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밀레니얼의 직장일기 3. "오늘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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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밀레니얼의 직장일기 3. "오늘 어디 가?"

은순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드디어 이 주제를 쓰게 됐네요. 회사를 다니며 가장 열이 받았던 외모 평가요. 회사를 세 곳 정도 다녔고 일한 기간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회사 사람이 시시콜콜 떠들어대던 주제 중 하나죠. 저는 많은 회사의 문제점 중 하나가 시답잖게 외모 얘기로 대화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어디든 그 사람이 누구든 평가받고 싶지 않거든요.

저는 친구들과도 외양 얘기를 하지 않아요. 으레 할 수 있는 그 가방 샀네? 예쁘다, 너 살찐 것 같다, 빠진 것 같다, 화장이 잘됐다, 그 신발 별로다 등등 모든 평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칭찬이든 욕이든 어쨌든 평가고 저는 누군가한테 평가를 받으려고 화장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옷을 입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회사 사람들은 제 가치관 따위 개나 주라는 듯 하루가 멀다하고 평가를 해댔지만요.

모든 회사의 이슈가 지나치게 드넓은 오지랖 때문이듯 회사 사람의 외양에 대해 떠드는 것도 역시 과하게 심각한 관심 때문이죠. 뭘 입었는지 살은 빠졌는지 쪘는지 빼야 한다느니, 아 정말 지겨워 죽겠다니까요? 근데 언니들도 아시죠? 이 수많은 외양과 관련된 얘기는 대개 여자들에게 향한다는 거, 그중에서도 어린 여자들은 언제나 표적이 된다는 거. 회사에서 나이로 막내이자 여자 사원이었던 저는 어디에서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어요. 나올 때 한 땀 한 땀 입을 꼬매주지 않은 게 후회가 될 정도라니까요?

그런 거 입지 마

대학생 때 인턴을 한 적이 있어요.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회사에서요. 팀장이나 부장을 제외한 사람들은 대개 친구처럼 지냈고 옷도 자유롭게 입는 곳이었고 막내인 저도 부장과 맞담을 할 수 있고 뭐 그런 곳이었죠. 남자가 득실거리는 곳이고 일이 힘들긴 했지만 적응기를 거치고 나서는 잘 지내게 됐어요. 어느 날 제가 평소와는 달리 짧은 치마를 입고 간 적이 있어요.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 불편해서 입은 적이 거의 없는데 그날은 외근도 없었고 자리에 앉아서 일해도 됐거든요.

선배들이 시키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데 부장이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말하더라고요. “너는 여기 남자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오니? 다음부턴 그런 거 입지 마.” 사실 선배들은 인턴인 제게 관심이 없었어요. 출근을 한지 안 한지 모르는 날도 많을 정도였거든요. 근데 부장의 그 말에 모두가 저를 쳐다봤고 저는 너무 당황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했죠. 그때 한 남자 선배가 “그거 선배가 말하면 성희롱 아니죠? 나도 자꾸 신경 쓰였는데~”하며 기분 나쁘게 웃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제 다리도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그 뒤로는 한 번도 치마를 입고 가지 않았어요. 신체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아는 언니 중에 한 명은 옷을 좋아해서 다양한 옷을 입어요. 언니가 다니는 회사도 복장이 자유였거든요. 제가 회사 사람들이 제 옷으로 말을 많이 해서 스트레스 받는다니까 다 무시하고 입고 싶은 거 입고 다니라고, 옷 입는 재미라도 있어야 회사 다닐 수 있지 않겠냐며 아주 현명한 조언을 해주던 언니였죠. 그 언니가 회식 때 자주 듣던 말이 있어요. “지혜 씨는 왜 회식 때마다 치마를 입고 와?” 언니는 원래 치마도 잘 입고, 바지도 잘 입고, 원피스도 잘 입어요. 회식 때마다 치마를 골라 입었던 것도 아니고요. 회식 때마다 치마를 입네 마네 하는 것도 웃기지만 입든 말든 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전에 아는 꼰대 한 명은 다른 팀 여자 신입이 기함할 옷을 입고 왔다고 카톡을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 복장 자유이긴 한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하면서 직접 그림까지 그려 보냈어요. 자기라도 이런 거 입지 말라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하도 호들갑을 떨길래 뭐 비키니라도 입고 온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아니, 일단 워딩 자체가 틀렸다고요! 복장 자유라면서요? 그럼 옷을 벗고 오지 않는 한 그냥 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자기가 대체 뭐라고 타인의 외양을 지적하는 거예요? 사실 그 꼰대, 학생주임이었던 걸까요?

일러스트 이민


징글징글하다, 정말

전에 일했던 회사 중 하나에서는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고 늘어졌었어요. “은순 씨, 오늘은 볼터치 했네?” “이게 무슨 옷이야? 오늘 어디 가?”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운동해?” “구두를 신었더니 키가 더 커졌네” “어제 잠 못 잤어? 왜 이렇게 눈이 빨개?” “머리 좀 자른 것 같네? 무슨 일 있어?” “파마했지? 전이 더 낫다~” 진짜 징해도 이렇게 징할 수가 없다니까요. 다른 팀 선배 한 명은 살이 너무 많이 쪘다고, 살 좀 빼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진짜 되도 않는 말들을 왜 자꾸 해댈까요? 정말 회사 사람이 외양 얘기할 때마다 5만 원씩 자동이체 되는 법안이 통과될 수는 없는 걸까요?

자기 팀원이 티가 나게 피곤해 보일 수도 있고 살이 많이 빠졌을 수도 있어요. 반대로 살이 많이 쪘을 수도 있죠. 입사했을 때보다 화장을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있어요. 옷을 더 차려 입을 수도 있고, 그렇게 안 입을 수도 있어요. 치마를 입을 수도 있고, 바지를 입을 수도 있고, 힐을 신을 수도 있고, 로퍼를 신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래서요? 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일하러 회사 온 거 아니에요? 그럼 일만 하면 되지 왜 자꾸 남의 살과 옷과 피부와 퇴근 후 일정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일이 없으면 퇴사를 하는 게 모두를 위해 나을 텐데 말이죠.

여자한테만 향하는 오지랖

제가 정말 화가 나는 건 이런 우주를 덮고 남을 오지랖이 유독 남자들에게는 닿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랑 같은 ‘어린’ 남자에게조차요. 정치적 올바름이 남자들한테만 발동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여자들이 만만한 거예요. 적당히 씹기 좋은 거죠. 회사 다니면서 정말 ‘빨아 입긴 하는 거야?’ ‘옷을 사는 건 맞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렇게나 옷 입고 다니는 남자들 많이 봤거든요. 근데 아무도 말 안 해요. 어쩌다 얘기 나오면 “남자니까” 한 마디로 퉁쳐요. 그럼 저는요? 저는 “여자니까” 그냥 닥쳐주시면 안 되나요?

회사 직원의 얼굴과 옷에 꼭 한 마디를 보태고 마는 수많은 꼰대가 모른 척하는 사실은, 모두가 그런 지적을 할 줄 안다는 거예요. 사람들에겐 다 개인의 취향이 있어요. 회사의 많은 사람이 제 취향대로 생기지도 않았고, 제가 좋아하는 대로 옷을 입는 것도 아니에요. 저도 ‘대체 왜 저렇게 생겼지? 왜 저런 걸 들고 온 거야?’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요. 근데 제 기준으로 타인을, 그것도 취향이 드러나는 외양을 평가하는 게 무례한 걸 알아서 안 하는 거거든요. 그게 어떤 말이든 타인의 외양에 대한 이야기 그냥 무례한 거니까요.

가끔 정색하고 말해줄까 싶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냥 입을 닫았어요. 떠드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떠들더라고요. 그래도 사회생활한 지 몇 년 됐다고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그냥 불쌍해요. 시대는 변하고 있고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은 어차피 도태될 거니까요. 서서히, 조금씩 사라질 거예요. 오늘도 언니들의 외양을 놓고 아무렇지 않게 씹어댔던 사람들도 그럴 거예요. 그리고 저희는 타인에게 조심하고 예의 있게 행동하면서 저희의 길을 성큼성큼 갈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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