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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SF 읽기 1. <관내분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SF(Science Fiction)는 남성이 쓰고, 읽고, 향유하는 남성의 장르일까? 아니다!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고, 여성이 향유한다. 어떤 작가의 어떤 이야기를 오늘은 읽어 볼까, 외롭게 덕질하던 SF 팬들에게 좋은 SF를 골라 추천한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은 SF를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일단 “섹스 로봇 이야기가 너무 흔하게 등장한다.(중략) 예심 기간 동안 응모작의 절반을 넘어선다.(중략) ‘로봇은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원칙과 ‘여성형 섹스 로봇’이 결합할 경우,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해 보시기 바란다.”는 배명훈 작가의 심사평이 주목을 받았다.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한 신예 김초엽 작가의 충격적인 등장도 있었다. 

SF는 남성의 장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수상 작가들의 명단을 보고, 여성 작가의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도 납득했다. 흔히 SF는 남성의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 독자는 라이트하다고 여기거나, 여성 창작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 종종 보인다. 실제로 이 분야에서 글을 쓰다 보면 여성 작가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으며, 그 성취 또한 훌륭하다는 것을 수시로 느끼게 되는데도 말이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 바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의 수상 목록이다. 또한 올해 초 출범한 한국 과학소설작가연대의 회원작가 명단, 얼마 전 텀블벅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책을 출간한 온우주 출판사의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도 그렇다. (이 책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다루게 될 것이다) 최근의 이슈들은, SF를 쓰는 여성들의 숫자는 결코 외롭지 않을만큼 많으며, SF를 읽고 향유하는 여성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 이하 소설 <관내분실>에 대한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대상 수상작인 <관내분실>은,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 보편화된 시대, 사람이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기억과 언행을 바탕으로 구현한 마인드를 만나볼 수 있는 시대, 그래서 타인의 죽음 후에 ‘그 사람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말해주었을까?’라는 질문이 마인드 도서관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이야기는 일하는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경력이 좌절되는 과정을, 그로 인한 혼돈과 우울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지민은 '우울증에 걸려 자신에게 집착했던 엄마'와 '냉담한 아버지'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지민은 임신을 하고 나서 뱃 속 아이에게 모성애가 아닌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혹스러워하고, 마침내 죽은 엄마의 마인드와 만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엄마를 검색할 수 있는 인덱스는 도서관에서 삭제되고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마인드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마인드를 되찾기 위해 단서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이전에, 결혼한 부부에게는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해서 일을 잃게 되진 않지만, 아이가 생기면 가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업무에서 배제당하는,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좌절들이 더 선명하다. 

물론 소설 속에는 지금, 2018년의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일들보다는 훨씬 온건하고 자비로운 정책들이 등장하고, 임산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지금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렇다고 해도,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여성에게 "너는 이제 어머니가 될 거니까"라고 말하면서 권한을 줄이고, 일의 중심에서 밀어내며, 모성애를 강요하는 모습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SF는 기술을 소재로써 다루는 이야기인 동시에, 다른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김초엽 작가는 수십 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어쩌면 미래에도 계속될지 모르는 일하는 여성들의 좌절을 비추는 훌륭한 거울을 만들어냈다. 다음 작품과, 작가의 미래가 함께 기대되는, 훌륭한 작품을 만났다.

SF,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좌절을 마주 보다

물론 다른 작품들 역시, 지금 기술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좌절을 비춘다는 면에서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김혜진 작가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는, 외동인 자식이 부모의 개호 문제를 혼자 떠맡아야 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환자를 돌보는 개호 안드로이드 시스템인 TRS의 시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오정연 작가의 <마지막 로그>는 죽음을 선택하고도 후회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과, 약간의 자유의지를 갖고 인간의 패턴을 더 알기를 원하는 안드로이드를 통해 죽음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고통없는 자살이나 존엄사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지금 시대에 적절한 관점이다. 

어떤 면에서 <3단변신 로봇 84 태권V(브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루카 작가의 <독립의 오단계>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기계의 존엄성과 권리, 인공지능이 장착된 기계 몸으로 다시 태어난 인간의 자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동성애자인 자식을 용납하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가학적이고 집착적인 독친(毒親, 독 같은 친부모)의 문제를 담고 있다. SF를 사랑하는 독자는 물론, 근미래의 풍경에 비추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여성, 약자, 소수자의 갈등과 괴로움을 만나 보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이 세계로 들어오는 좋은 디딤돌이 될 만한 책이다. 

2018.04.20 15:34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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