 버무려 먹고, 부대찌개에 넣어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치 냉동실에 화수분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두는 계속 나왔다. 

R의 첫 시식으로 내 만두가 남의 입맛에도 잘 맞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여기저기 만두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하는 O군에게 만두 도시락을 갖다 주고, 까사에 숙박하러 온 온갖 나라 여행자들에게 만두를 먹였다. 숙주가 없어 양배추를 썰어 넣었더니 일본 교자와도 맛이 비슷했는지, 어느 일본인 아저씨는 연실 ‘아리가또’를 연발하며 매일 만두를 얻어먹었다. 

그렇게 만두를 함께 나누어 먹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진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의 식사량이 정량으로 돌아왔다. 외로움에서 비롯됐던 나의 폭식대참사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지금은 만두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아마도 2013년에 쿠바에서 평생 먹을 만두를 다 먹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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