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른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강향란, 차순화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2019년 서른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강향란, 차순화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컬 <낭랑긔생>

초연 2019년 7월26일~8월18일 정동극장
대본 조은
작곡 류찬
연출 강유미

 

조선최초의 단발머리 여성은 사회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허정숙이다. 그가 머리카락을 끊은(斷髮) 때는 1920년이다. 바로 그 이듬해 기생 강향란(본명 강석자)이 머리카락을 끊었다. 

조선팔도가 온통 뒤집어졌다. 허정숙이 단발을 했을 때도 난리였지만 강향란이 단발을 하자 도를 넘은 비난이 더해졌다. 남녀 할 것 없이 ‘어디서 감히’ 몸 파는 기생 따위가 머리카락을 끊냐고 난리가 났다. 배운 여자도 안 되지만 기생은 더더욱 그러면 안됐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에 앞서, 타인의 시선 앞에 내놓은 ‘예인’의 몸은 모든 사람들, 특히나 남성들의 것이었다. 

남성들은 그가 머리카락을 자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남자는 일본이 강제해서 울분을 참으며 자르는데, 여자는 굳이 자르지 않아도 되면서 어째서 음란하게시리 머리카락을 자르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남자가 되려고 하느냐는 비난도 함께. 

그런데 이런 비난이 어딘가 낯이 익지 않은가? 마치 오늘날 여자 아이돌에게 ‘조신함’과 ‘바른 생각’, ‘웃는 얼굴’을 강요하며 툭하면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과 꼭 닮아 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을 향한 시선은 한치도 달라진 게 없다. 

뮤지컬 <낭랑긔생>이 제목처럼 낭랑하고 발랄하게 흘러갈 줄 알고 룰루랄라 정동극장에 앉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줄거리

간난이는 아버지의 빚에 팔려 한동 권번으로 들어와 권번장인 차순화의 눈에 들어 기생학교에서 예술 교육을 받지만 남자에게 웃음을 팔아 돈을 번다며 동기 기생을 무시하고 겉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컴플렉스를 들키고 싶지 않은 간난은 엄마에게서 온 편지를 가지고만 있다가 거기 쓰인 내용이 엄마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오열하고, 그런 간난을 동기들이 위로해 주면서 비로소 친구가 되어 그들로부터 글도 배운다. 차순화로터 강향란이라는 기명도 받은 간난은 동기들과 함께 노래를 배우며 경성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가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기생들이 출장 나가는 요리집인 연홍관 사장 시봉이 돈에 쪼달리는 간난의 동기 정숙을 꼬드겨 모델 일을 제안하는데, 알고 보니 화류병 치료약 광고. 향란의 난입으로 광고가 무산되자 화가 난 시봉은 적반하장으로 한동 권번 모든 기생이 화류병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연회에서 빼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순화는 자신의 인생을 건 권번이 위기에 처하자 권번의 명예 실추라는 죄목으로 정숙과 향란의 제명을 선언한다. 향란은 잘못한 건 시봉이라며 항변하지만 정작 순화의 마음을 돌린 것은 옛 친구 권명순이 나타나 건네준 애인이 남기고 간 시집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양반 출신의 부모 아래서 태어난 권명순은 새로 온 일본 관료를 죽이기 위해 기생인 척 신분을 속이고 들어와 순화와 친구가 된다.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라는 명순에게 순화는 양반 출신은 다르다며 부러워 하고, 그런 명순은 너도 음악과 춤을 가르치면 되지 않냐며 순화를 격려한다. 하지만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애인의 부탁으로 일본인 관료 앞에서 춤을 추다 추행을 당하자 순화의 애인은 순화를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죽고, 명순은 일본인을 총으로 쏴서 죽인 뒤 정체를 숨겨 미안하다며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받은 애인의 시집을 끌어안고 순화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음악회 날 단발머리에 남장을 한 향란이 무대에 오르자 주최측은 서둘러 무대 위의 불을 꺼버리지만 그들의 노래는 어둠 속에서도 크게 울려퍼진다. 

실존 인물 강향란의 이야기

뮤지컬 <낭랑긔생>은 마치 뮤지컬 <호프>처럼 조선최초 단발기생 강향란의 실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남은 것은 단 하나 그가 머리를 단발했고 남장을 했다는 것 뿐이다. 단발의 이유조차 강향란의 실제 인생과 거리가 멀다.

관객이 무대 위에서 실존인물을 보러 간다고 해서, 그 인물의 인생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보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식으로 빈 곳을 채워 넣고, 없는 인물이 들어와 긴장을 유지해 줄 지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개성이 없는 인물을 보는 것은 무슨 작품이 됐든 실망스럽기는 하다.

조선 최초의 단발령은 고종 32년, 김홍집 내각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서구와 일본의 단발 건의 이후 시작된 단발령으로 왕과 황태자가 솔선수범 머리카락을 잘랐다. 하지만 부모가 물려준 신체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성리학자들의 이론적 근거 아래 일본에 대한 반발심을 단단히 뭉친 조선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개화파들이 자발적으로 단발을 하기는 했지만 단발에 대한 반발은 1930년대까지 지속됐다. 

그 와중에 여성의 단발은 최악이었다. 조선 남성들에게 당시 여성의 단발은 해괴한 풍경이었다. 편리함이나 위생 따위의 말은 씨알도 안 먹혔다. 강향란은 단발을 했다는 이유로 불효, 패륜, 음란, 금수만도 못한 비천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라를 잃은 것은 조선인이라면 누구라도 슬픈 일이지만 사람들은 마치 여성들이 단발을 해서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듯이 난리였다. 망국의 원인은 부패한 정치인들의 잘못이지 단발에 있지 않다는 허정숙의 항의는 ‘어디서 여자가’라는 말로 묻혔다. 주정뱅이 남편이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게 싫으면 머리를 아예 박박 밀어버리라고 빈정대기나 했다. 

단발이 본격적으로 모던걸의 상징이 된 것은 1920년대 후반의 일이었고 그것마저도 소수의 일이었다. 시대는 모던인데 자유연애를 할 길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자유연애를 할 대상을 아주 쉽게 찾았다. 기생이었다. 신여성과의 연애는 위험이 따랐기 때문이다. 

자유연애는 여성의 것이 아니었기에, 연애의 대상인 기생이 자유를 외치며 머리카락을 자르자 난리가 났다. 20세기가 시작되던 1900년에 대구에서 태어난 강향란이 조선 천지를 뒤흔든 순간이었다. 말만 들어도 재밌을 소재다. 소재가 아깝다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진짜 주인공, 차순화

우선 이 작품은 벡델 테스트는 가뿐하게 통과한다. 권번장 차순화도 친구인 권명숙과 자신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주인공인 강향란도 동기들과 연애와 전혀 상관없는 미래, 꿈, 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가뿐하고도 모범적으로 백델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이 작품은 만들다 만 듯한 어설픔 때문에 주저앉는다. 애당초 강향란이 권번에 들어왔을 때가 몇 살이며, 권번에 들어가 세월이 얼마나 지났고, 그가 머리를 자른 것은 대략 기생이 되고서 얼마나 흘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실제 강향란은 기생 치고는 좀 늦은 열네살에 권번에 들어갔고 머리를 잘랐을 때는 스물 한 살이었다. 그 사이에 겪은 일만도 드라마 4부작은 될만한 이야기지만 어째서인지 이 작품은 앞쪽 1/3 의 분량을 강향란이 동기들을 혐오하는 장면에 할애한다.

그 와중에 정줄 놓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의외의 캐릭터가 바로 권번장으로 등장하는 차순화다. 강향란이 캐릭터로서 거의 성장하지 않는 동안, 권번장 차순화는 전사는 물론 동기까지 갖추며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 결국 실질적인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표면적 주인공인 강향란과, 마땅히 주인공이 걸었어야 할 길을 대신 걸어간 차순화를 함께 다루었다.

일러스트 이민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but...

강향란에게는 강렬한 운명이 대기하고 있다. 억압하는 기성의 질서에 반항하여 단발하고 거기에 남장까지 한다. 단지 그 운명으로 나아가는 길이 헐렁할 뿐이다. 

뮤지컬 <낭랑긔생> 의 전개에 따르면 사실상 강향란은 남장을 하고 단발을 할 뚜렷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가장 강렬한 동기라면 요정 사장 시봉이 계집애 운운, 기생 따위가 운운하며 해대는 협박이다. 

하지만 실제로 무대 위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은 순화의 바람대로 음악회를 잘 해내는 것이다. 권번장인 차순화가 자신의 미래까지 위험에 빠트리며 단발하고 남장을 한 향란을 무대 위에 올리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이 작품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 향란이 결말에 가서는 남장을 하고 단발을 한다는 모티브가 가능하게 되는 더 강력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 강향란의 단발에는 꽤 드라마틱한 이유가 있었다. 기생치고는 좀 늦은 나이인 14살에 기생학교에 입학했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유명 기생으로 등극한 강향란. 그는 문인 청년과 사랑에 빠져 기생일을 파하고, 그 남자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 배화학교에 입학한다.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 같았지만 그 남자가 변심하고 지원을 끊자 강향란은 수업을 낼 돈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강철교에서 자살을 기도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끌어 안고 밤새 운 뒤 그는 깨닫는다.

"나도 사람이며 남자와 똑같이 당당한 사람이다. 남자에게 의뢰하고 또는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은 근본부터 그릇된 일이다. 여자로서의 고통도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다."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그는 머리를 단발하고 남성과 동등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돈을 모아 배화학교에 돌아갔지만, 단발한 여성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에 뛰쳐나와 남장을 하고 강습소에 갔다. 그러나 이틀만에 정체가 들통 나 동아일보에 사진이 실릴 정도로 큰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이후로도 그는 근우회 활동과 동경유학을 거쳐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만, 유명 기생 출신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중국으로 건너간 이후 종적이 묘연해진다.

뮤지컬 속의 강향란의 본명은 ‘간난이’다. 실제 인물 강향란의 이름은 강석자지만 그 당시 조선에 있던 수많은 간난이, 끝순이, 말자 등으로 불리던 여성들을 대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낭랑긔생> 의 간난이가 그러한 대표성을 지닐 수 있을까? 

간난이라는 이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조선의 여성은 누구라도 물건처럼 팔려 자신의 의향과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난이가 향란이로 변신하듯, 주체적 여성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일까? 

만약 이런 뜻이라면 무척 아름다운 의미지만, 실제 등장인물로서의 간난이는 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정체되어 있는 인물이다.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르다가 순화 눈에 띄어 권번에 스카웃되지만 그는 기생학교의 동기들을 ‘술 취한 남자 앞에서 노래나 부르고 돈을 버는’ 천한 존재라며 내려다 본다. 

이러한 간난의 모습은 일본 영화 <사쿠란>의 주인공 키요하가 처음 유곽에 팔려왔을 때의 태도와 똑같다. 키요하는 유곽에 팔려와 몸 파는 기술을 배우지만 간난은 기생학교에 들어와 춤과 노래 등의 예인의 자질을 배우건만, 간난은 그 둘을 하나로 보고 동기들을 경멸한다. 타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간난에게는 다 같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때 간난이 하는 남성에게 의지해 밥벌이 한다는 비난의 초점은 사실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이 아니라 ‘몸 파는 여성’에 대한 경멸이다. 

그런 간난이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순화는 그런 간난의 모습을 지적하며 노래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봄을 맞는 바람꽃이 되라고 충고하고 향란이라는 기명을 선사한다. 어렴풋이 예인의 길을 짐작하는 간난이지만 친구들과의 투닥거림이 멈추는 지점은 어머니의 죽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다. 글을 읽지 못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간난은 집에서 온 편지에 어머니의 죽음이 쓰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오열하는데, 간난에게 온갖 경멸을 받았던 정숙이 가장 먼저 간난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넨다. 

이후 간난은 시봉에게 기만을 당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은 정숙을 감싸며 향란에게 "기생이란 그런 게 아니잖아!"라고 항의하는데, 사실 이 때 향란이 된 간난의 머릿속에 있는 ’기생‘이 무엇인지 관객은 알 길이 없다. 

간난이 그 당시 조선의 의미 없이 지어진 이름의 여인들을 상징한다면 최소한 간난은 운명을 향해 때로는 정체되고 때로는 깨닫고 때로는 뒤로 돌아갈지언정 변화해 가야 한다. 작품 속의 간난은 끝까지, 처음 기생학교에 끌려왔던 거칠고 제멋대로인 간난 그대로이며 ,그 안의 생각이 어떤 경로를 통해 변화해 갔는지는 관객의 상상의 영역 안에서만 가능하다. 여성의 삶이 구차하여 차라리 남성이 되겠다며 남장까지 한 간난은 자칫 그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로 보일 위험성마저 있다. 

간난이 주먹 쥐고 주변에 ‘옳은’소리를 하는 인물로 존재하는 동안(그 소리가 과연 옳은 것인지는 뒤로 미뤄두고), 간난이 대신에 주변 인물인 권번장 차순화가 착실하게 변화와 발전의 길을 걷는다. 순화에게는 몇 번이고 회상장면이 주어진다. 어린 기생이었던 순화가 독립운동가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의 죽음을 겪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 권번의 장이 되기까지 전사가 있다. 또한 친구인 명순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기생학교를 통해 이루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화가 실제로 시봉에게 “이게(권번이) 나에게 어떤 것인지 알잖아?” 하고 물을 때, 사실 관객들은 그에 대해 들은 적은 없어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마지막에 가장 큰 결심을 하는 인물도 순화다. 단발과 남장을 한 향란을 무대에 올리는 일생일대의 위험한 결정을 하는 사람이 바로 순화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이었던 권번의 기생학교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불 꺼진 어둠 속에서 노래를 계속 부르는 사람이 바로 순화다. 누구보다도 안정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생활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만큼 인생을 겪을만큼 겪은 인물이 그것을 내칠 때는 스무살의 주인공과는 다른 무게가 있다. 강향란이 거칠게 주변을 휩쓸고 다닐 때 순화가 보여주는 조용한 카리스마는 이 작품의 다른 주인공이 순화가 되어버렸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순화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but...

향란의 목표는 무엇일까?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은 처우를 받는 세상? 조선의 독립? 향란의 목표는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향란은 극중에서 처음부터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동기 은희를 통해 근우회를 알게 되고 ‘신여성에 물드는’ 책을 빌려 읽으며 성장한다는 설정이지만, 실제로 그는 처음부터 남성과의 불평등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인물이라 남녀평등에 대해 근우회에서 눈 뜨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에 긴 머리를 싹둑 자를 때조차 그가 무엇을 위해 머리를 자르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남자가 되겠어!’ 하는 대사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을 정도다. 조선의 여성 영웅들을 소재로 한 한글 소설 속의 여성 주인공들이 남성의 옷을 입고서야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그 여성들은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보다 더 영웅적인 행동을 한 뒤에, 자신이 사실은 여성임을 드러내 남성들의 세상을 놀래키지만 강향란의 대사는 모호하게 남는다. 모호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순간이 순식간에 넘어가고 무대는 암전되는데, 그 순간 머릿속도 암전이 되는 듯한 혼란이 인다.

인생의 목표에 관해서는 순화도 만만치 않다. 순화는 나름 주어진 인생에 안주하는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사실은 앞에서 말했듯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화가 마지막 순간 힘들게 구축한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생들의 자존심일까, 아니면 그 자신의 기개일까? 모호하다. 모호해서는 안 될 것들이 모호한 것, 그게 <낭랑기생>의 안타까운 점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뮤지컬 <낭랑긔생>은 처음부터 조선 최초 단발머리 기생 강향란의 인생을 다룬다고 했고 관객들은 당연히 단발의 의미와 그 파장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강향란이 단발을 하고 남장을 하더니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단발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부분은 동기들과의 발전 없는 투닥거림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순화와 명순의 과거 회상이다. 

실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은 정숙이 화류병 광고에 연루되면서 권번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위기가 닥치는 때부터 마지막 십오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가분수같은 이러한 구성 때문에 주인공인 강향란은 느닷없이 머리를 자르고 느닷없이 남장을 하며 순화는 권번을 희생하는 결심을 한다. 이 모든 것이 플롯의 결말을 위해서다. 

강력한 플롯이 있다면 그에 맞는 분량 분배와 사건이 있어야 한다.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이 작품 속에서 연애에 구애받는 인물은 없다. 과거의 순화는 사랑하는 시인에 대한 동경으로 일본 관료 앞에서 춤을 추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만, 현재의 순화는 그의 시집을 가슴에 품고 그가 남긴 유지인 대한독립보다 더 어려운 여성의 자주성을 위해 나아가겠다고 결심을 한다. 

강향란도 마치 음악선생인 석윤과 정분이 날 듯 하지만 결국 별 일이 없다. 이 작품에서 석윤은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 강향란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나누는 것도 아니거니와 다른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다. 가진 것 하나 없는 향란에게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 인물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향란의 배포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지도 못하는 장면이다. 그야말로 쓸모 하나 없이 동경 유학한 지식인이 번뇌를 하고 있는데 왜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실존 인물 강향란은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기까지 인생 다시 없는 사랑을 한다고 착각했던 인물이 있었고, 그 인물의 배신을 통해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의 허망을 깨달았다. 그러나 뮤지컬 <낭랑긔생>은 향란이 남성을 통해 그러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동기들과 근우회와 권명순을 그 자리에 끼워 넣는데, 그 깨달음의 과정이 마치 여성주의 전단지를 읽는 듯한 단조로운 대사로 이루어져 있고, 강향란의 태도 역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또 한 번 들었다는 식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강철도의 자살 기도 장면에서 향란의 대찬 솔로곡을 듣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밌는 것은 뮤지컬 <낭랑긔생>이 강향란의 어머니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부분은 뒤늦게 어머니의 죽음을 깨닫고 오열하는 모습이다.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팔려 낯선 남자 손에 끌려 오면서도 어머니의 약값이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반항을 멈출 정도로 향란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 어머니의 죽음은 향란이 기생 동기들과 마음을 여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마치 뮤지컬 <호프>에서 호프의 결여가 어머니인 것처럼, 강향란의 약한 고리도 어머니다. 

호프의 실제 어머니는 호프와 사이좋게 백 살 넘게 살았고, 강향란의 어머니는 자살을 기도했다 돌아온 딸과 부둥켜 안고 울 때까지 생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인물들의 가장 강력한 감정적 결여의 약한 고리를 ‘어머니’로 설정하고 어머니의 상실을 끼워넣는 것이다. 어머니는 대부분 사람들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겠지만 ‘어머니 사용법’이 상실로 인한 신파로 이어지면서 주인공의 각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but...

향란이 주춤거리는 동안 이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은 순화다. 순화는 착실한 발전의 단계를 밟아간다. 순진하고 사랑밖에 몰랐던 과거에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애인은 죽는 다. 이런트라우마를 딛고 권번의 장이 되었지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박차고 후배 기생들에게 주체적인 예인의 삶에 대한 모범을 보이는 인물로 거듭난다.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이토록 잘 변화해 가는 인물이 만들어지는 동안 강향란은 왜 제자리 걸음만을 계속할까?

그 이유는 강향란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낭랑긔생>을 보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원하지 않았던 기적에 오르지만, 동기들을 통해 서로가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며 여성들간의 연대를 끈끈하게 이루어내고, 서로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에 이 작품에게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바라는 장면들을 탄탄하게 보완해서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실제로 보여지는 것 사이의 지나친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좋은 소재를 선택한 그 안목을 믿고 싶다. 순화를 만들어내는 실력으로 향란에게 입체감을 부여하기를, 주인공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인물인 생생한 향란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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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뮤지컬 속 여성

01

2019년 첫째 주, 마리 퀴리

02

2019년 둘째 주,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03

2019년 셋째 주, 오목

04

2019년 넷째 주, 클레어

05

2019년 다섯째 주, 알렉산드라 오웬스

06

2019년 일곱째 주, 그레첸

07

2019년 여덟째 주, 제루샤 '주디' 애봇

08

2019년 아홉째 주, 메리 포핀스

09

2019년 열번째 주, 핑크 레이디

10

2019년 열한번째 주,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11

2019년 열두번째 주, 아랑

12

2019년 열세번째 주, 샬롯 드 베르니에

13

2019년 열네번째 주, 나팔, 혜란, 이은숙

14

2019년 열다섯번째 주, 에바 호프

15

2019년 열여섯번째 주, 1976 할란카운티의 여성들

16

2019년 열일곱번째 주, 앤 보니, 메리 리드

17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1) 마법에 걸린 사랑

1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19

2019년 스물한번째 주, 빨래

20

2019년 스물두번째 주, 자스민

21

2019년 스물세번째 주, 심청

22

2019년 스물네번째 주 안나 아르카지예브나 카레니나

23

2019년 스물다섯번째 주, 조왕, 덕춘

24

2019년 스물여섯번째 주, 테레즈 라캥

25

2019년 스물일곱번째 주, 음악극 <섬>

26

2019년 스물여덟번째 주, 기네비어와 모르가나

27

2019년 스물아홉번째 주, 허초희

28

2019년 서른번째 주, 강향란, 차순화

현재 글
29

2019년 서른한번째 주, 진

30

2019년 서른두번째 주, 개비, 바비, 도나, 울리

31

2019년 서른세번째 주, 록산

32

2019년 서른네번째 주, 옹녀

33

2019년 서른다섯번째 주, 엠마 커루

34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35

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마리 앙투와네트

36

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베스

37

2019년 서른여덟번째 주, 그 여자

3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4) 호커스 포커스

39

2019년 마흔세번째 주, 루미 헌터

40

2019년 마흔다섯번째 주, 아드리아나와 엘로이즈

41

2019년 마흔여섯번째 주, 레베카 드 윈터스

42

2019년 마흔일곱번째 주, 아이다

43

2019년 마지막 주, 암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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