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생각하다한국문학칼럼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허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의 출간 이후, 책을 소개할 때 종종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한국문학사에서 정전화한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 중심의 거대 ‘문학’을 부수고, 복수의 다양한 목소리가 교차하는 ‘문학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문학’을 설명할 사례가 지난주 SNS에서 화제였던 이외수의 「단풍」 사건이다.

짧게 지는 가을 단풍을 ‘화냥년’에 비유한 이 시는 SNS에서 논쟁을 이끌어냈다. 이외수는 이 시의 여성혐오적 구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량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난독증이 심하고, 난독증이 심한 사람일수록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거나 행간을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계정 차단으로 응수했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거론하며 홍위병을 연결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스스로를 갱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난’은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물을 여성의 신체에 비유하는 것은 관습적으로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죽은 비유를
거부하는 독자들

하지만 한국문학이 ‘죽은 비유’를 거듭하는 동안, 문학 장의 독자들은 이미 달라졌다. ‘#문단_내_성폭력’을 경유하면서 젠더화된 한국문학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고, 문학 장의 권력을 다원화하려는 무크지들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SNS에서는 패러디 열풍이 한창이다. “남성을 사랑하며 존경하며 추앙하고 경애하며 남성의 미를 찬양한다”는 트위터의 한 계정은 ‘남성문학’ 텍스트들을 패러디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문학을 안으로부터 부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의 젠더를 본격적으로 심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근대문학은 호랑이를 옆에 낀 미소년과 함께 출발했다. 근대 민족국가의 1등 시민으로 남성 청년이 호명된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상상하는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제국주의 아버지에 의해 조선은 청년으로 바로 설 기회를 박탈당하고 거세된 남성성을 기원으로 갖게 된 것이다. 『무정』의 이형식이나 『만세전』의 이인화는 승인해야 할 국가도, 부정해야 할 아버지도 없는 ‘고아’ 남성의 내면을 재현하는 주체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문학의 규범은 사실상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라는 ‘지배적 허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그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무엇인지는 실상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알 수 없는 상태, 즉 멜랑콜리아적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문학에서 지속적으로 애도하고 회복하려고 하는 ‘진짜 남성’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애도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문학은 늘 ‘위기의 남성’을 그린다. 도시의 공장에서 희생당한 누이를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김승옥의 소시민, 고향에 돌아가라며 백화에게 차표를 사주는 황석영의 노동자 등 남성주체들은 언제나 여성을 경유해서 훼손되지 않은 세계를 상상한다. 이런 식의 여성 재현은 언제나 남성의 자기 연민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토록 열심히 주목해 온 남성의 내면조차 납작하게 그리는 오류를 범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 없이 애도조차 할 수 없는 남성성이라니, 그 토대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문학을 ‘부수는’ 것은 한국문학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질서들을 다시 질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문학의 젠더적 전환은 문학사 보편적 주체를 뜯어보고, 비-헤게모니적 주체로 만드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해체시의 시대에도/해체시를 쓰지 않았고(못했고)/상업주의적 사랑시의 시대에/사랑시를 쓰지 못했으며(않았으며)/민중시의 시대에도/민중시를 쓰지 않았다.(쓰지 못했다)/요즈음 말로 한다면/독재 지배 이데올로기를 방조해온/매판미학의 일부/흉칙한...”, “깨끗이 도배된 벽지처럼 무늬 맞춰 발라진/한국문학사 앞에서/나 오늘 한 마리 쥐벼룩/여류 쥐벼룩(이곳에서 방점은 매우 중요하다)”(김승희,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이 된 얼룩이자 오점으로서, 한국문학사를 부수는 문학들이 되기 위해 한국문학의 젠더를 보다 심문해야 할 때다.  

* 글 제목은 김승희의 시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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