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포스팅 하지 않던 소셜 미디어에 N번방에 관련한 의견을 올리고 내가 지지하는 다른 여성들의 포스팅도 공유했다. 나도 한 목소리라도 보태고 싶어서.
"메갈"덕분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글 덕분에 한국을 떠나면서 내 인생의 짐과 고통의 80%는 한국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7살부터 지속적으로 당한 친족 성추행 사건은 내 입을 틀어막고 나를 비난 하는 것으로 끝났다. 우울하고 자살하고 싶은 역겨운 충동은 10년간 지속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지속적인 친족 성추행 당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그냥 살 이유가 없어서 자살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었다.
- 가정에서: 언제나 가부장의 기분이 나쁘면 나를 포함해 온 가족이 개보다 못하게 폭행을 당했던 것
- 학교에서: 명문대를 갔음에도 가스라이팅과 성희롱에 언제나 노출되어있으면서도 그것이 불편한다고 인지할 수 조차 없었던 것
- 직장에서 : 난데없이 섹스를 요구하던 직장동료, 남자 상사로부터 성추행/성범죄를 당한 지인들이 고통을 숨기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일들, 상사들이 여성들에게 룸싸롱에서 받는 대접을 요구했던 것. 부서 조직도 프로필 사진을 다운받아 돌려보고 품평하면서 ‘초이스’ 하는 걸 모든 성별이 있는 단체 방에서 스스럼 없이 하던 것. (이런 것들이 전부 n번 방, 지인능욕 지랄하는 것들의 씨앗이다) 지인의 지인이 직장동기들 화장실 몰카를 찍다 걸렸던 것.
이런 일들을 '어른에게' 털어놓았을 때 들은 말이라곤 “네가 창녀인 줄 아나보다 하하 남자들은 원래 그러니 네가 조심해 = 니가 남자들과 어울려서 밤에 술을 마시고 웃고 꾸미고 그래서 그런거지 여지를 준거지. " 였고 또래 여자에게 털어놓으면 "나도 그랬어.."라고 답변한다. 도대체 가부장이 보호해준다는 "성녀"는 어디에 있는가?
참고로 나는 중고등학교 성적 1%의 모범생으로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 도와주고 기껏해야 어른들이 말리던 거라곤 만화책 보거나 god 좋아하는 것 정도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소위 좋은 대학 나와서 괜찮은 커리어 쌓고 일에 치여서 고단하지만 그럭저럭 여행도 다니고 가끔 짐도 등록해보고 넷플릭스보고 평범하디 평범한, 인스타그램 보면 그럭저럭 소확행 찾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30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가정폭력의 고통과 트라우마들, 그리고 직장에서의 온갖 성차별과 성폭행의 위험에서 살아남고 가정을 꾸리면서 겪을 그 모든 성차별에서 살아남는게 과연 가능이나 한 것일까 싶었다.
해외 나온 지 만 3년. 여기서는 한국처럼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성차별, 성추행을 접하진 않는다. 내가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지나가는 손님'의 포지션 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나쁜 것들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한국 뉴스를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고 답답하니까 한국어로 된 컨텐츠는 멀리해야지, 나부터 좀 살고 봐야겠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백인 남자 매니저들, 서구권의 이름있는 학위와 커리어를 지닌 사람들 아래에서는 한국에서 얻은 학벌도, 커리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배운 수준의 영어로 말하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수많은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마라, 포르노 보는 건 자연스러운 욕망/취미/복지라는 둥 끊임없이 인권유린이 자신들의 권리인양 소리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착취 당해야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과거의 나와 엄마, 그리고 내 친구들이 떠올라 고문당하는 것 같았다.
폭행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던 엄마를 흉기를 들고 쫓았던 남자. 지나가던 미국인이 그를 막아 경찰에 신고하여 유치장에 갇혔지만 한국 경찰과 사회는 엄마에게 ‘남자가 그럴수도 있지. 와이프가 잘 처신해라. ’고만 했다. 그 이후로도 수없이 살해 위기에서 살아남다 협박에 의해 맨몸으로 쫒겨났던 엄마. 한국이 민주주의 법치사회라고 하는데도 변호사를 선임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몇 십년을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뒷바라지하던 엄마는 혹여나 자식들이 짐승같은 인간에게 다칠까봐, 그리고 정말로 자신이 살해당할까봐 두려워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어린 여자아이들은 감히 그 누구에게도 도움 요청조차 못하고 자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성인권이 높다는 선진국들도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새로운 세대를 새롭게 교육하며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겠지. 5년 전, 10년 전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금은 최소한 터질건 터지고 있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까. 당장 내가 분노에 지쳐 무기력하게 조용히 있어봤자 나만 더 괴롭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청원 넣고 외신 제보하고 최대한 떠들고 다니려고 한다. 가해자들이 가해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헛소리 뻔뻔하게 당당하게 하고 다니는 거 더 이상은 못참겠어서.
7살이었던 나를 지속적으로 추행하던 20대 남자, 심지어 내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아왔었지만 자신을 따르던 유치원생을 성착취 하던 인간쓰레기는 그 이후에도 다른 친척 동생들을 성추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응당한 벌을 주지 않았고 이후 평범하게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산다고 들었다. 어머니와 가족에게 수없이 폭행하고 살인미수를 저질렀던, 선진국에서는 벌써 감옥에 갇히고도 남았을 인간은 아내와 자식을 쫓아내고 남는 돈으로 가난한 여성과 재혼(사실 상 그에겐 노예 매수 였을 것이다.) 그녀를 또 지속적으로 폭행하여 경찰서를 들락날락하지만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살아간다. 이게 바로 강간문화겠지. 남자의 미래와 잠재성이 너무나 귀해 남자가 아닌 사람을 착취하는데 대한 죄의식이 없는 사회. 적어놓고 보면 양아치 중의 양아치, 하류인생 쓰레기 같지만 대학졸업하고 나름의 자산을 축적한, 명예롭게 퇴직한 공무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쫓아낸 아내와 딸이 희대의 창녀, 악마와 같은 인간들이고 쓰레기라고 욕하고 다닌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가해자의 입을 다물게 해야하는 이유)
두 명의 여자 대학생이 수 개월의 헌신 끝에 작년 11월에 수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이 n번방 사건은 2조원 가량의 금융사기사건인 라임사태를 덮기 위해 뒤늦게 조명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위험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강간문화를 덮어놓고 여성의 인권보다 더 시급한 문제들이 있다는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들이 모두 강력하게 처벌될 때 까지.
#n번방성착취 #여성인권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