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yourself!”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해주세요. 이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미디어에 범람하는 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항상 어색함을 느꼈다.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와 ‘나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라는 서로 상충된 감정이 섞여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유명인들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너 자신을 사랑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행복하고 다 가진 사람들이 못 가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의 역경과 불행의 원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초한 것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실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자기파괴적인 일을 일삼았으며, 내 몸은 나를 더 기능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제한하고 규제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하여,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 자신을 학대하고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일했다.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고, 저녁도 먹지 않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후, 씻고 학원에 가 수업을 듣고, 주2회 이상 공연을 보러 갔으며 주3번 이상 술자리를 가졌다. 힘들어 하면서도 이 일상을 일 년 이상 지속했다. 힘들어하던 내게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라고 의아해하는 친구에게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삶이 더 낫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런 내가 무너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서는 불안해 나 자신을 학대하고 그 불안감에 먹혀버렸다. 잠을 자지 않았다. 음식을 먹다가 먹지 않다가를 반복했다. 과음을 하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그리고 나는 곧 출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실은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던 날, 하루는 나의 파트너가 울며 말했다. 때리고 싶으면 자신을 때리라고. 자해하고 싶은 욕구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성으로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에서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너는 소중한 존재라 때문에 너를 때릴 순 없어.’
그 말은 즉, 나는 그래도 되기 때문에 나 자신을 벌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말하면 나의 사랑하는 파트너는 더 슬퍼졌을 것이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첫 걸음은, 바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부단히도 돌아왔다. 다음 글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