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미즈킴씨 2. 35세 유하나씨

생각하다여성의 삶30대인터뷰

80년대생 미즈킴씨 2. 35세 유하나씨

미즈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저는 서울에 사는 유하나입니다. 대학 기관에서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어린 시절 꿈

지금 생각하면 좀 막연하지만,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학창 시절에 한비야 씨가 여러 여학생들의 롤모델이었어요. ‘바람의 딸’ 시리즈를 읽으면서 나도 외국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지금 하는 일하고도 관련이 있네요.

지금 하는 일

대학 내 언어교육원에서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학생들의 국적과 배경은 정말 다양해요. 한류 팬들도 있고, 한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비 유학생, 교환학생, 한국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 외교관도 있어요. 이 사람들이 한국어를 학습할 때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그것을 교육·훈련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조금 더 설명하면, ‘날씨가 좋아서 산책할까요?’ 같은 문장은 외국인들에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문장이 왜 안 되는지 설명하고 정확한 문장을 유창하게 쓸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거예요.

외국인들에게는 왜 ‘날씨가 좋아서 산책할까요?”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한국어에는 이유를 표현할 수 있는 문법이 많아요.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좋으니까, 날씨가 좋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므로…’ 이런 표현들을 학생들의 모국어로 바꾸면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 어떤 문법을 쓰는지 정확히 설명하고 연습시켜야 돼요. ‘날씨가 좋아서’ 다음에는 ‘산책할까요?’ ‘산책하세요.’ 같은 문장이 올 수 없어요. 한국 사람들은 평소에 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죠.

왜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교육학,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국어교사 임용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2008년 일본에 교환학생을 가서 ‘한국어 교육’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국어교육과는 또 다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럼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서는 알기 힘든 사실을 알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생각보다 쉽게 풀리기도 해요. 그래서 좀 거창하지만, 넓게 보면 언어 교육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실제로 한 교실에 10개국 이상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있어요. 보통 10주 정도 수업을 하는데 수업이 끝날 때쯤 되면 서로를 국적이나 인종 대신, 한 명 한 명 특성이 모두 다른 ‘개인’으로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이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어 교사로서 외국인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아요.

즐거운 이야기도 많지만,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할게요. 학생들이 가끔 한국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할 때가 있어요. 그 중에는 외국인 차별에 대한 것도 있어요. 한 예로 학생들이 종강 기념으로 치킨집에 갔는데, 외국인은 들어올 수 없다고 했대요. 정말 이해가 안 되지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이해시켜야 되는지, 어떻게 바꿔 나가야 되는지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그렇다면 반대로 스스로가 유학생 시절이었을 때 일본에서 특별히 느꼈던 점이나 차별이 있었나요?

제가 일본에 있었을 때는 드라마 ‘겨울연가’ 덕분에 막 한류 붐이 시작되고 있을 때라 한국 유학생들에 대한 인식도 좋았어요.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 정치 문제로 안 좋은 뉴스가 나올 때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만난 일본 사람들은 모두 다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었어요. 특히 ‘욘사마’ 팬클럽 어머님들께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친엄마 이상으로 잘 대해주셨어요. 

일본에서 환대 받았던 그 시간이 지금도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제 학생들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도 그들의 인생에서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 이민

하나씨 소셜미디어에서 아이의 성장을 담은 포스팅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일을 하면서 육아도 해야 하는 소위 ‘워킹맘’으로 사는 기쁨과 슬픔이 느껴졌어요. 

결혼 5년 차, 워킹맘 4년 차에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보통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데, 내가 내 일상과 삶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는 좀 슬퍼요. 커리어는 물론이고, 여가생활, 인간관계, 아이가 어렸을 때는 씻고 밥 먹는 것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몇 달 전에 남편하고 유모차를 끌고 서대문에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면서 홍대를 지난 적이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날 깨달았는데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저녁 때 친구들과 밖에서 모임을 한 적이 없었던 거예요.

또 하나는 일, 살림, 육아, 자기 계발을 다 하려다 보면 누군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이상 빈틈이 생기더라고요. 어차피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는 날은 그런 다짐도 소용이 없을 때가 있어요. 아이 덕분에 웃을 때는 정말 행복하지만, 솔직히 ‘워킹맘으로서의 기쁨’은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요. ‘워킹맘으로서’ 기쁨을 느끼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워킹맘으로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제도적으로 당장 급한 것은 믿고 맡길 만한 보육 시설이에요.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설이 직장 근처에 있으면 제일 좋겠지요. '육아는 엄마 책임'이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돼요. 저희 어머니만 해도 플로리스트로 일한 지 20년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자식과 손주를 제대로 못 챙겼다는 죄책감을 갖고 계세요. 

하지만 이런 인식은 가장 나중에 바뀌는 것 같아요. 제도가 보완돼서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유지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육아가 부부 공동의 책임, 국가의 책임이라고 모두 받아들이는 날이 오겠지요.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너무 많은 차별적인 시선과 시스템을 견뎌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비단 30대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자신이 있는 곳의 부조리에 대해서 좀 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일하는 곳은 강사의 80% 정도가 여성이에요. 모두 4년제 대학에서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급여나 근로조건, 복지 등은 말할 수 없이 낮은 수준이에요. 예를 들어, 저는 7년째 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6개월마다 계약서를 쓰고 있어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제가 임신했을 때 시간 강사들은 육아휴직은 물론이고 출산 휴가도 없었어요. 그래서 임신 9개월 때 계약 해지를 당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생활하다가 출산 후 80일 뒤에 복직했어요. 

제가 제일 듣기 불편한 말은 '그래도 그 정도면 여성들이 하기 괜찮은 직업'이라는 말이에요. ‘여성들이 하기 괜찮은 직업’이라는 말은 여성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프레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어 강사가 ‘여성들의 직업’이라는 차별적인 꼬리표를 떼고 ‘객관적’으로 좋은 직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현재 다른 선생님들과 힘을 모아 139일 째 회사 정문 앞에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시위를 하고 있어요. 앞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지금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 이민

요즘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

5년 전부터 꽃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꽃을 좋아하는 건 아마 어머니의 영향인 것 같아요. 중간에 임신, 출산으로 3년을 쉬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오랜만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도 있고, 제 작품이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낄 때 행복해요.

미래의 꿈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면 좋겠어요. 아직은 막연하지만, 언젠가 수익을 내는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꿈이에요. 그러려면 근로조건은 기본이고 육아에 대한 지원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두 행복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대한민국의 80년대생 미즈킴씨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

우리는 모두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별로 내색하지 않는 성격 탓에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힘든 일이 있어도 그저 참으면서 보냈는데 이런 식으로는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 유지될 뿐이죠. 그래서 부당한 일이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고, 연대해야 돼요. 그래야 다음 세대의 미즈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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