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와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민을 고민할 때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고양이였다. 사람은 어디에서든 결국 적응해서 살 수 있겠지만 아기 고양이도 아닌 4살, 6살인 고양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줄지 걱정이었고,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고양이들이 괜한 고생만 하게 될까 봐 망설이기도 했다. 뉴질랜드와 한국은 직항으로도 12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 고양이들은 비행기를 타본 적 없다. 강아지라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고양이들은 조금도 인간의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둘째는 병원 갈 때 10분 정도 택시만 타도 불안해하며 이동 시간 내내 울었고, 첫째는 이사를 해서 낯선 환경이 되자 꼬박 이틀은 이동장 안에...
2년 전 한국을 떠나 처음 뉴질랜드로 날아왔다. 언어도 사람들도 심지어 공기마저 낯선 이곳에서, 도움을 청할 사람 한 명도 없이 홀로 살아갈 게 걱정스럽고 무서웠다. 나는 때때로 도망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 처하면 일단 다이어리를 펼치고 계획을 세우는데, 사실 이번에는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감이 안 잡혔다. 운동이라면 매일 할당량과 시간을 배정하고, 시험공부라면 시험 범위인 분량을 쪼개 매일 공부할 양을 배정하는 식으로 계획을 세울 텐데,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이어리의 텅 빈 페이지를 한참 바라보다 마침내 써 내려간 세 가지 목표가 있다....
한국에서 중식당이나 베트남 요리 전문점에 가면 한국어에 서툰 직원을 마주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다면 요즘은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 왠지 유심히 보게 된다. 매년 5월경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일이 돌아오고, 한국에서만 3,000명의 청년이 선발된다. 이들은 외국에서 일할 기회라는 이유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경험은 값진 것이지만 농업에 뜻이 없는 사람도 키위 농장에서 키위를 따고, 공업에 뜻이 없는 사람도 홍합 공장에서 홍합을 까는 워킹 홀리데이가 과연 ‘꿈과 희망’씩이나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시...
보통 사람들보다 자극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받아들이는 예민한 사람들은 인생의 좋은 면, 나쁜 면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과 불의와 어려움에 더 민감하게 얽혀들어 갈 수 있다. 얼마 전 읽은 책 <예민함이라는 무기>에 등장한 구절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확실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붐비는 장소에서 유난히 스트레스를 받고, 소음에 민감하고 여행을 힘들어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잘 알아차리고, 폭력적인 장면에 영향을 많이 받고 사람을 만난 뒤 진이 빠지는 특성으로 묘사된 예민한 사람이 빠짐없이 나를 닮아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조차 과도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을 읽...
뉴질랜드에 온 지 삼 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처음 이 땅을 밟고 하늘도 바람도 새로워서 매일 즐거웠지만, 출근하고 퇴근하는 건 금방 지루한 일과가 되었다. 근무시간이 짧긴 하지만 주 6일씩 출근하며 번 돈을 대부분 주거비로 내는 것도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휴일에도 역시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밀린 빨래와 집안 정리를 하며 보냈다. 신나는 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뉴질랜드의 삶은 그저 무료하고 지루했다. 퇴근하고 도서관도 가봤고 책도 읽어봤고 심지어 영어 공부도 해봤고 요가도 해봤지만 남는 시간은 너무 많았고, 친구도 취미도 없는 채로 그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한 몸 간신히 누일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