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물 속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법이었으므로, 이러다 손에 물갈퀴가 생길지도 몰랐다. 망망대해는 헤엄을 쳐도 그곳이 그곳 같은 법인데. 새로 넘긴 달력과 함께 시작된 시시콜콜한 생각들은 모난 곳 없이 도는 관람차 같았다. 알지 못했던 것과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넘실대는 물살 속에 출렁이며 보낸 나날들이었다.
"그럼 아예 다 놓아버리면 되잖아."
글쎄. 커피에 들어있던 얼음을 입안에서 굴리며 시큰둥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각얼음은 입안에서 녹고 또 녹았다. 본래의 각져있는 형태는 허물어지고 다시 물로 돌아가는 것. 비가 올 것처럼 거무죽죽한 하늘 사이사이로 빛줄기 같은 볕이 쏟아지는 걸 보는 건 천하태평인데 품고 있는 고민은 누구보다 복잡했다. 다 놓아버리고 싶나요? 어쩌면 예와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문항같기도 했는데. 다 지나가버린 날들을 떠올리면 바람이 가는 길을 따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우수수 낙하했다. 이따금은 나 자신까지도.
"그 순간, 내 몸의 벌어진 틈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한다. 잊지마, 이 모든 걸. 이 아픔을, 이 냄새를, 콧속에 스미는 바람을. 네가, 우리가 찢기고 조각났다는 사실을. 너는 잊으면 안 돼. 몸에 닿는 빳빳한 천의 이 불친절함을. 이 치욕을, 끓어오르는 눈물을. 너의 들판과, 우리의 이름을. 네 안에 떠다니는 몸들이 거쳐온 시간을. 기억해, 그 모든 칼날의 차가움을, 그 상처 하나하나를."(작은마음동호회, p.350)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긍정적인 태도와 낙관으로 매일매일이 꽃과 금과 옥, 또 유사한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도 그리 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망망대해를 부유하며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책은 우리의 부서진 말들, 아직은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 또다른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강한 열망으로 부딪혀 온다.
비가 내린 날들을 빼면, 최근 드리운 볕은 믿을 수 없게 따사로웠다. 겨울이라고 하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날씨였지만 마음에 남은 서리들은 녹지 못한 채 자리를 지켰다. 그렇다면 아직 겨울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이처럼 상승과 하강으로 요동치는 곡선 없는 날들. 멈춰 서 있는 변곡점이 즐겁고 아늑해 이대로만 있고 싶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가라앉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헤엄치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