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장소를 누가 어떻게 점유하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 거기 있다'는 물리적 사실을 훌쩍 넘어서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장소는 사람들의 특정한 의도에 의해 구성되고, 사람들에 의해 점유되며, 그들의 활동을 통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소는 그 자체로 젠더, 계급,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한 권력 분배 과정 속에서 생성된 것이고, 거기 입장해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를 구분 짓는 조건 또한 이미 함축하고 있다. 그러니까 장소는 단순히 사람과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담는 정적이고 중립적인 컨테이너가 아니라 그것을 촉진, 유지, 또는 중단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교통 및 공공시설과 일반 가정집 시설 등 거의 모든 장소가 성인 남성의 평균 신체를 기준으로 설계 및 건설돼 있지만, 유일하게 부엌만은 성인 여성의 신체를 설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이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하고 단적인 예시라 하겠다. 부엌이 여성의 공간으로 설계되고, 그래서 여성이 거기 있게 되고, 그러니까 다시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소의 점유만큼 그 정치적 면모가 자주 잊혀지는 것이 있을까! 매일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사실 거기 발 딛고 살아가는 비남성 존재의 종속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발전과 성장을 상징하고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이행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여겨져 온 시간과 달리, 장소는 시간과 항상 짝지어지는 요소이면서도 언제나 거기 가만히 있으면서 인간에 의해 고쳐 지어질 뿐인 정적이고 무력한 요소로 간주돼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이 시간과 장소의 관계를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개념화시켜 왔다. 장소-여성은 고정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시간-남성은 권력을 휘둘러 장소-여성에 영향을 미치고 변형시키면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성장한다.
그저 관념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런 개념화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시간과 장소에 대한 상징과 이야기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처녀림’을 정복하는 호기심 많은 백인 남성 탐험가들, 자연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다운 자연‘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정복하고 개발할 것을 주장했던 근대 철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우리가 발 딛은 장소를 낯설게 다시 봄으로써 그 속의 권력관계를 전복하기 위한 장소의 점유 및 변화 전략을 세우는 것은 젠더 기반 억압에 대한 중요한 저항의 열쇠가 된다. 이미 여성 억압적인 젠더 권력 관계가 지속되어 온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가부장제에 도전하기 위한 다양한 장소 전략을 세워왔다. 가정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장소를 변화시키거나, 최근의 비혼 운동과 같이 아예 여성혐오적인 특정 장소에 편입되길 거부하거나, 자신이 속해 있던 곳을 뛰쳐나오기도 한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음소거되고 왜곡되고 무시되어 왔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자신에게 배정된 장소를 뛰쳐나가는 걸 선택한 이들은 여기는 너의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여기선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는 이유로 창녀, 히스테리 정신병자, 또는 행려병자로 취급되면서 겹겹이 쌓인 소외를 겪었다. 이들의 선구적이면서도 익숙하고, 매혹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이야기는 바다 밑으로 죽은 산호가 가라앉듯이 역사에서 흐려져 간다.
장소와 젠더에 대한 고민을 담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쳐나간 이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경외를 담아 나는 몇 편의 글을 통해 자신이 속해있던 자리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고, 이를 젠더 권력과 장소 전략의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한다. 장소를 다시 생각하고, 뛰쳐나간 여성들의 계보를 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