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은 동명 소설과 다르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김지영 씨를 내세워 여성 혐오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은 다소 씁쓸한 결말로 갈무리된다.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매듭짓는 건 40대 남자 주치의. 그는 아내가 한국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있기에, 여성의 삶과 그 실존적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지영 씨 역시 안쓰럽게 여긴다. 이 남자가 처방해준 항우울제와 수면제로, 다른 여성들의 말을 대신하여 발화하던 김지영 씨의 '증상'은 빈도가 줄어간다(고 그 남자가 서술한다).
하지만 소설을 봉합하는 이 남자는 곧 독자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든다. 보통 남자들과는 다르다고 자신한 이 남자 또한, 아이 때문에 퇴직하는 여성 동료를 보며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에서 여성학자 김고연주 선생은 이런 질문을 끌어올렸다. "이런 세상에서 김지영의 회복을 바라야 할까?" "김지영은 어떻게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부피가 큰 물음들이 책을 덮고 난 뒤에 찾아온다. 이 '증상'이 치료되고 난 뒤 김지영 씨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자신을 지지해주는 여성들의 말을 발화하는 '병'이 사라지면, 김지영 씨는 완전히 입을 다물게 되는 걸까?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곤란한" "여직원"(p.175),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맘충"(p.164) 소리를 들어도, 그저 침묵을 지키게 될까? 결국 이 사회에서 김지영 씨는 자신의 말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영화는 소설이 남긴 질문에서 결말의 답을 찾는다. 영화의 엔딩에서 김지영 씨는 제 이야기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김도영 감독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두고"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자신의 말을 찾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다른 여성들의 말을 신체에 담아온 김지영 씨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소설이 남긴 질문에 대한 답을, 소설을 타고 흐른 사회적 물결에서 찾으면서, 원작을 예우하고 동시대 여성들의 움직임을 의미 있게 포착한 결말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된 2016년 10월, 영화가 개봉한 2019년 11월, 영화는 그 시간 동안 이 소설이, 그리고 수많은 여성이 내온 목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목소리들을 예견한다. <82년생 김지영>이 목소리를 내온 것처럼, 지금껏 많은 여성이 목소리를 내온 것처럼, 앞으로도 수많은 여성은 '그렇게' 할 것이다. 자신의 말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김지영 씨가 살고 있는 사회가 완전히 변한 건 아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란 동화적 결말은 김지영 씨에게 가능하지 않다. 아니, "잘 살았습니다"도, 어떤 누군가에겐 "살았습니다"도 가능하지 않다. 우린 알고 있다. 매일 같이 느끼고, 보고, 듣는 일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혜수 씨의 목소리를 빌어 이렇게 말한다. “지영이, 파이팅!” 당장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순 없지만, 삶의 조건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말로 전진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한 발 한 발 나아가려 애쓰는 내 옆, 앞, 뒤의 여성들.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이다. 세상의 모든 지영이, 파이팅.
참고
김고연주, <우리 모두의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작품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