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30번째 생일이 다가올 무렵, 사람들은 흔히 한번쯤은 센티멘탈한 기분으로 "서른즈음에"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30대의 시작을 예고하는 다섯 글자가 "서른즈음에"라면, 40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공포의 다섯 글자는 과연 무엇인지를. 아니, 사실은 서른 살이 지나도 딱히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는데, 마흔 살이라고 대수일까 싶었다. 사람은 안 변하고, 스물 다섯 살에 살고 또 고민하던 대로 서른 살에 사는 법이다. 마흔 살도 마찬가지다. 서른 다섯 살에 살고 또 놀던 대로 마흔을 맞는 거겠지.
천년만년 가도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30대들은 정말 아줌마 아저씨들이었고, 40대라고 하면 정말 나이 많은 사람 같았는데, 30대 후반이 되어도 도통 늙어가는 느낌이 없었으니까.
잠깐, 그때 그 사람들도 30대 후반에는 그랬던 게 아닐까? 그 사람들이 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처럼 느꼈던 건 그때의 내가 내가 어렸기 때문이었던 걸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80년대에 40대였던 사람들의 사진과 지금 40대인 사람들의 사진은 확실히 나이 자체가 달라 보인다. 영양상태나 의료 수준, 생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전쟁 전후에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사람과, 나라 자체가 고속성장을 하며 어린이의 건강에 비로소 제대로 신경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청년 이후의 건강상태도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사진을 보면 정말 같은 나이가 아니라 10년은 넘게 차이가 나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은 자기 나이에 0.8 정도 곱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야 부모님 세대의 신체연령과 비슷할 거라는 허세어린 이야기도 나오는 것일테지.
바로 얼마 전에는 SNS에서 그런 이미지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이라나? 18세부터 65세까지는 청년, 66세부터 79세 사이가 중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앞에서는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뒤에서는 연금을 받을 시기를 슬금슬금 미루려는 음모가 아닐가 싶지만,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베이비 부머들이 아직도 청년을 자처하는 세상인데, 30대가 나이 든 척 해 봤자 번데기 앞에서 주름도 못 잡을 일이다. 나는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을 누리려 드는 초등학생처럼 이 상황을 조금 더 즐기기로 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누진다초점 렌즈가 얼마인지 알아요?"
서너살 연상의 지인에게서 생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을 들었다. 무척 당황한 목소리였다.
"한 50만원 잡아야 하지 않아요? 우리처럼 모니터 많이 보는 사람들은...."
"난 누진다초점은 한 50대는 되어야 쓰는 건 줄 알았어요."
아, 잠깐. 그러고 보니 누진다초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슬슬 안경을 두 개, 세 개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있다. 스페어 안경의 개념이 아니다. 일상용과 운전용을 쓰거나 하는 식이다. 아마 이 상태에서 누진다초점으로 넘어가는 것이겠지.
"이젠 안경을 바꾸기 위해 적금을 들 나이가 되어버렸어요."
물론 사람이 나이가 들면 수정체의 조절능력이 떨어지고, 원시성 노안이 오는 것도 알기는 안다. 알지만 "오, 그럼 우리처럼 근시인 사람이 나이 들면 원시성 노안이 와서 시력이 좋아지나요?"같은 농담을 하는 상황과 그걸 내 주변 사람들, 불과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그런데다 원시 하면 떠오르는 돋보기 안경은, 아무래도 어렸을 때 보았던 어른들 기준으로 생각해도 최소 50대 중후반 이상은 되어야 쓰는 물건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벌써 누진다초점을 고민한다고? 이제 40대 초반인 분이? 아직 마흔 다섯도 안 되셨는데?
"다들 컴퓨터를 많이 써서 그래요."
며칠 뒤, 렌즈를 바꾸러 다니는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새는 40대 중반만 되어도 다초점 렌즈를 찾기도 하시죠. 뭐, 이제 마흔살이니 슬슬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것 같은데..."
안경사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들리는 내 귀에는 마치 무자비한 선고를 내리는 것 같았다. 이야, 확 치고 들어오네. 깜빡이도 안 켜고 밀고 들어온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40대의 서막을 알리는 공포의 다섯 글자. 그것은 바로 지인이 처음 끼게 되었다는 "누진다초점"이었던 거냐. 그나마 글 쓰는 사람은 좀 낫지, 그림 그리는 사람은 처음 끼면 자기가 그리는 선이 왜곡되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들었는데, 그게 40대부터 쓰는 물건이라니.
그리고 잠깐, 뭐라고요?
"저 만으로 서른 여덟 살인데요."
"설 지났잖아요, 마흔이시네."
잠깐만요, 사장님.
정말 이 나라에서 태어나 40년을 살도록, 나이 세는 방식에는 익숙해지질 않는다. 과연 죽기 전에 익숙해질 날이 오기는 할까? 그건 그렇고 갑자기 펀치를 맞은 기분이다. 설이 지났으니 마흔이고, 이제 곧 누진다초점 렌즈가 필요한 시기가 온다.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1년에 한두 번 안경을 바꾸는 문제가, 그야말로 핸드폰을 바꾸는 것 처럼 적금이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핸드폰은 2년에 한 번 바꾸는 거지,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에게 눈은 구백 냥이요, 안경 렌즈란 매년 바꾸는 건데. 아무래도 이젠 안경을 쓰고 공놀이를 하거나, 안경을 아무데나 벗어 팽개쳐 두는 습관부터 시작해서, 잠결에 안경을 쓴 채로 세수를 벅벅 해 대는 한심한 일상 전부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50만원짜리 누진다초점 렌즈, 그것은 이미 렌즈가 아니라 렌즈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은데? 아직은 평범한, 원래 쓰던 안경에서 난시 방향이 살짝 틀어진 것을 교정한 새 렌즈가 테에 맞게 다듬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안경사님은 따끈따끈한 안경을 가져다 내 얼굴에 씌워주시며 말씀하셨다.
"근력운동 하세요. 스쿼트 같은 거."
"예.... 예?"
"노안이라는 것도 수정체를 조절하는 근육이 약해져서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근력운동을 해야지."
혼란의 연속이다.
"그거 하면.... 눈이 좋아져요?"
"적어도 덜 나빠지진 않겠어요?"
반신반의하며, 나는 안경사님을 쳐다보았다. 이 말을 믿어야 해, 말아야 해.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굳이 결명자차를, 굳이 블루베리 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굳이 건강음료를 챙겨먹는 인생 같은 것, 생각한 적 없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