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Future Feminist S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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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Future Feminist Sisters

2050년의 자매들에게

호람

♀ 안녕, 미래의 자매들아?
나는 2020년, 26살의 페미니스트 ‘호람’이라고 해.
다들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요즘 고민이 많긴 하지만, 나름 잘살고 있어.
얼마 전에 단편영화 스태프 일을 마쳤고, 거기서 친해진 언니를 내가 가입한 여성영화인 모임에 초대했어.
그 모임은 작년에 만들어졌는데, 서로 알고 있는 정보와 노하우를 나누고, 만든 영화를 시사한 뒤 피드백을 주고받는 곳이야.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내 의견도 적극 주장해.

이렇게, 요즘 나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같이 성장하고, 서로 격려하며 지내.
그리고 여성예술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지금 이 편지를 읽는 너희는 어떤 동료와 함께,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그때도 다들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2010년대 후반을 돌아보면 페미니즘과 여성들의 일상에 수많은 영향을 준 사건들이 자주 발생했어.
2015년부터 메갈리아 탄생,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 불편한 용기 시위, 버닝썬 게이트, 낙태죄 헌법불합치, 그리고 최근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처음에 나는 이런 많은 사건과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바빴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을 깨달았지. 나는 이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을.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가상현실의 실체를 깨달은 것처럼, 페미니즘은 나와 한국의 여자들에게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로 물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줬어.

몇 가지 사건 이후, 나는 조금씩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관련 강의를 수강했어.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페미니스트로서 각성하는데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은, 2018년 마지막 ‘불편한 용기’ 시위에 나간 것이야.
그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모인 수많은 여자와 연대한다는 것에 나는 감동했어.
왜나면 그 동안 페미니스트가 늘어났다 해도, 내 주변에서는 보이질 않아 나 혼자만 고립된 기분이었거든.

이후 나는 더 열심히 페미니즘 공부와 모임, 시위에 참여했어.
그리고 작년 겨울에, 드디어 탈코르셋을 했지.
옷장의 하늘하늘한 ‘여성복’ 과 화장품을 버리고, 머리를 짧게 자르니 영락없는 선머슴이라고 가족들이 비웃긴 했지만, ‘기본’의 모습을 한 뒤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


♀♀ 너희에게 글을 쓸 때, 가장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 2050년에는 ‘탈코르셋’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 운동으로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있니? 아니면, 아직도 진행 중인 운동이니?
나는 이 운동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났기를 바라는데…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성은 반드시 ‘아름다움’을 갖추어야만 하는 인형으로 여겨지면서, 우리는 그 작은 틀에 들어가기 위해 본래의 모습을 깎고, 구겨 넣었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해.
그동안 ‘아름다움’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어난 수많은 폭력과 억압을 거부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저항을 부정하는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야.

다른 사람들은 꾸미는 문제로 사회 체제를 뒤엎는 것은 논리의 비약 아니냐고 했는데, 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어.
탈코르셋을 한 여자들은 꾸밈 노동에 쓸 돈과 에너지를 더욱 더 나은 곳에 투자를,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지.
그리고 세상이 만든 ‘여성의 규범’이라는 새장에서 벗어나, 더 멀리, 더 넓은 곳으로 행동범위를 넓힐 수 있어.
이 행동과 시도들은 사회의 기득권층, 남자들이 독식하고 있던 파이를 위협하는 것이라, 그들은 우리의 시도를 깎아내리고 가로막을 테지.

그러니 우리는 외모와 마음을 옥죄던 족쇄를 벗어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동안 우리에게 불합리하게 짜인 사회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 모습을 내가 죽기 전에 보고 싶은데, 2050년에는 얼마나 발전한 운동일지가 정말 기대돼.

두 번째로 궁금한 것은, 독립해서 사는 여성들이 얼마나 안정적인지야.
몇 년 전부터 집값이 계속 치솟으면서, 나와 친구들이 원하는 ‘독립’은 점점 멀어져만 갔어.
그래서 우리는 궁리 끝에, 각자 돈을 모은 뒤, 다 합해서 한 집을 사고, 그곳에 모여 살기로 했어.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고, 다들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좋다면서 결정된 일이지.

그런데 집을 살 때 중요한 대출상품과 주택정책들을 살펴보니, 죄다 신혼부부를 위해 맞춰져 있더라고.
그 탓에 나 같은 비혼 여성들은 꽤 난감한 상황이야.
혼자 사는 여성 가구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점점 늘어나는데,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신혼부부’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이 좀 화가 나기도 해.

그리고 나와 친구들이 모여 살기로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안전의 문제 때문이야.
혼자 사는 여성은 유난히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데, 나랑 친구들은 엄청난 쫄보라서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지 너무 뻔하더라고.
한 친구가 “앞으로도 이런 범죄들이 줄어들 것 같지 않으니, 혼자서 벌벌 떨지 말고 셋이서 힘을 합쳐 위기를 넘기자”고 웃으며 얘기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야.

게다가 살다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누군가가 도와줘야 할 텐데, 혼자서는 그게 힘들 거란 말이지.
그래서 나는 우리가 독립하기 전까지 ‘생활동반자법’이 만들어지기를 바라.
그렇게 되면 혈연관계나 부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서로 법적으로 의지하고 지켜줄 수 있는 ‘가족’이 많이 생길 수 있거든.

세 번째로,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정말로 ‘안전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해.
사람들은 ‘대한민국만큼이나 치안 좋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이 말에 의문을 가지겠지.
그렇지만 여성들이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얘기가 많이 달라져.

내가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3월, 불법적으로 촬영한 여성들의 성적인 사진과 영상을 공유한 채팅방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N번방’ 사건. 기억하고 있니?
그 회원들의 수는 자그마치 26만 명으로 발표되었고, 우리는 그 범죄자들이 가까운 일상 속에 숨어 지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지. 지금 그것과 관계된 청원이 수없이 많이 빗발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이 2019년 버닝썬 게이트처럼,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갈 까봐 너무 두려워.
여자들이 각성하여 청원을 올리고, 목소리를 높여 시위하고, 서로 무너지지 말자며 격려해도, 사회에서는 ‘계집애들에게 일어난 소동 갖고 유난’이라며 무시하려 들지.
사건 초기에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특별법을 만들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며 떠들던 언론은 어느새 조용히 입을 다물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쓰고.

나는 이런 끔찍한 사건과 이를 등한시하는 세상은 이제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맹세하건대, 너희가 이런 나라에서 살지 않도록, 여성 혐오적인 범죄가 빗발치고 피해자를 향한 조롱이 난무하는 세상을 뒤집도록, 나와 2020년의 자매들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할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슬슬 편지를 끝내야겠어.
요즘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예술인으로서 내가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뭘까 하고 고민을 많이 해.
우선, 나 같은 문화콘텐츠 창작자들이 더욱 많은 여성 서사 작품과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만들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결혼과 출산 후 경력이 끊긴 기혼 여성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 제도와 일자리를 마련해야겠지.
이건 정치의 영역이긴 하지만,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요구하겠어.

이 편지를 만약 2050년의 내가 받는다면, 아마 난 50대 중반의 여성이겠지.
만약 내 계획대로라면, 그때는 2020년에는 북한의 도시인 ‘개성’에 지을 문화센터를 준비하느라 분주할 거야.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여성 예술인 교사들을 채용할 거고, 실력과 재능은 충분하지만, 주변 환경 때문에 교육받지 못한 여성 청소년, 청년들을 학생으로 뽑을 거야.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고?
하지만 나는 앞으로 통일이 아니더라도, 북한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렇게 된다면 나는 북한의 숨은 페미니스트 자매들을 만날 것이 정말 기대하고 있어.
비록 1950년에 일어난 전쟁 때문에 멀어졌지만, 우리는 조선 말기부터 활동해 온 신여성들의 후배니까.

그럼 이만 줄일게 잘 지내, 2050년의 자매들아! 부디 앞으로도 꺾이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이길 바래!

From. 2020 Femisist Sister H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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