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1. 트리니다드

알다쿠바쿠바 여행트리니다드

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1. 트리니다드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킨지

몽글몽글 스머프 마을
핫플레이스가 되다 

어느덧 <떼아모 쿠바 시즌 3> 연재가 시작되었다. 시즌 1에서 쿠바의 전반적인 소개를 했다면, 시즌 2는 쿠바와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었다. 시즌 3는 내가 10년 간 꾸준히 드나든 쿠바의 여러 도시들을 여러분께 소개해볼까 한다. 

 첫번째로 소개할 도시는 다년간 쿠바 여행자들 사이에서 최고로 사랑받고 있는 트리니다드다. 상티스피리투스 주 동남쪽 끝에 위치한 곳이다. 아바나에서 택시를 타고 남쪽 방향으로 4시간 여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트리니다드 크리스토 공원

지금 트리니다드는 쿠바에서 가장 핫한 곳이자, 쿠바 여행자들이 들러야 할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 했다. 그래서 쿠바의 도시 중 가장 몸값이 높은 장소다. 트리니다드의 여행 체류비는 유럽 유명 도시의 체류비와 맞먹는다. 하지만 건물이나 물 사정은 아바나 보다 훨씬 낫기 때문에, 아바나의 노후한 시설에서 지내던 여행자들은 트리니다드에 할당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이 도시를 처음 접했던 2010년만 해도 트리니다드는 그저 작고 평온한 마을에 불과했다. 물가도 아바나보다 훨씬 저렴했고, 여행자도 이렇게 많지 않았다.

실제 내가 트리니다드를 첫 방문했던 이유도 매우 간단했다. 랑고스타(랍스타) 요리를 단돈 5쿡에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보에 솔깃해서였다. 당시 나와 일행은 트리니다드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구경은 뒤로 미룬 채 곧장 랑고스타 요리를 먹으러 출동했다. 

정보를 준 한국인이 그려준 약도를 보고 찾아가보니 간판도 없는 가정집 거실에 테이블만 세 개 달랑 있었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무작정 머리를 들이밀고 "랑고스타...?" 라고 묻자 주인으로 추정되는 상냥한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빙되는 음식을 보는데 우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채소샐러드, 과일샐러드, 비스켓, 쌀밥, 랑고스타 구이가 한상 떡벌어지게 차려졌기 때문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였던 당시의 나오미는 단돈 5쿡에 누릴 수 있는 이런 호사에 매우 감동했었다. 

그때였다. 인생 첫 랑고스타의 첫 입을 맛 보려던 순간, 갑자기 온 동네가 정전이 되었다. 워낙 전기 사정이 안 좋은 쿠바인지라, 한참이 지나도 전깃불은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레스토랑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랑고스타를 먹었다. 시각을 포기하니 온전히 미각에 집중할 수 있어 더 맛있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2박3일 체류하며 같은 곳에 3번이나 랑고스타를 먹으러 갔다. 트리니다드의 첫 날은 정전 속에 마무리 되었다. 

어둠 속의 랑고스타



아름답고 활기찬 마을

이튿날 아침이 밝았을 때 나는 비로소 트리니다드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작은 마을이라 하루종일 발품을 팔면 온 마을 한 바퀴를 다 돌아볼 수 있다. 트리니다드는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언덕 형태이고 마을의 상반부에는 마요르광장(plaza mayor)이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는 박물관, 성당, 야외 살사클럽 등 볼 거리가 넘친다. 

바닥은 몽글몽글한 조약돌이 가득 박혀 있어서 걸을 때 조금 성가시다. 하지만 알록달록 강한 색채의 트리니다드 건물과 붉은 기왓장, 그리고 역사지구의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완성한다. 

트리니다드 골목길

트리니다드 역사지구는 바닥 보호를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자동차 출입이 통제된다. 역사지구에는 레스토랑과 바, 까사가 밀집되어 있고 기념품 상점이 즐비하여 놀고 먹고 마시기에 딱 좋다. 특히 요즘 같이 여행자가 들끓는 때에는 길거리 노점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 많다. 걷다가 어느 때라도 내가 원하는 종류의 칵테일을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눈 뜬 시점부터 잠들 때까지 원없이 마실 수 있는 곳이 바로 트리니다드다. 

트리니다드는 어느 지역이나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조금이라도 조용하고 평온한 장소를 원한다면 마을의 아래쪽을 거닐어 보면 된다. 역사지구에서 벗어나면 바닥은 평범한 시멘트 바닥이고 집들도 수수한 색채를 띈다. 

트리니다드 풍경

노점에 위치한 이발소에서는 멋부리기 좋아하는 쿠바 남성들이 줄을 지어 머리 손질을 받고, 아이들은 한개에 5모네다(250원)인 아이스크림 콘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서있다. 아이들 틈에 줄을 서고 오렌지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구매해보았다. 끈적한 감기약맛이다. 

먹을수록 점점 더 더위를 유발하는 애매한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자니 뒤에서 또각또각 발굽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면 풀을 가득 싣고 가는 마차에 농부가 앉아있다. 이 도시에 어디에서 저런 차림새의 농부가 나타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지구의 깍쟁이들과 달리 눈이 마주치면 미소로 화답하며 인사를 해주신다. 물론 간혹 윙크와 징그러운 입술마크를 날리는 사람도 있다. 이곳 역시 쿠바니까 말이다.

일러스트 킨지

트리니다드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밤이 되면 트리니다드는 더욱 활기를 띈다. 트리니다드에 오면 필수로 가봐야 할 세 곳이 있다. 첫번째는 깐짠짜라(canchanchara)라는 술집이다. 깐짠짜라는 트리니다드 특산 칵테일이다. 럼에 꿀과 라임이 들어간 칵테일인데, 도자기가 유명한 트리니다드답게 동그란 도자기 그릇에 술을 담아준다. 작은 스틱도 함께 주는데 꿀이 가라앉지 않게 저어가며 마셔 주는 게 포인트다. 

깐짠짜라

작은 의자에 앉아 깐짠짜라를 마시다 하늘을 보면 뻥 뚫린 천정으로 별이 반짝인다. 바람도 살랑인다. 이것이 행복이지 싶다. 깐짠짜라는 정적인 분위기의 술집이다 보니 간단히 한 잔 하기에 좋다. 

술 한 잔 마셨으면 마요르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야외클럽 까사 데 라 무시까(Casa de la Musica)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성당 옆 돌계단을 무대로 개조한 이곳은 밤 10시가 되면 클럽으로 변신한다. 몇 안 되는 테이블과 의자는 이미 만석일 확률이 높으므로 그냥 무대가 잘 보이는 계단을 찾아 앉는 것이 속 편하다. 

카사 데 라 무시카

잠시 앉아 있으면 직원이 귀신 같이 찾아와 술 주문을 받는다. 안 시켜도 무방하지만 클럽에서 술 한잔이 없으면 또 섭섭하니 모히또 한 잔을 시켜본다. 잠시 후 무대에서는 기막힌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밴드의 음악에 맞춰 흥이 충만한 이들의 살사댄스 타임도 시작된다. 쿠바는 한국이 아니다. 맘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먼저 춤을 청해도 좋다. 

이렇게 흥나는 시간을 두어 시간 보내고 자정이 되면 그 곳을 나와야 한다. 신데렐라도 아닌데 왜 자정인가 궁금하신 분들은 사람들을 잘 관찰해보면 된다. 마치 '임호테프를 추앙하는 망자떼'처럼 언덕 위 한방향으로 우르르 올라가는 인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따라가보면 울퉁불퉁 돌밭으로 된 언덕의 끝에 동굴 나이트 클럽 아얄라(Ayala)가 있다. 

아얄라

입장을 위한 줄이 길기 때문에 조금 인내심이 필요하다. 입장료를 내고 동굴 입구로 진입하면 입이 떡벌어지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천연동굴의 천정에 싸이키 조명이 돌아가고 스테이지와 좌석들이 놓여있다. 까사 데 라 무시까에서 압도적 춤 솜씨의 쿠바노들에게 조금 주눅이 들었었다면 아얄라에서는 무장해제 해버리면 된다. 전세계에서 몰려 온 흥부자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으니 말이다. 다같이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다보면 어느새 너도 나도 땀이 뻘뻘 나고 '위아더월드'를 외치게 된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으면 슬슬 이 동굴 나이트도 파장 분위기가 된다. 나이트를 나와 울퉁불퉁한 조약돌길에 발바닥을 지압하며 숙소를 향해 걸어간다. 트리니다드는 다른도시와 달리 늦은 새벽에도 음식을 파는 곳이 있으니 격한 댄스로 허기가 심하게 진다면 잠시 앉아 요기를 해도 좋다. 이렇게 필수코스 3종 세트를 들르면 트리니다드 밤나들이는 성공이다.


사탕수수, 달콤함 뒤에 숨겨진 잔혹사 

트리니다드는 과거 지리적 이점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던 곳이다. 트리니다드 북쪽의 에스깜브라이 산맥에서 대규모 사탕수수 농업이 가능했고, 남쪽의 카리브해를 통하여 설탕 무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트리니다드 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작은 기차역에는 매일 아침 출발하는 열차가 있다. 생긴 건 증기기관차 이지만 실제는 디젤기관차라고 한다. 행선지는 잉헤니오스 계곡이다. 잉헤니오스 계곡은 트리니다드 동쪽 10km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예로부터 사탕수수 농장과 설탕가공 공장이 있던 장소다. 과거 농장주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안 농장 내에는 노동력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예들의 슬픈 삶이 있었다. 

잉헤니오스 열차

시속 30km의 느린 열차를 타고 트리니다드에서 천천히 멀어지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과거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장소는 밤낮없이 음악이 흐르고 관광객을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도시였다. 단 10km만 벗어났을 뿐인데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탕수수 농장과 산맥 뿐이다. 듬성듬성 나무로 지은 허름한 판잣집과 그 앞에서 빨래하는 아낙네가 눈에 들어온다.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쪼르르 달려나오는 아이들의 눈빛이 맑다. 흔들의자에 앉아 시가를 피우던 노인은 기차 속 이방인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우리가 탑승한 열차는 첫번째 목적지인 마나까 이스나가(Manaca Isnaga)역에서 정차한다. 이 곳에는 과거 사탕수수 농장 대주주 산체스 이스나가의 저택이 있다. 대저택 내부로 들어가면 현지 아낙네들이 손수 수 놓은 식탁보와 테이블보를 판매하고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새하얀 테이블보를 양 옆에 두고 흙길을 잠시 걸어가면 47m 라는 무지막지한 높이의 노예 감시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나까 이스나가 노예감시탑

쳐다만 봐도 목이 아프고 오르는 내내 끝 없이 나오는 계단에 지칠만큼 높은 탑이다. 입장료를 내고 노예 감시탑을 들어서 한층 한층 올라가본다. 

"이 정도만 와도 이렇게 잘보이네. 이 정도만 올라와도 이렇게 광활하게 보이네."

한층한층 올라갈 때 마다 중얼거리다, 마지막 감시탑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서면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나온다.

"세상에!! 이 악랄한 놈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못 도망갔겠네, 이거."

노예감시탑에 올라가면 탁 트인 아름다운 전망을 맘 편히 바라볼 수가 없다. 이름도 모르고 생김새도 모를 수많은 생명들이 혹사 당했던 현장이니 말이다. 

과거에는 잉헤니오스 계곡 열차가 구아치낭고라는 역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트리니다드로 회귀하는 노선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옛 설탕 가공 공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잔혹한 과거를 향해 달려가는 현재의 잉헤니오스 계곡 열차는 평화롭다. 24시간 큰 소리의 라이브 음악과 빠른 스페인어에 노출되었던 나의 귀도 비로소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다. 미니바에서 맥주 한 병을 사고 여행객이 북적이는 실내에서 잠시 밖으로 나와 본다. 이따금 귓전을 울리는 기차의 기적소리와 꼴깍 넘어가는 맥주 한 모금, 간혹 덜컹이는 열차의 흔들림. 그리고 그 속에는 오롯이 행복한 나 혼자만 존재한다. 

과거의 순박했던 마을도, 1분 1초 쉼없이 번성 중인 도시인 지금도 그 자체만으로 매력이 숨쉬는 트리니다드. 나는 내년 겨울에도 쿠바에 갈 것이고, 트리니다드를 찾을 것이다. 거리 노점에서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고, 몽글몽글한 돌길을 걸으며 쿠바 최고의 핫플레이스 속에 있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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