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투 9. 쿠바는 생명의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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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모 쿠바 시즌 투 9. 쿠바는 생명의 은인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당장 네 나라로 돌아가! 

일러스트 이민

살면서 내가 태어나고 평생 살아 온 이 나라 외에 다른 국가를 내 나라처럼 아끼고 사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자는 낭만의 도시 파리와 사랑에 빠졌다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쇼핑 천국 홍콩을 내 집처럼 드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쿠바는 그저 좋아하는 곳보다는 더 많이 특별한 곳이다. 

살면서 나는 생명과 직결되는 건강 상의 위기를 몇 번이나 겪었다. 모두 쿠바가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위기는 2011년이었다. 세계 일주를 위해 남미의 끝자락 아르헨티나까지 내려갔다가 쿠바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다시 쿠바에 돌아왔을 때, 나는 3개월 새 체중이 20kg 가량 줄어있었다. 앞뒤로 25kg의 배낭을 매고 해발 3500미터 이상의 도시를 그렇게 누비고 다녔으니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쿠바에서 '리즈 시절'을 찾은 것 같아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안 자도 힘이 솟았다. 하루 2시간씩 매일 살사레슨을 받았는데, 티셔츠 전체가 땀에 젖어 바닥으로 뚝뚝 흐를 지경으로 땀이 났다. '살 빠지면 땀도 줄어든다더니 나한텐 아니었나보네.' 하고 생각했다. 

배낭여행 초기의 나오미

땀이 나고 갈증이나니 매일 물만 사먹었다. 하루 5리터짜리 패트병을 사서 그 물을 다 마셨고,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남미에서는 식욕이 폭발해 늘 2인분 이상 먹었는데, 당시에는 이상하게 식욕이 뚝 떨어졌다. 쿠바에 있는 3주 동안 살이 더 빠져서 지퍼가 채워지지도 않던 치마가 허리를 잠그고도 주먹하나가 들어갔다. 평생 비만으로 살아왔던 나는 그저 행복했던 것 같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바나의 한 귀퉁이에 널부러져 있던 내게 한 중년 여인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지금 당장 네 나라로 돌아가. 내가 보기엔 너의 갑상선에 문제가 있거나, 안구에 암이 생긴 것 같으니 말야. 나는 쿠바 안과 의사이고, 너의 오른쪽 눈이 심하게 돌출되어서 하는 말이야. 당장 여행을 멈추고 돌아가서 진단을 받도록 해.

인생 최대의 평화를 맛보던 내게 떨어진 너무나 갑작스런 통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둘러 까사로 돌아가 큰 거울을 찾았다. 그리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오른쪽 눈이 심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잠시 앉아 생각했다. 내가 내 얼굴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전혀 몰랐지?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3개월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 본 기억이 없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늘 도미토리를 이용했고, 기초 화장품도 제대로 바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기에 거울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한족 안구가 돌출되어 있었던 나오미

 한국으로 돌아와 정밀검진을 했다. 갑상선에 생긴 악성종양, 암이었다. 식욕이 폭발해도 살이 빠지고, 상의가 홀딱 젖도록 땀이 흘렀던 그 모든 것들은 내 몸이 힘들다고 내게 보냈던 신호였던 것이다. 스님은 제 머리를 못 깎는다더니, 간호사였던 나는 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나의 암은 초기 단계였지만 갑상선 전체의 건강상태가 나빠 '전 절제술'을 받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림프절 전이까지 진행되어 더 힘든 치료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초기에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쿠바에서 만난 귀인, 안과 의사 아주머니 덕분이었다.

내 머릿속의 시한폭탄 

초경 때부터 나는 생리가 규칙적인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의 난소는 곧잘 파업을 했다. 간호사로 일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는 최장 8개월까지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위험하다 생각했고, 걱정도 되었지만 며칠 안 되는 휴일에까지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산부인과 한 번 찾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스트레스가 심할 때 두통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전두부와 안구근처의 통증은 한번 시작되면 제아무리 센 진통제를 삼켜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끈지끈 머리를 압박하는 편두통 때문에 나의 삶의 질은 바닥에 붙은 껌과 같았다.  

생리불순, 두통, 평생 먹어야 하는 갑상선 약까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지경이 되었을 때, 나는 병원을 그만두었다. 

병원을 박차고 나와 쿠바로 돌아가자 거짓말처럼 생리가 매달 정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두통도 말끔히 사라지고 말이다. '나는 이렇게 평생 탱자탱자 놀면서 지내야 오래 살 팔자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악의 전남친P를 만나고 두통과 생리불순과 재회를 하고 말았다. 그의 충동심과 싸우며 인내심이 바닥났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예민했고, 포악했다. 하루에도 열 번씩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지끈지끈 두통이 시작되었다. 몇 개월 규칙적으로 나오던 생리도 3개월 째 소식이 끊겼다. 

이번에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았다.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와 MRI 촬영을 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이런 대답을 들었다.

머리 속에 종양이 있어요.

또 종양? 호르몬을 담당하는 뇌하수체라는 기관에 작은 양성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종양으로 인해 나의 호르몬 체계가 무너졌고, 여성호르몬이 방출되지 않아 생리가 끊겼으며, 난소도 망가진 상태였다.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으면 이 종양 사이즈가 커지는데, 그럴 때마다 두통이 유발되었던 것이다. 나이에 비례해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체중마저 이 종양이 원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맙소사. 배신감. 내 몸이 이렇게 나 자신에게 인색하게 굴다니.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P와의 지저분했던 이별에 대한 정신적 충격도 전혀 극복하지 못했는데, 내 몸 어느 한 구석 건강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머리의 혹을 발견한 뒤, 3년 째 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발견 첫 해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악화된 건강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인고하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사람을 의연하게 해주는 묘약과 같다. 치료 2년차부터는 제법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내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의 몸은 바로 파업을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의 시한폭탄이 커지지 않으려면 나는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로 했다. 한국인이 정석이라고 믿는 잣대에 얽매여 나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을 멈추니, 비로소 나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다시 장기간 해외를 나가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쿠바 여행 인솔을 시작했다. 비정기적으로 소소하게 진행했던 경험은 있었으나 '인솔'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일을 시작한 건 처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그 순간을 행복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병원 다닐 때보다 주머니는 현저히 가벼워졌으나, 나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매년 쿠바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검진 결과 '정상' 입니다

머리의 종양을 발견한 뒤 난소의 문제를 발견했고, 난소의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 간 산부인과에서 나의 자궁경부세포가 이상세포로 변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세포변화가 심화되어 증상이 악화되면 결국 자궁경부암으로 진행되는 겁니다.

또 암이라고??? 지긋지긋하다. 억울해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뭘 그렇게 너한테 잘못했니, 이 몸뚱아리야. 욕지거리가 쏟아져나왔다. 의사로부터 나온 솔루션은 이랬다. 

자궁경부 치료는 진행하겠지만, 웬만해서는 이 치료로 완치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현저히 저하된 본인의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거예요. 스트레스 관리에 유의하고, 몸에 해로운 건 전부 멀리하세요.

이 때부터 집나간 면역 되찾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자궁 면역에 좋다는 양배추, 강황은 김치보다 더 자주 먹었다. 집에서 하루 30분씩 꾸준히 홈 트레이닝도 했다. 수면시간, 식사시간 등 대부분의 일과를 규칙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반 년에 한번씩 자궁경부 검사를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자궁경부이형성증, 자궁경부염' 소견이었다. 의사는 내게 출산 계획이 없다면 자궁 절제를 제안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했다. 인생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슬픈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올 해 5월. 쿠바에서 귀국하자마자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았다. 올해 역시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을테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산부인과에서 문자가 왔고, 나는 나의 두 눈을 의심했다.

자궁경부암 검진결과 정상 입니다. 세포 이상징후 없습니다.

자궁경부이형성증 진단 3년차, 나의 사랑 O군과 재회한 지는 2년차였다. 쿠바를 떠나기 직전 검진 결과와는 완전히 달랐다. 올 해 쿠바에서 보낸 더할 나위 없는 3개월이 내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애인 O군은 삼식이라서 늘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다. 함께 지내며 여행 경비를 아껴야 했기에 우리는 늘 집에서 음식을 해 먹었다.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은 나라이다 보니 식사는 늘 간단한 쿠바 가정식 요리위주로 먹었다. 김치가 없으니 양배추와 토마토를 듬뿍넣은 샐러드를 매일 먹었다. 

3개월 간 꾸준히 있었던 쿠바 여행 인솔 덕분에 걷고 싶지 않아도 매일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 쿠바의 강렬한 태양을 온 몸으로 받아 비타민D도 충분히 합성했던 것 같다. 그렇게 쿠바에서 평범하게 지냈던 일상이 나를 치유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을 맞이하고, 다른 이들도 쿠바를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쿠바를 열심히 소개한 것 말고는 없었던 나의 일상 말이다.  

행복해야 건강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나오미

이렇듯 쿠바는 내게 특별한 존재이자 은인이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주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게 해 준 쿠바. 앞으로도 꾸준히, 더욱 더, 격렬히, 온 몸으로 쿠바를 사랑하고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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