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과외 시범 수업을 하러 우리 단지 건너편 아파트를 찾았다. 요즘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부쩍 재미를 붙여 ‘이 시국에 과외 문의가 들어오다니’ 의아해하면서도 은근한 기대감과 뿌듯함을 안고 신나게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리고 역시 나는 실수를 한다. 글쎄 25동을 찾아야 할걸 24동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고 긴장한 채 미리 과외 멘트를 연습하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던 당시의 내가 이 사실을 알았을리가.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하나, 둘, 셋. 반응이 없다? 다시 한번 – 띵동. 불쾌한 듯이 “누구세요” 묻는 굵은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이내 불쾌한 목소리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 온 얼굴로 그보다 더한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는 남성이 나타났다. 아니, 남자가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건 조금 늦게 깨달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건 그 남자가 반바지인지 팬티인지 한 장만 걸치고 반나체 상태라는 점이었다. 1. 거의 벌거벗은 남자가 내 코앞에 서있다 2. 가만히 보니 이 남자는 짜증이 난 거 같다 3. 내 실수가 원인이다. 이런 일련의 정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입력이 되면서 나는 몹시 두려워졌다. 허둥지둥 해명을 하고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시범 수업은 준비한대로 잘 마무리되었고 집으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렸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자 ‘n번방 사건’ 의 주요 피의자가 포털이며 유튜브며 모든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조금 울었다.
고백하건데 ‘n번방 사건’의 잔혹함에 대해 모두가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던 때에도 나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분노에 공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분노가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나를 함부로 대한 남성에게 미칠 듯이 화가 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대신 폭식을 반복하며 나를 해쳤다. 나를 해치는 건 간단하고 쉬우니까. 지하철에서 남자 무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머릿속이 새하얘져도 그냥 나는 그런 말을 들을만했다고 납득하는 편이 더 쉬웠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여성 대상 폭력 사건들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었다. 지속적으로 고통에 노출되면 고통에 반응하는 역치가 높아진다고 했던가. 아마 그런 비슷한거겠지.
그런데 오늘 거리낌 없이 웃통을 드러낸 남자와 마주서있었던 그 짧은 순간 동안 남자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게 새삼 온몸으로 훅 끼쳤다. 그러고나서 ‘n번방 사건’ 소식을 다시 접하자 세상이 남성에게 허락하는 위치가 선명하게 다가와서 울음이 나온 것이다. 누구든 ‘n번방 사건’을 설명해준다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무엇일지 쉽게 알아 맞힐 것이다. 여성은 피해자의 자리에 놓이고 남성은 가해자의 자리에 놓인다. 이 분명한 위치 차이가 지긋지긋하고 싫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성 문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어떤 남성들은 ‘내가_가해자면_니들은_창녀다’ 따위의 해쉬 태그로 대응한단다. 묻고 싶다. ‘여성이 성매매를 했다’와 ‘남성이 성매매를 했다’라는 문장을 봤을 때 여자는 ‘창녀’일거고 남자는 성 구매를 했을 거라고 읽히는 이유가 무언지 생각해본 적 있냐고. 남성과 여성 각각에게 허락된 사회적 위치 차이를 고민한 적 있냐고.
나는 당신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상이 몹시 질투 난다. 당신은 어떻게 낯선 방문자를 옷을 벗고 맞이할 수 있어? 배달 음식을 시킬 때마다 문 앞에 놓아달라고 요청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도 한참이 지나 문을 열어 음식을 들여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 집안에서 옷을 갈아입다가도 혹시 베란다 블라인드가 많이 열려있었나 걱정해본 적은? 밤늦게 마주 오던 낯선 남자가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깜짝 놀라 소리지를 뻔했다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란걸 확인하고 애써 안심하려든 적이 있니? 수리 기사를 부르려다가도 집에 혼자밖에 없으니 안되겠다고 단념해본 적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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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은 편인 나는 밤 11시만 넘어도 집 앞 외출도 거의 하는 일이 없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휴대폰에 112나 가족 번호를 띄워놓고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곤 내가 경찰한테 전화를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긴 할까 생각도 한다. 이런 나와는 상반되는 여성 친구가 있는데 겁이 없는 이 친구와 얼마 전 같이 여행을 가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인적이 드문 거리를 잠깐이지만 걸어 다녔었다. 너무 무서웠는데 이상하게 짜릿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몇 번 집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밤 12시가 넘은 시간, 심지어 새벽 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귀가해봤다. 3월의 밤공기는 참 시원하다. 밤거리를 쏘다니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던 게 조금 억울해졌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내가 집에서 웃옷을 벗고 있을 때마다 어서 입으라고 다그치는 엄마에게 긴 편지를 써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