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11. 라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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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11. 라 아바나

나오미

살아있는 박물관
라 아바나!

<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대망의 마지막을 장식할 도시. 우리의 종착지는 바로 쿠바의 수도, 산 끄리스또발 데 라 아바나(San Cristóbal de la Habana), 줄여서 라 아바나라 불리우는 곳이다. 우리에겐 영어식 발음인 하바나가 더 익숙할 것이나, 현지인들은 관사는 생략하고 스페인어 발음으로 아바나라고 부른다.  

라 아바나는 1519년 11월 16일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다. 그들은 멕시코 만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라 아바나를 스페인 본국과 쿠바를 잇는 항구로 이용했다. 거점 도시로서 아바나가 입지를 굳히자 정복자들은 1607년 쿠바의 수도를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라 아바나로 옮겼다. 그렇게 라 아바나는 쿠바의 제 1도시가 되었다. 

 쿠바에 입국하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올드카다. 차에 대한 지식이 없을지라도 올드카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미 박물관에서나 존재해야 할 것 같은 차들이 거친 굉음을 내며 버젓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내가 정말 쿠바에 입성했구나!"라는 탄성을 자아내며 볼을 꼬집게 된다. 

 라 아바나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아바나 비에하와 센트로 아바나 일대의 구시가지는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여행자들은 보통 대부분의 관광지가 몰려 있는 구시가지에 숙소를 잡고 도보로 관광을 하게 된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천천히 걸어 구시가지의 중심인 빠세오(Paseo)거리로 향한다. 그곳엔 아바나의 랜드마크로 불리우는 구 국회의사당인 까삐똘리오(Capitolio)와 대극장(Gran teatro)이 근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뚝 솟은 까삐똘리오 아래에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올드카들이 주차되어 있다. 빨주노초파남보는 물론이고 핑크색, 연보라색, 청록색 등 그야말로 형형색색이다. 온갖 색으로 치장한 올드카들을 보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2004년에 개봉된 영화 <더티댄싱 하바나 나이트> 속으로 들어 온 것 같다. 

까삐똘리오 광장

영화 속 1900년대보다 100년도 더 지난 2019년에 아바나에 왔지만 외관상으로는 대단한 차이점을 느낄 수 없다. 쿠바노들은 여전히 100년도 더 전에 지어진 건물에서 거주하고 있고, 이미 부품을 구할 수도 없는 올드카를 창의적으로 고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박물관.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다닌다면 입장료도 무료다. 

흥부자와 사랑꾼의 도시 

까삐똘리오 맞은 편으로 길을 건너면 여행자거리로 유명한 오비스뽀(obispo)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차가 진입할 수 없는 보행자거리로 기념품 판매점, 레스토랑, 전화국, 환전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밀집된 곳이다. 지극히 상업적인 분위기지만, 난 왠지 이거리가 싫지 않았다. 

거리 중간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쿠바산 캔맥주를 하나 마시며 땀을 식힌다. 이어폰은 필요없다. 훌륭한 라이브 밴드 음악이 바로 옆 야외 바에서 쉴새 없이 연주되니 말이다. 바에 앉은 여행자들은 쿠바의 상징적인 칵테일인 모히또(Mojito)를 한 잔 마시며 라이브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다. 낮이든 밤이든, 아바나에서는 한 잔 술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오비스뽀 거리 주변에는 소설가 헤밍웨이와 관련된 장소가 많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나보다 더 쿠바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자그마치 28년 간 살았다. 그리고 그 세월 중 7년간 장기투숙했던 호텔이 아직 오비스뽀 거리에 있다. 호텔 이름은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 그가 묵었던 511호 방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

헤밍웨이는 이 호텔에서 묵으면서 두 군데의 단골 술집을 만들었다. 하나는 라 플로리디따(la Floridita)라는 곳인데 헤밍웨이의 '인생 다이끼리'를 판매하는 곳이다. 다이끼리(Daiquiri)란 럼, 라임, 설탕, 얼음을 한 데 갈아 슬러시처럼 마시는 칵테일이다. 당뇨가 있었던 헤밍웨이는 설탕은 빼고 럼 투샷을 넣어 독주로 마셨다고 한다. 헤밍웨이 스타일의 독한 다이끼리를 맛보고 싶다면 라 플로리디따에 가서 파파 헤밍웨이(Papa Hemingway)를 주문하면 된다. 

헤밍웨이의 두번째 단골 술집은 헤밍웨이의 '인생 모히또'를 만난 곳,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이다. 대성당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가게는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는 관광객들로 인해 저 멀리서도 어딘지 위치가 파악될 정도이다. 3년 산 럼을 이용한 모히또는 명성만큼이나 맛도 일품이다. 다른 곳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한 잔쯤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의 모히또(위), 라 플로리디따의 다이끼리(아래)

그 외에도 칵테일 맛집이 더 있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암보스문도스 호텔 루프탑에 가면 잔 대신 파인애플에 담아주는 커다란 피냐꼴라다(Piña Colada)를 맛볼 수 있다. 비에하광장에서 조금만 옆으로 움직이면 민트를 얼음과 함께 슬러시처럼 갈아낸 프로즌 모히또에 맥주 한 병이 꽂혀 나오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메가 모히또(Mega Mojito)를 파는 곳도 있다. 

피냐꼴라다(왼쪽)와 메가 모히또(오른쪽)

오비스뽀 거리 주변 사방에 위치한 4대 광장(대성당 광장, 아르마스 광장, 비에하 광장, 산프란시스코 광장)을 도보로 돌아보며 유명하다는 술을 한 잔씩만 마셔도 이미 종류별로 네 잔은 마시는 셈. 더운 나라에서 과음은 좋지 않으니, 하루 한 잔씩만 마시자. 어차피 쿠바 여행 중에 이 거리에 한 번만 오지는 않을테니까. 한 잔 술에 덤으로 딸려오는 라이브 밴드 공연까지 즐기려면 속성으로 맛보긴 아까우니까 말이다. 

아바나에는 봐야 할 관광지도 많지만, 정처없이 거리로 나와 골목을 하루 종일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바나의 사람들은 정겹다. 큰 소리로 지나가는 이웃을 불러 세워 인사하는 사람들. 인사치고는 담소가 한나절이다. 하교시간이 되면 보조안장을 만든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귀가하는 아버지가 보인다. 학원을 모르고 사는 아이들은 하교 후 모두 골목으로 쏟아져 나온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연실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아바나 골목

쿠바의 거리엔 사방이 연인이다. 사랑이 어찌나 넘치는지, 아장아장 미취학 아동 커플도, 70세를 훌쩍 넘긴 노부부도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 뒷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부러워 질투가 날 지경이다. 

말레꼰의 연인들

해질 무렵엔 역시 말레꼰으로 향한다. 쿠바에서 손꼽히는 석양 명소 중 말레꼰은 단연코 1순위다. 말레꼰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많다. 아니다. 속삭이는 게 아니라 누가 더 열렬히 사랑하나 뽐내는 장소인듯 하다. 이따금씩 강렬한 물보라를 뿜으며 방파제를 훌쩍 건너뛰는 파도는 잘 피해야겠지만. 

말레꼰의 연인들

말레꼰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충만한 평온감이 내 몸을 감싼다. 눈을 감고 파도소리를 향해 귀를 열어본다. 바람을 통해 실려오는 짠내음도 느껴본다. 벅찬 행복감이 가슴 한 편에 묵직하게 차오르는 이 기분. 이거면 됐다. 나는 내일도 이렇게 정처없이 이 거리를 거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넘치는 매혹의 도시, 아바나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말레꼰의 석양

목적지가 없어도 괜찮아 

아바나에는 타 보고 싶은 교통수단이 많다. 철저히 관광객의 드라이브를 위해 대기 중인 올드카, 코코넛 모양의 오토바이 택시인 코코 택시(Coco Taxi), 자전거를 개조한 비씨 택시(Bici Taxi), 나는 선호하지 않는 관광용 마차(Coche Caballo) 등 말이다. 한국에는 없는 교통수단이기에 탑승의 욕구가 치밀어 오르나, 안타깝게도 흥정이 필수다. 

관광용 올드카는 전부 오픈카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사진이 예술로 나온다. 올드카 기사들이 대충 짜놓은  드라이브 코스가 있지만, 그 코스대로 다 따라갔다간 절대 1시간 내에 끝낼 수 없다. 시간 당으로 가격을 계산하기 때문에 이 점을 꼭 유의해야 한다. 나는 항상 말레꼰 쪽으로 출발하여 혁명 광장에 들른 뒤 회귀하는 노선을 주문한다. 이렇게 미리 말하지 않을 경우, 차이나타운 쪽으로 출발하여 돌아오는 길에 말레꼰을 들르게 된다. 그러면 방파제 바로 옆 차선이 아닌 건너 차선으로 달려야 하므로 재미가 덜하다. 

혁명 광장

한낮의 쨍한 아바나를 내달리는 기분도 물론 좋지만, 올드카 드라이브는 해질녘을 추천한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 올드카를 타고 달리다 보면 '웰던'으로 피부가 타들어가는 기분을 제대로 체험할 것이다. 

나는 가끔 가슴이 갑갑할 때 맥주 한 캔을 들고 코코 택시를 찾았다. 그리고 말레꼰을 따라 신시가지 방향으로 달려 코펠리아(Coppelia)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코코택시는 지붕이 있기 때문에 낮이든 밤이든 원하는 시간대에 드라이브를 할 수 있어서 좋다. 거기에 오토바이의 속도만큼 맞바람이 거세게 치기 때문에 기분이 엄청나게 상쾌하다. 

코코택시와 나오미

시원한 맥주가 뜨거워지기 전에 얼른 따서 단숨에 들이켠다. 꿀꺽꿀꺽 맥주의 목넘김이 예사롭지 않다.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다섯 스쿱에 250원하는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주면 갑갑증과 스트레스는 이만 안녕이다. 

O군과 한창 사랑이 꽃피우던 어느 날, 그는 내게 함께 하고싶은 것들에 대해 물었다. 이모저모 원하는 것들을 얘기하던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비가 오는 날 비씨택시를 타고 함께 달리고 싶어!"

로맨스라고는 전혀 소질이 없는 O군은 내게 말했다. 

"왜? 비오는 날 그걸 타고 어딜 가려고?"

목적지가 없으면 어떠한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비 오는 날 느린 속도로 정처없이 달려보고 싶었을 뿐. 여기는 사랑과 낭만의 도시, 아바나 아니던가. 

2019년 11월16일, 아바나는 500살 생일을 맞이했다. 대규모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밤이 새도록 노천 상설무대에서 공연과 피에스타가 이어졌다. 아바나 인구의 절반 이상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리라 예상한다. 또 중국의 건설회사가 7년 간 공사를 한 대규모 쇼핑센터가 아바나 설립 500주년에 맞춰 오픈되기도 했다. 한류스타의 콘서트 줄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인파 덕분에 나의 지인은 입장할 때까지 줄을 2시간 동안 서서 500주년 기념 맥주잔 하나를 쟁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라 아바나는 나의 쿠바 방문 10년 인생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나에게 집을 내어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준 곳이다. 그렇기에 나에겐 더더욱 애틋하고 특별한 도시, 라 아바나. 언젠가 나의 독자 여러분들도 쿠바에 방문한다면, 꼭 나의 사랑 아바나에서 내가 느꼈던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간혹 거슬리는 캣콜링이나 구걸로 미간이 찌푸려지더라도 너그러이 흘려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아바나의 진면목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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