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불안의 시작
고등학교 진학 후 선후배관계 + 성적 급락 + 부모님의 이혼 + 가난 + 자존감 하락 + 기숙사 생활 + 환경변화 등 여러가지 사유가 겹쳐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단순히 마음 고생이라고 하기에는 함축된 것들이 많지만, 음. 여튼 내 인생의 최악의 시기였다.
유일하게 잘 했던 게 공부였고 내가 공부를 잘 해서 서울대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어야 그 흙수저 집안을 내가 어떻게 건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현실과 이상의 갭이 너무 컸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이 뚝 떨어졌다. (하하.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자기의 실제 실력보다 꿈이 높은 것 같다.) 성적만 떨어졌으면 괜찮은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학교 분위기에 도무지 적응을 못한 게 더 문제를 악화시켰다.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자기비하를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더 성적이 떨어지고, 잠을 줄여서 공부를 하다보니 집중력은 더 낮아지고 그러니까 더 성적은 안 나왔다. 그래도 이때는 오히려 하루하루가 너무 전쟁같고 무서워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를 했다. 자살충동과 자해가 있긴 했지만 칼로 그은 손목은 시계로 가렸기에 아무도 몰랐고 어쨌든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
2013년, 불안의 재발견
우울했던 시절은 끝났고 대학에서는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했다. 내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적합해 보이는 과로 진학했고,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내 좁은 세계와 달리 세상은 매우 넓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안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는 성인이 되어 돈을 벌 수 있어 어느정도 내 경제사정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 좋았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알바와 과외를 뛰기 시작했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돈 주는 각종 대외활동과 과외를 계속하며 경제적으로도 고등학교 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졌고, 통제감이 많이 생겼다. 우울한 시절은 끝났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 불안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했고, 고등학교때부터 강박적으로 알람시계를 3-4개씩 가지고 있었다.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물처럼 마시는데, 불안해서 잠은 못 자면서 일/공부를 했고, 당연히 효율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특히 자기 전에 누워있으면 온갖 게 다 무서워서, 내가 이 세상을 산다는게 너무 무서웠다.
하루는 대학 중간고사 시즌이었는데, 도서관에 새벽까지 앉아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중간고사가 코앞이었고 공부를 해야해서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서 책을 폈는데, 공부를 하는 게 무서워서 도무지 공부를 시작을 못 하겠는거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해서 그냥 앉아만 있었다.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온갖 딴짓을 하곤했고, 공부를 시작하는데만 2-3시간이 걸렸다. 그 날은 무슨 바람인지 페이스북에 '불안해서 공부를 잘 못 한다'라는 글을 올렸고, 정말 아무런 연락도 없고 친분도 없던 대학교 선배가 갑자기 카톡을 주셨다. 의대에 간 선배였는데 아마 그때쯤이면 본과생이었을 것 같은데... 정말 친분이 없던 분이 연락을 주셔서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위험해 보였나. 어쩌면 그 선배에게는 두 학년 아래, 나에게는 한 학년 아래인 고등학교 후배가 카이스트 진학 후 자살을 했던 게 생각나서 그러셨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공부는 잘했지만 고등학교 때 마음이 병든 애들이 좀 있었을 거다. 그 때 처음으로 학교 상담센터에 가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14년, 첫 상담
대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온갖 대외활동과 공모전, 학교 생활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상담을 받을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1년 정도를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이 상담 신청을 했고,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첫 상담을 받았다.
학교 상담센터는 대기가 길었고, 예비상담을 한 번 받고 본상담 선생님을 배치받아서 상담을 받는 구조였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에게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비상담에서 펑펑 울고 나왔다. 그리고 분명 예비상담 처음에 상담을 배정받는데 오래 걸린다고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내가 심해보였던지 금방 배정을 받았다. ㅋㅋ 그렇게 4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씩 1:1 상담을 받았다. 중간에 많이 힘들면 학교에서 약값도 20-30만원까지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내가 약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해서 따로 정신과는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병원을 갔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상담을 하는 4개월동안 정말 많이 나아졌다. 내 자신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교정할 수 있었고, 내가 A라는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해석했던 과거의 사건이 B, C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생각하다보면 점점 더 깊고 우울하게 생각하게 됐던 과거의 트라우마들이 상담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많이 교정이 되었다.
2015년, 취직을 했고 바쁘게 살다보니 과거의 불안증세도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2020년에도 여전히 고등학교때의 과거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을지는 몰랐다. ㅋㅋ 2020년 현재, 두번째 상담을 받고 있다. 이건 다음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