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뮤지컬 속 여성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알다여성 주인공

2019년 뮤지컬 속 여성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이응

<바그다드 카페>

감독 퍼시 아들론
각본 퍼시 아들론, 엘레노어 아들론
작곡 밥 텔슨
출연 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 CCH 파운더, 잭 팰런스
개봉 1987년 11월 12일(유럽), 1988년 4월 22일(미국)
수상 세자르상 외국어 영화상, 독일 영화상 최고의 영화, 독일 영화상 최고의 오버올 퍼포먼스, 세자르상 유럽연합(EU) 영화상

 

<바그다드 카페>는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주인공인 독일인 야스민과 미국인 브랜다는 여성으로서의 연대만이 아니라 인종을 넘어선 연대를 보여준다. 이 둘의 공통점은 가족이다. 야스민이 남편을 버린 날, 브랜다는 남편을 내쫓는다. 독일, 미국 양국의 극단적인 위치에 있는 두 남편은 매우 짧은 시간 등장함에도 견디기 힘든 인물들이다. 야스민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었던 아이와 같은 것이고, 브랜다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정신 차리고 보니 하염없이 엉망인 늪과 같은 존재다. 이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다. 바그다드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줄거리

야스민은 한국 엄마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관광을 왔지만,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에는 초대형 보온 커피포트와 거대한 아이스박스까지 있다. 야스민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일박이일 놀러 가면서 압력밥솥에 불판과 칼갈이까지 챙겼을 것이다. 

야스민과 남편의 싸움은 일방적이다. 남편은 야스민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결국 야스민은 짐을 챙겨 차에서 내려버린다. 남편은 야스민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야스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 야스민이 아끼는 보온 커피 포트를 길 위에 버리고 떠난다. 하지만 야스민은 그 보온병을 집어 들지 않는다. 독일 시골마을 로젠하임으로부터 미국 사막까지 살림살이를 가져왔던 자기 자신을 버리듯이, 커피 포트를 길바닥에 버린다. 야스민은 완고하게 무거운 가방을 끌고 걷고 또 걷는다. 

야스민이 당도하는 바그다드 카페의 주인 브렌다도 야스민 못지 않게 엉망진창이다. 백수인 남편은 카페 운영은 커녕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않는 건달이고, 딸은 착하지만 놀기만 좋아하고, 바하만 줄창 쳐대는 아들은 어쩐 일인지 벌써 갓난아이가 있다. 이 흑인 가족은 가족 중 최소한 한 명은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흑인들의 밑바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야스민과 브랜다의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야스민은 퉁명스러운 흑인 여성 브랜다를 보고 식인종을 연상하고 그들의 솥 안에 든 자신을 떠올린다. 브랜다는 사막 한가운데 뚝 떨어진 듯 나타나 아무도 묵지 않는 모텔에 묵겠다는 야스민을 수상하게 여긴다. 둘 다 선입견과 편견의 덩어리같지만 먼저 웃음을 띄는 것은 야스민이다. 주인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나다! "하고 대답하는 브랜다의 모습에, 야스민은 주인이 여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다. 

처음 야스민을 환영해 준 사람은 트레일러에 거주하는 카우보이 화가 콕스다. 그리고 카페에서 일하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요리사인 카후엔가, 브랜다의 딸 필리스, 아들인 살로모 등이 차례로 야스민에게 마음을 열어가면서 야스민은 고독의 눈물을 멈추고 그들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야스민에게 열리려는 마음을 다잡는 브랜다의 마지막 저항은 손자를 돌보는 야스민에게 당신 아이나 가서 돌보라고 고함지를 때다. 아이가 없다고 눈을 돌리는 야스민의 대답에 브랜다는 한 순간 자신과 야스민의 동질성을 깨닫는다. 너무 닮아서, 버림받은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서, 화를 냈던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두 여성은 버터처럼 부드럽게 녹아든다. 할 일 없는 저녁 시간에 익힌 마술로 식당 손님들에게 사랑받으며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에서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 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하지만 그 순간 행복은 끝난다. 보안관 어니가 찾아와 야스민의 관광비자 만료와 불법노동 문제를 짚으며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야스민이 사라진 바그다드 카페는 다시금 먼지만 휘날리고 모두가 야스민을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지직 거리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 후, 야스민이 돌아온다. 완전히 새로워진, 머리카락을 내리고, 하얀 투피스를 입은 야스민. 어둡고 외로운 바그다드 카페가 좋았던 타투이스트 데비는 밝고 따스해진 분위기를 못견디고 떠나버리고 바그다드 카페는 다시금 북적인다. 그리고 그곳은 뮤지컬적인, 즉 비현실적인 '매지컬'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영화를 무대 뮤지컬로 변신시키는 것은 무대 뮤지컬을 영화로 변신시키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이 작품처럼 대사보다는 클로즈업과 롱 테이크의 촬영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변화를 그려내는 작품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라는 장르만이 가진 매력이다. 이를 무대로 옮길 때는 무대만의 매력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나 모하비 사막이 배경인 이 작품의 경우 무대로 옮겼을 때 그 황량함을 음악과 디자인으로 살려내야 한다. 쉽지는 않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꼭 보고 싶은 작품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드라마의 강렬함 때문이다. 마술 같은 이 공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인과 흑인과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아무 편견 없이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함께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하는 이야기는 아직 지구상에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독일 사람인 퍼시 아들롱 감독의 미국에 대한 ‘이상향’의 표현일 것이다. 영화라는 것이 반드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면, 이러한 아름다운 이상향이 어딘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Calling You"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먼지의 맛까지 느껴질 듯한 즈베타 스틸의 노래 “Calling You"다. 이 노래 없이 뮤지컬 <바그다드 카페>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노래가 영화보다 더 많이 알려졌을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다. 2004년 바르셀로나에서 올라간 뮤지컬 버전의 <바그다드 카페>는 브랜다 역에 이 노래를 부른 즈베타 스틸을 캐스팅 해서 화제가 되었다. 

2005년 리용 페스티발에서 공연된 <바그다드 카페>의 인트로 장면. 콜링 유를 리드하는 사람은 브랜다 역의 즈베타 스틸.

하지만 인트로로 들어오는 이 노래는 무대 위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브렌다, 야스민 혹은 다른 제 삼자가 부를 것인지에 따라서 작품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쓸 수만 있다면 반드시 쓰고 싶겠지만, 그 자체가 독이 될 수 있는 그런 곡이라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하지만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팬이라면 누가 감히 이 노래를 거부할 수 있을까.

야스민, 사막을 청소하다

낡은 주유소 카페에 딸린 아무도 묵지 않으려는 모텔 구석방에 묵게 된 야스민이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만치 절망스러울 때 마치 시트콤 <프렌즈>의 모니카처럼 엄마닭이라도 된 듯 카페 전체를 청소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야스민이 직접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다른 등장인물들이 같이 들어와 노래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지난한 청소가 끝난 후 야스민의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라는 한 문장이 중요하다. 이 대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 장면은 노래로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실 영화에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납득되는 장면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야스민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기가 독일인가요, 모하비 사막인가요?

이 작품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지만 사실은 독일 영화다. 감독인 퍼스 아들론이 독일인이기 때문이겠지만, 이 안의 모든 인물들은 독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서 야스민이 발견한 유일한 카페인 ‘바그다드’의 아들래미가 아무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고 미친듯이 피아노만 치는데 그게 바하라니. 사막에서 트럭 운전수들의 타투를 해주며 생계를 유지하는 데비의 애독서는 독일이 사랑하는 작가 토마스 만의 가장 자기파괴적인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 이며, 카페의 벽에는 바하의 초상화가가 촛불 아래 빛나고 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어느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일까? 

야스민은 더 이상 문 밖에서 문 여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타자의 삶을 살기를 거부하고, 카페 식구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데, 그건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미 독일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바하를 치다가 자신을 보고 절망적인 얼굴로 손가락을 멈춘 살로모에게 음악을 계속하라는 말만으로도 야스민은 살로모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필리스와 살로모, 카후엔가, 콕스, 지나가는 배낭 여행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비로소 사막의 일부가 된 야스민의 즐거움이 확장되어가는 장면을 바하로 시작해 업비트로 맺는 즐거운 장면은 꼭 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론 이 장면의 끝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브랜다의 난입이다.

가지고 싶지만 갖지 못했거나, 가지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가족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야스민에 대해, 브렌다에 관해 설명하려 들지 않는 데 있다. 우리는 그저 거기 있는 야스민을 본다. 야스민의 행동과 브랜다의 행동이 그 다음의 행동을 설명하고, 그들의 캐릭터가 작품을 굴러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소소한 일상들이 이들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본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야스민이 아이를 간절히 원했음을 알 수 있다. 브랜다는 원치 않았던 손자까지 데리고 사는 자식 부자지만, 자식들 때문에 인생이 두 배로 더 고달프다. 야스민은 브랜다가 부럽고, 브랜다는 여행자이고 이 곳을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야스민이 부럽다. 이들은 서로 너무나 닮았기에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밀어낸다. 

브랜다에게 야스민이 아이가 없다고 속삭이듯 고백했을 때, 브랜다는 화를 내던 참이라 그 가속도를 거스르지 못하고 야스민의 눈 앞에서 문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이내 그 문이 다시 열릴 때, 야스민의 눈 앞에 있는 브랜다는 문을 닫았던 그 브랜다가 아니다. 자신이 닫은 문 앞에서 브랜다는 자신을 보았고, 자신에 대한 연민과 야스민에 대한 연민의 종류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짧은 순간에, 두 여인은 서로에 대한 모든 편견과 오해를 버린다. 어느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단 말인가. 

브랜다가 아이를 품에 안고 다시 문을 여는 순간은 이 영화 최고의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이 순간이 짧게 지나가지만, 무대에서는 이 순간의 브랜다와 야스민의 순간이 영원처럼 박제될 수도 있다.

매직

이 먼지 가득한 사막에서 “오, 낯선 분이군요!” 하고 가장 먼저 야스민을 반겨주었던 화가 콕스와 야스민의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도 역시나 중요하다. 처음에는 경계심으로 모자까지 쓰고 꼭꼭 껴입던 야스민이 나중에는 속옷 차림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누드로 그의 앞에 앉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야스민의 말 그대로 “매직”이기에. 이것은 작품 안의 유일한 로맨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콕스가 이민국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자신과 결혼하자고 했을 때, 야스민의 마지막 대답은 “브랜다와 상의하겠다”였다. 야스민의 동료는 콕스가 아니라 브랜다이기에.

매직 2

바그다드 카페가 마술처럼 북적이고, 브랜다와 야스민의 내면에 불법 노동이라던가 비자 만료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을 때, 설익은 즐거움이 가득한 카페 안의 장면은 그야말로 마지막 뮤지컬 장면의 전조와도 같다. 이 장면을 이별과 마지막의 하이라이트 뮤지컬 장면으로 이어지는 송 시퀀스로 만든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상상은 그저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바그다드 카페>를 실현한 팀도 있으니.

바르셀로나의 페스티발에서 2004년에 처음 <바그다드 카페> 월드 프리미어 공연을 올린 도브테일 프러덕션은 실험적인 음악극이나 콘서트, 티비 시리즈, 영화 등을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밥 텔슨이 작곡하고 리 브로이어가 가사를, 감독인 퍼시 아들론이 대본을 쓴 이 뮤지컬은 비록 상업 무대까지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어딘가에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누군가를 부르고 그 누군가가 응답하는 마술같은 이야기이기에.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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