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8. 바야모

알다쿠바쿠바 여행바야모

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8. 바야모

나오미

눈을 감고 콕 찍었더니
그게 너였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충동적인 사람 P를 만나고 있던 시기였다. 

P: 우리 오늘 여행 가자.
나오미 : 오늘? 갑자기? 어디로?
P: 아무데나! 눈 감고 지도를 콕 찍어서 나오는 데로 가자.

쿠바에서 준비 없는 여행이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사랑에 눈이 멀었던 당시의 나오미는 그의 의견대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눈을 감았고 지도를 콕 찍었다. 

내 손가락 끝엔 바야모(Bayamo)라는 글씨가 놓여 있었다. 동쪽에 있다는 것, 쿠바의 국가(國歌)가 '바야모행진곡' 이라는 것 외에는 이 도시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다. P는 난색을 표하는 나의 등을 떠밀며 까사에 가서 짐을 싸오라고 했다. 쿠바의 모든 교통편은 예약제로 운영되는데다 심지어 나는 외국인인데, 이 즉흥적인 남자는 나를 현지인 전용 터미널로 무작정 데리고 갔다. 그렇게 나는 터미널에서 죽치고 앉아있었고 그는 바삐 여기저기를 움직였다.

옴니부스 버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바야모행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탑승했던 옴니부스(현지인 전용) 버스 역시 비아술(외국인 탑승 가능) 버스와 마찬가지로 각 주의 주도를 완행으로 거쳐가는 시스템이었다. 지루한 시간의 연속. 나는 비몽사몽 잠에 취해있었다. 약 12시간이 지난 후 운전기사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바야모! 바야모! 바야모!

밖은 캄캄했다. 자정이 훌쩍넘은 시간이었다. 여행 정보책도, 인터넷도, 기본 정보도 아무것도 없는 이 도시에 대책없이 충동적인 남자와 함께 떨어진 나. 극도로 밀려오는 후회감을 억지로 침과 함께 밀어 삼키며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비씨택시 한대가 우리 앞에 섰다. P는 눈치없이 비씨택시 기사에게 가격도 묻지 않고 냉큼 올라타더니 숙소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바가지를 있는 대로 쓰겠다고 생각하며 밀려오는 한숨에 땅이 푹푹 꺼지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씨택시 기사님은 중간중간 자전거를 세우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다. 

여기는 여행자 거리, 여기에 환전소도 있고, 슈퍼마켓도 있고, 다 있어. 이리로 가면...

여기저기 뭐가 있는지도 친절히 가르쳐주신다. 이러다가 내릴 때 돌변하면서 가이드비도 달라고 하겠지. 불안한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까사를 구하기 위해 몇 군데의 집을 드나들었다. 관광객도 딱히 없어 보이는 동네인데 어쩐지 모두 만실이라고 한다. 기사님은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세우고 까사의 벨을 눌러 공실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페달을 밟는 과정을 무한반복 했다. 

밤중에 숙소를 찾는 비씨택시 기사님

드디어 한 군데의 까사에서 빈 방이 있다고 들어오라고 했다. 까사에 짐까지 옮겨 실어 준 비씨택시 기사님과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선하고 순박한 사람의 도시

나오미 : 얼마 드리면 되죠?
비씨택시 기사님 : 하하... 원하는 대로 줘.

큰 가방 두 개, 건장한 성인 두 명을 싣고 30분을 내리 달려 등 전체에 땀으로 바야모 지도를 그린 아저씨가 내게 성의껏 요금을 달라고 한다. 난감했다. 아무 준비없이 내려온 터라 주머니에 돈이 많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5쿡을 내밀었다. (아바나에서는 5분 정도만 탑승해도 외국인에겐 기본 2쿡을 요구한다.) 엄청난 실갱이를 예상했지만 기사님은 의외로 환한 미소와 함께 5쿡(6500원)을 주머니에 넣으며 내게 말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치나(중국 여자야, 정말 고마워).

그리고는 비씨택시를 끌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예상치 못한 깔끔한 마무리에 바야모의 첫인상이 급격히 아름다워졌다.  

바야모 사람들의 미소

까사의 주인은 2층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방 내부 시설이 특출나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2층에 있는 테라스, 주방, 욕실, 방 모두를 20쿡에 사용하라 했다. 한 주의 주도인데 생각 외로 물가가 저렴했다. 오랜 여정의 피로함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까사 조식을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기로 했다. 바야모 중심가는 아담했다. 전형적 콜로니얼 도시답게 큰 공원 옆에 성당이 위치하고, 보행자거리에 은행, 환전소, 약국, 전화국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몰려있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였고 사람들은 평온해보였다. 

P가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지인이 바야모에 살고 있다하여 우리는 그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물론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가는 게 나로선 내키지 않았지만, 여기는 쿠바니까. 이쯤 되면 반쯤 포기했다. 기차역 부근에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저렴한 식사공간이 있다는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 앞에는 피자를 파는 노점부스와 노천에 테이블이 놓여진 간이 식당들이 많았다. 아침이니 간단히 피자를 먹기로 했다. 

돼지고기 피자와 바띠도

피자를 주문하니 특이하게도 주인 아저씨가 새끼 돼지고기 구이인 '레촌'을 얇게 저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화덕에서 갓 나온 동그란 피자 위에 돼지고기를 듬뿍 올려주었다. 생소했다. 바띠도(셰이크)를 한잔 주문하자 맥주병을 재활용한 예쁜 컵에 한잔 가득 바띠도를 부어주었다. 화덕에서 갓 나온 뜨거운 피자에 돼지고기가 의외로 잘 어울렸고 꽤나 든든했다. 이렇게 먹고 15쿱(750원)밖에 내지 않았다.

피자집 주방에 난입한 나오미

 기차역 앞에는 대중교통으로 이용 중인 마차들이 많았다. 가격은 구간별로 2~3쿱 정도로 책정되어 있었다. 그 중 한 마차를 잡고 대충 기찻길을 따라서 직진하며 동네를 구경하다가 P의 지인이 사는 동네에 내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마부는 흔쾌히 승낙했고 나는 인생 첫 마차를 이렇게 바야모에서 탑승해보았다. 

바야모에서 마차를 탔을 땐 산타클라라에서처럼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마부 아저씨가 말에게 채찍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속도가 빨라지면 그의 고삐를 부드럽게 당겼고 빨리 달리도록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기찻길을 따라 바야모의 외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가격을 물었다. 마부 아저씨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하는 대로 주세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거리가 많이 멀지도 않았을 뿐더러 총 4명만 탑승 가능한 작은 마차였기에 나는 아저씨께 2쿡(2600원)을 내밀었다. 아저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바야모가 너무 좋았다. 꼭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그 선한 미소가 좋았다. 

바야모 마차 유람

P의 지인은 갑작스럽게 동양 여자를 앞세워 찾아온 그를 문전박대 하지 않았다. 저 멀리서 그를 알아 본 지인은 맨발로(실제로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다) 달려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그의 아들과 그의 부인을 소개해주었다. 지인의 집은 매우 허름한 나무 판자집이었다. 직접 증류해서 만드는 술로 생계를 유지하는지 집 한 쪽 옆에 술 증류기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쉴새없이 찾아와 적은 돈을 내고 술을 받아갔다. 

P의 지인과 나오미

P의 지인은 내게 룸바 음악이나 퍼커션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너무 좋아한다는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어디론가 달려나갔고, 잠시 후 어디선가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꽁가(Conga), 구이로(Guiro), 셰께레(Shekere) 등 온갖 타악기가 들려있었다. 순식간에 나만을 위한 룸바 공연이 시작되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신들린 봉고 연주에 맞춰 즉석에서 믿지 못할 성량으로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들의 공연은 내 10년 쿠바 인생에서 단연코 최고의 실력과 감동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나오미만을 위한 즉석 공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니까

쿠바를 드나든 지 햇수로 10년, 하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장소가 참 많다. 자주 가는 아바나, 트리니다드 같은 동네는 이제 실눈 정도만 뜨고도 다닐 수 있겠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두룩한 장소에서는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생소한 한 여행자일 뿐이다. 

나는 바야모를 잘 모른다. 왜냐하면 다른 도시를 드나들 때 아주 잠깐 경유를 위해 드나들거나, 아무 정보없이 무계획으로 가서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다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핀치>를 통해 바야모를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이 도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렇다면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삼일이나 묵고 걸어 다닌 이 도시와 나는 너무나 밀접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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