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살 4월에 첫 성노동을 시작했다. 혼자 올라간 경기도에서, 기반도 없는 나는 점점 더 외롭고 정신적으로 취약해져갔다. 가져온 돈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학교 생활에 치여 알바를 구할 수 없었다. 원래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나는 점점 더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성노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생활을 유지할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성노동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으로 dm이 왔다. “경기도 병점 오산 수원 같이 일할 공주님 구해요” 보자마자 성노동 광고임을 알았다. 나는 시간당 얼마인지, 어떤 종류의 성노동인지 물어봤다. 조건이었고 내가 15만원을 벌면 나는 10만원, 실장은 5만원을 가져가는 시스템이었고, 질싸, 얼싸, 입싸, 애널 추가 시 2만원, 그리고 팁은 내가 가져갈 수 있었다. 나는 “조건”이라는 형태는 무서웠지만 실장 없이 여성 혼자서 하는 조건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에 그나마 더 안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면접을 보기로 했다. 병점역 근처에서 만나 카페로 향했다. 나에게 사이즈와(키와 몸무게, 가슴크기), 성관계를 좋아하는지, 경험은 있는지 등등을 물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차를 태워주면서 자신과 모텔에 가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 순간에는 거절했지만 그와 자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다음날 그의 집에 가서 성관계를 했다. 그 후 진짜 조건을 할 날이 다가오자 불안해져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조건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니, 다시 생계가 막막해졌다. 20살이 되고 나서 알바구인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면서 많은 업소에서 데이트카페, 대화카페 매니저를 구한다는, 사실은 키스방에서 보낸 문자를 많이 받았다. 경기도에 올라와서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그 중 하나에 답장을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고 나는 면접을 보기로 했다. 가게는 안양역 로데오거리 안에 있었고, 건물 3층에 있었는데 그 밑에 층은 다 일반 식당가였다. 가게는 업소형 키스방이었다. 키스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업소형 키스방과 원룸형 키스방이었는데 업소형 키스방은 룸카페처럼 되어 있어 대기실에 있다가 손님이 방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플레이하는 것이고, 원룸형 키스방은 실제 원룸텔의 방을 임대하여 매니저가 그 방을 쓰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키스방이다. 실장은 내게 키스방의 수위는 키스, 몸 터치, 애무 정도라고 했고 그 이상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요구할 시 바로 나오면 된다고 했다. 나는 막 스무 살이 되었고, 업소에서 일할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찾는 남성이 많았다. 하지만 성노동이 처음이었던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고 손님의 요구를 거절하지도 못했다. 나는 이 키스방에서 일한 3일 동안 첫날에는 6명, 나머지 날은 3~5명 정도에게 강간을 당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해리 상태가 너무 심했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3일간 일해서 번 돈은 100만원이 넘었고, 나는 그 돈으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산부인과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산부인과에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노동을 한 후에 산부인과를 이용할만한 돈이 생겨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휴학 절차를 밟아 대구에 내려왔고 몇 개월이 흘러 7월이 되었다. 이때 성노동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 이 때문에 성노동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간 업소는 앞산 근처에 있었다. 원룸형 업소였고 면접을 보는 과정은 사이즈와 성 경험을 묻는 등 이전의 업소들과 비슷했다. 업소에서 사용할 내 이름을 순별이라고 짓고,(가게 이름이 스타였기 때문에 이름 뒤에 ‘별’로 돌림자를 썼다) 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강간을 했다. 대구의 근무 환경은 경기도보다 열악했다. 남성들은 나를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고 전화번호를 달라, 밖에서 나와 데이트를 하자는 등의 요구를 했다. 실장은 내가 블랙을 건 사람도 그냥 받으라며 방에 넣었다. 경기도에서는 관계를 맺으려면 최소한 콘돔을 들고 오거나 팁을 많이 주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 결국 몸이 안좋아진 나는 일주일만에 그만 두었다. 하지만 시급이 4만원이었기 때문에 일주일 간 번 돈은 컸고, 나는 그 돈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 한 달에 30만원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고, 활동가로 지내기에 돈이 항상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번 업소에서 번 돈으로 충분히 원하는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11월이 되어 다시 성노동을 시작했다. 업소형 키스방으로 옮겼고 실장이 바로 상시 근무하고 있어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 이곳으로 정했다. 콜이 들쑥날쑥하지만 다른 곳보다 수위가 낮고 팁이 더 나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한 달을 일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때 실장은 대기실에서 쉬고 있던 나를 만지더니 강간했다. 내가 그만 둘 때까지 3번 성관계를 맺었고 나는 다시 업소를 옮겼다. 12월이 되었고 부모님은 집안 형편을 이유로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나는 집과 멀리 떨어진 서구에 있는 키스방으로 옮겼다. 실장은 1차 면접과 2차 면접이 있다며 1차 면접은 외모와 경력, 사이즈를 묻는 것이었고 2차 면접은 실장과 직접 플레이를 하며 매니저가 어떤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2차 면접까지 했고 실장과 성관계를 했다. 그 후 프로필에는 “순수한 업소삘 제로 레알 대학생 어렵게 모셨습니다 착한 성격 애교있는 말투 밸런스 잘 잡힌 몸매 매미모드 애인모드 최고! 예민하다고 합니다 살살 다뤄주세요 오래 볼 수 있도록 아껴주세요” 라고 써져 있었다. 그후로도 실장은 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했고 손님에게 전화가 오면 나를 추천했다. 나는 항상 만콜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매니저들이 4만원이나 4만 5천원을 받을 때 나는 시급 5만원을 받고 출근을 더 자주하면 6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여기서 번 돈으로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을 쓰면서 성노동을 하면서 많은 폭력을 겪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나의 생활과 삶의 질을 완전히 바꾸었다.
작가의 말: 일단 지금까지의 경험을 있었던 일 그대로 시간순으로 적어보았어요. 보고서처럼 최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빼고 적으려고 노력했어요. 앞으로는 여기 나온 경험을 쪼개어 더욱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써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댓글로 생각과 질문을 많이 적어주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질문과 감상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