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투 4. 특별한 까사들

알다쿠바여행

떼아모 쿠바 시즌 투 4. 특별한 까사들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숙박업소 주인에서
친구가 되어버린

일러스트 이민

쿠바에는 독특한 숙박 시스템이 있다. <떼아모 쿠바>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소개한 바 있는 까사 빠르띠꿀라르(casa particular)라는 것인데 줄여서 '까사' 라고 부른다. 이것은 국가에서 허가받은 민박의 형태로 집주인과 한 집에서 생활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주인없이 에어비앤비 형태로 지낼 수 있는 까사도 많이 생겼으나, 내가 쿠바를 드나들던 2010년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까사가 주인과 함께 집을 셰어해야 했다. 

이 숙박 형태가 사실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기분처럼 약간 눈치가 보이고 불편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꽤 재밌다. 대부분의 까사 주인들은 성격이 유쾌하고 친절하며 여행자들에게 관대한 편이다. 이것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간혹 이상한 주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크게 '똥 밟은 케이스'가 아닌 이상 여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불편하지는 않다.  

여러분은 이미 <떼아모 쿠바>를 통해 쿠바에서 나오미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오지라퍼임을 이미 확인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매사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내가, 쿠바만 가면 왜 그렇게 매사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참견이 하고싶어지는 건지. 

한국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이런 성격이 쿠바에서만 발동한 덕분에, 나는 각 지역의 까사 주인들과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늘은 친하게 지내는 까사 주인들 중 특별한 3인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숙소로서 각 까사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이 에피소드는 나의 친구를 소개하는 내용일 뿐, 일절의 광고나 추천 목적은 없음을 미리 언급한다.

땅끝마을의 마스터셰프!
바라코아의 G 

첫번째로 소개할 나의 친구는 바라쿠에소(baracueso, 바라코아 사람)이다. 바라코아의 말레꼰 근처에 위치한 이 까사는 '달팽이집'이라는 예쁜 이름이다. I와 G라는 두 중년 남녀가 함께 까사를 운영한다. 3층집이라 있어 주인과의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좋다. 작은 옥상 테라스에서는 말레꼰의 일출과 일몰을 장애물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특혜도 주어진다.

 

달팽이집 까사
손님이 쓸 접시를 말리는 달팽이집
왼쪽부터 I, 나오미, G

일하는 스탭들도 매우 친절하고 청소 상태도 마음에 들어, 안 그래도 사랑하는 바라코아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매일 아침 숙박객이 조식을 마치면 청소를 시작했는데, 사방의 창을 열고 햇볕에 그릇을 말리는 장면은 정말이지 매일 봐도 감격이었다. 

이 까사에서 두 주인의 역할은 나름 명확히 분담되어 있었는다. 요리는 G아저씨 담당이었다. 사실 처음 이 집과의 인연이 닿게 된 계기도 달팽이집의 저녁식사가 평이 남다르게 좋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인 나오미는 당연히 바라코아에 도착함과 동시에 달팽이집을 가장 먼저 찾았다. 

쿠바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방이 바다인 섬이지만 해산물이 귀하다. 레스토랑 외엔 일상에서 해산물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군데 예외인 곳이 있으니, 바로 바라코아다. 이곳에서만큼은 제법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을 질리도록 먹을 수 있다(얼마나 해산물과 가까운 곳인지, 어떤 바라쿠에소는 식량이 떨어지면 친구들과 배를 타고 나가 참치를 잡아온다고 했다). 

이토록 해산물이 풍부한 바라코아에서 아쉬운 점은 넘쳐나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깔나게 요리해주는 레스토랑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바라코아에는 G아저씨가 산다. G아저씨의 요리는 긴 말이 필요없다. 맛있다. 

아저씨의 요리를 맛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전 중에 원하는 저녁식사 시간을 정하고 생선, 새우, 랍스터, 문어, 육류 중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면 된다. 가격은 8-12쿡 정도인데 종류마다 조금씩 다르다. 뭐가 맛있다고 한 가지를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다 맛있다. 

저녁식사가 시작되면 아저씨만의 손맛이 담긴 따끈한 스프가 나오는데 이게 진짜 일품이다. 해산물과 콩이 어우러진 스프의 깊은 맛은 쿠바에서 집 나간 입맛을 소환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감질맛 나게 적은 양을 주는 건 이 집 스타일이 아니다. 신선한 야채 샐러드도 가득, 비안다(vianda, 탄수화물 종류의 곁들이 음식)도 한두 개가 아니라 접시 가득 산으로 쌓아준다. 스프에 밥을 말아먹으면 한식과 비슷한 만족감에 사로잡힌다. 

푸짐한 G의 밥상
G아저씨 특제 스프

곧 본 요리가 서빙된다. 신선하고 탱글탱글한 해산물이 각자에게 할당되면 본격적으로 돌진하면 된다. 단언컨대 웬만한 먹방은 다 이길 자신 있다. 본인 음식에 엄지를 척 내미는 동양인 무리를 보며 흡족해진 G는 솜씨를 발휘해 디저트까지 서비스로 내주곤 했다. 

디저트까지 다 먹어치운 뒤 내가 하는 일은 테라스에서 별을 보며 배를 두들기는 것 뿐이다. 늘 별을 보며 '내일은 과식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막상 내일이 되면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나였다. 

음식이 백번 맛있어도 주인이 불친절하면 갈 맛이 떨어질텐데, 달팽이집의 두 주인은 정말 상냥하다. 달팽이집에서 숙박하지 않아도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나 도와주고, 방문하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래서 방이 만실이라 달팽이집에서 묵지 못하더라도 식사는 꼭 달팽이집에 와서 하곤 했다. 

처음엔 두 사람이 당연히 부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단순 동업자라고 한다. 둘이 부부가 아니냐는 내 질문에 "어디 가서 우리가 부부라고 얘기한 건 아니지?" 하고 펄쩍 뛰던 G가 생각난다. 절대 그런 말 안 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올라! 쿠바> 가이드북에 사이 좋은 부부가 운영하는 까사라고 썼다. 죄송합니다. 내 잘못으로 최소 2천 명은 그들이 부부라고 알고 있을테니, 이 자리를 빌어서 정정하고 싶다. G아저씨는 현재 완벽한 솔로이고 천상의 손맛을 매일 만끽해 줄 여자친구가 절실하다고 말이다. 헤헷. 

긍정에너지를 팍팍!
시엔푸에고스의 A

두번째로 소개할 친구는 A. 시엔푸에고스에서 까사를 운영한다. <올라! 쿠바> 책을 쓸 때, 나는 일절의 광고비나 커미션을 받지 않았다. 그저 나처럼 다른 여행자들도 편하고 좋은 숙소에서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길 바랬을 뿐이니까. 방법은 간단했다. 평가가 좋은 까사 몇 군데를 사전조사하고, 직접 그 곳을 방문하여 주인과 시설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번 묵어 보며 실제 이 까사의 장단점을 직접 파악했다. 

A의 까사 역시 주인 성격이 좋고 인심이 후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이었다. 시엔푸에고스의 집은 전반적으로 천장이 높고 큼직한 편이다. A는 이렇게 큰 까사를 운영하는 것치곤 젊어보였다. A는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인 친구가 이집 모히또가 맛있다고 해서 방문해보았어" 라는 나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정말 맛있는 모히또를 한 잔 후다닥 말아 주었다. 

A의 특제 모히또

A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다. 활짝 웃으면 가지런히 보이는 그의 건강한 치아가 너무 예뻤다. 그 시절엔 까사 시작 초창기라 집이 조금 어수선했는데도, 주인장의 성격에 매료되어 이 집을 <올라! 쿠바>에 소개했을 정도였다. 

시엔푸에고스는 딱히 유명한 관광거리가 없어 한국인 여행자에게 그리 인기 있는 도시는 아니다. 그래서 다른 여행 팀들은 트리니다드나 플라야히론으로 가는 길에 반나절 들러가는 코스로 시엔푸에고스에 간다. 하지만 내가 가이드를 할 때는 시엔푸에고스에서 꼭 1박을 했다. 큰 관광거리는 없지만, A의 반가운 인사와 활기 찬 에너지가 모두에게 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특별할 건 없는 도시지만 A 덕분에 들르기를 잘했다는 게 내가 인솔한 여행팀들의 하나 같은 평가였다. 

올 해 A의 집에서 나는 민망한 처지가 되었다. 일행들과 함께 시엔푸에고스에 도착하여 신나게 하루일정을 보내고 까사로 돌아왔다. A가 추천해준 레스토랑도 가고 눈부신 일몰도 보았으니 완벽한 하루라 생각했다.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방에 도착한 나는 탁자에 가방을 내리고 습관적으로 침대의 발치에 걸터 앉아 신발을 벗을 생각이었다. 엉덩이를 침대에 댄 순간, 나의 체중을 싣기는 커녕, 엉덩이 두 쪽이 다 닿기도 전에 쿵! 소리가 났다. 시트를 모두 치우고 바닥에 엎드려 상황을 파악하니 어처구니 없이 침대다리 한군데가 부서져 있었다. 

미치도록 억울한 감정이 1번, 보석 같은 O군의 눈앞에서 이 사건이 벌어졌다는데서 느껴지는 수치심이 2번이었다. 전 경찰 출신 시력 2.0 소지자인 앙칼진 눈썰미의 O군이 사건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내게 말했다.

속상해 하지 마. 이건 애초에 무너져 있었어. 오래 전에 갈라졌던 흔적이 있어. 내 생각엔 이전 숙박객이 살짝 얹어놓고 간 것 같아. 누가 앉았어도 무너졌을 거야.
하지만 안 좋은 점은 이게 무너져 있었다는 걸 주인에게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거야. 이 상태로 이 침대에서 잠을 자는 건 무리가 있고, 우린 주인에게 상황 설명을 해야만 해.

정말 억울했지만 말하지 않고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A를 찾았다. 그리고 A에게 사건을 고백했다.

A, 정말 미안해. 내가 침대에 앉았는데 침대 다리가 부숴졌어. 어쩌지?

제아무리 쾌활하고 성격 좋은 A라지만, 물건 망가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쿠바노들의 성향을 알고있기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침대 하나를 통째로 사놓으라고 하면 어쩌나, 나의 가벼운 주머니 또한 걱정이었다. 

뭐? 침대가 부서졌다고? 일단 거기서 잠을 잘 수 있나 확인을 해 보자.

A의 남편이 바닥에 엎드려 한참 작업을 했다. 너무나 미안해하는 나에게 A는 말했다. 

내일 자세히 봐야겠지만 일단 수습을 해 놓았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잘 수 있을거야. 여러명이 돌아가면서 자는 침대라 이런 일도 가끔 있어. 놀랐겠다. 다치지는 않았어?

다치지는 않았지만 억울하고 창피하다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비집고 나오는 걸 꾹 참고 잠을 잤다. 혹시나 뒤척거리다 침대가 다시 무너져 내릴까봐 미라처럼 정자세로 누워 숨만 쉬고 잤다. 

아침 인솔을 마치고 까사로 돌아와 A에게 침대의 견적을 물었다. 쿠바에서 침대 하나에 700쿡은 한다던데.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이 하얘지고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A는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무너진 프레임을 고쳐 쓰기엔 좀 위험해보여서 나무를 통으로 갈아야 할 것 같아. 그런데 걱정하지 마. 단골 가게에 부탁해서 30쿡에 협상 봤거든. 넌 나에게 소중한 친구인데, 이번 일로 우리집에 안 오고 그러는 거 아니지?

한사코 마다하는 그의 손에 수리비 30쿡을 억지로 쥐어주었다. 그는 수리비를 받는 대신 내 숙박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불안해서 선잠 잤을 테니 돈을 안 받겠단다. 민망하고 불미스럽고 불운한 사건이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A의 정직하고 현명한 판단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기분 좋게 그의 까사에 갈 수 있다. 비록 까사에 도착하면 침대 다리부터 확인하는 강박증이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A와 나오미

부디 행복해주세요
플라야라르가의 E

세번째 친구는 눈부신 카리브의 마을 플라야라르가에서 까사를 운영하는 E여사이다. 당시 나는 상당히 충동심이 심한 남자와 사귀던 중이었는데, 플라야라르가도 그의 충동에 의해 방문하게 되었다.

늦은 밤 우연히 도착한 E의 까사

 늦은 저녁 갑자기 찾은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이미 어둑하니 가로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숙소조차 예약되어 있지 않았기에 눈에 띈 첫 번째 간판 앞에 택시를 세웠다. 마침 E의 아들이 밖에 나와 있어 빈방이 있음을 확인하고, 곧장 그의 까사에 짐을 풀었다. 방 2칸짜리 작고 단촐한 이 까사는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밖에 안 된 곳이었다. 방 한 칸은 게스트를 위해 꾸며두었고, 다른 한 칸은 E여사가 쓰고 있었다. 아들은 옆마을 플라야히론에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를 도와주기 위해 매일 이곳을 드나든다고 했다.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할 순 없지만, E여사는 생김새만 봐도 얼굴에 '나 착함'이라고 쓰여있다. 방은 비록 한 칸이지만, 게스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방과 화장실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수돗물도 콸콸 잘 나왔다. 방으로 나를 안내해 준 E여사에게 가까운 레스토랑을 물으니 지금은 시간이 늦어 다 문을 닫았다고, 닭고기도 괜찮다면 까사에서 먹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예약도 안 한데다 가격도 5쿡으로 저렴하기에, 큰 기대없이 배만 채우는데 의의를 가지려 했다. 

한 시간 뒤, E여사의 노크소리에 거실로 나갔다. 그러자 너무도 정갈하고 정성이 가득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재료가 없어서 차린 게 없네. 미안해. 원래는 더 푸짐한데...
정성이 가득한 E의 닭고기 밥상

주먹보다 더 두꺼운 닭다리를 익히는 게 쉽지 않은데 속까지 알맞게 잘 익힌데다가, 파인애플과 피망을 가득 썰어 위에 얹은 양념은 탕수육 소스처럼 익숙한 맛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들기다 거실 한 편에 진열된 이구아나 박제가 있길래 이게 뭐냐고 물었다. 무심결에 던진 나의 질문에 E여사는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난감했다. 

남편이 키우라고 선물해 준 이구아나야. 남편이 죽고 나서 내가 자꾸만 정신을 놓아서 말야. 어느 볕 좋은 날, 밖에서 일광욕을 하라고 이 아이를 내놓고 잊고 말았어. 하루종일 밖에 있었으니 얼마나 뜨거웠을까... 생각 나서 뛰어나갔을 땐 이미 등허리가 이렇게 다 화상으로 탔지뭐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결국 죽었어. 내 잘못이지 뭐... 남편을 잃었는데 얼마 안 되어서 이 아이도 잃었어. 내가 너무 슬퍼하니 아들이 이렇게 만들어주었어.

이구아나는 변온동물 아니었던가. 이 바보 같은 이구아나는 뜨거우면 그늘로 좀 숨을 것이지. 그 자리에서 타 죽을 건 뭐란 말인가. E여사는 죽은 자식의 사진을 어루만지듯 이구아나 박제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떨구었다. 

E의 아들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했다. 내일 플라야라르가 광장에 가수가 온다고, 다 같이 피에스타에 가자고 말이다. 눈물을 거둔 E여사는 내게 같이 가줄 수 있냐며 오랜만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함께 가주겠노라 대답했다.

다음날이 밝았다. E여사는 아침 식사를 차려주면서도 '오늘 저녁 이 옷 입을까, 저 옷 입을까?' 내게 물었다. 시종일관 설레 보이는 그와 잠시 헤어져 바다에 다녀왔다. 저녁에는 그가 차려준 맛있는 생선튀김을 먹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마쳤는데, 거실로 나가니 아침과 같은 차림의 E여사가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마음이 바뀌었고, 피에스타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E여사를 설득했다. 방에 들어가 준비를 하고 나온다던 E여사는 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거친 흐느낌 소리가 잠긴 방문을 통과하여 새어나왔다. E여사를 혼자 둘 수 없어 난감했던 나는 그의 아들이 집에 온 뒤에야 늦은 밤 잠시 외출을 다녀왔다. 

다음날이 되었고, 조식을 차리는 E여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그의 심리상태가 걱정이 된 나는 그의 두 손을 잡고 정말 괜찮은지 물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밤이 되면 딱히 외출할 곳도 없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었기에 플라야라르가에 있는 동안 E여사와 많은시간을 보냈다. 

5일 밤을 보낸 뒤 플라야라르가를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날 아침, E여사는 거의 무너져 내릴 듯이 눈물 폭탄을 터트렸다. 심장마비로 사랑하는 남편을 갑자기 떠나 보내고, 의지할 곳 하나없이 아침에 눈이 떠지니 살았을 뿐이었는데, 그 동안 내가 큰 위로가 되었단다. 그의 눈물이 아파 나 역시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쿠바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은 E여사에게 메일이 왔다. 나의 안부와 행복을 기원하는 편지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E여사도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 많은 E 여사와 나오미

 

머나먼 한국에서 온 이방인을 따스하게 맞아 주었던, 정 주고 마음 주고 스스럼없이 다가와 준, 다채로운 이야기를 지닌 나의 까사 친구들. 최근에는 짧은 동선을 위주로 여행팀을 인솔하다 보니, 나의 까사 친구들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내년에는 미뤄왔던 친구들 방문도 할 겸, 먼 지역까지 좀 구석구석 다녀보아야겠다. 

나오미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떼아모 쿠바

여행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