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킴의 듣는 영화 6. 린다 린다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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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킴의 듣는 영화 6. 린다 린다 린다

미즈킴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잃어버린 열정을 찾습니다

<린다 린다 린다(リンダリンダリンダ, 2005)>

취미가 뭐예요?

아주 간단한 질문 같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물론 저녁 시간에 외국어나 운동을 배우며 부지런히 자기 관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인기 유튜버가 되기 위해 남는 시간을 영상 제작에 할애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자신만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분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실 속 우리들은 퇴근 후 침대에 드러누워 미드를 보는 행위 이상으로 적극적인 취미활동을 하기가 어렵다(어떨 땐 이마저도 귀찮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너무도 피로한 것일까? 혹은 게을러졌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된 것이 아닐까?

단기속성 밴드의 명랑무모한 도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린다 린다 린다>는 잃어버린 우리의 열정에 말을 거는 영화다. 영화의 플롯은 지극히 단순하다. 일본의 시바고등학교에서 열리는 히이라기 축제. 여고생들로 구성된 밴드는 무대에 오르기로 했지만 멤버 간 다툼과 부상으로 해체 위기에 이른다. 보컬도 없고, 어떤 노래를 할 것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대책 없이’ 무대를 준비한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활동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블루하츠’를 커버하기로 결정한다. 마침 우연히 지나던 한국 유학생 ‘송’은 뜬금없이 밴드의 보컬이 된다. 이들에게는 심지어 밴드의 이름조차 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하고 싶으니까.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3일. 즉흥적이고 엉성하게 시작된 밴드지만 여고생 4명은 제법 진지하게 무대를 준비한다. ‘음료를 마시지 않으면 노래할 수 없는’ 노래방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가 하면, 남동생들이 우글거리는 2층 침대 한 켠에서 우직하게 베이스를 튕긴다. 마땅히 합주할 곳을 찾지 못해 음악을 하는 전 남자친구의 스튜디오를 찾고, 한밤중 몰래 학교 특활실에 숨어 들어가 키득거리며 밤새 연습을 한다. 정작 공연 당일 잠이 드는 바람에 공연에 늦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긴 하지만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쏟아져 물에 빠진 생쥐꼴로 무대에 오른 가운데, 송은 떨리는 일본어로 “파란마음(paranmaum)입니다”하고 밴드를 소개한다.

시궁창 쥐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
사진에는 안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미묘한 내용의 가사처럼, 어눌한 듯 자유로운 그의 목소리가 청춘으로 가득한 강당에 울려 퍼진다.

블루하츠와 파란마음

영화 속에서 밴드가 ‘블루하츠(The Blue Hearts)’를 커버한다고 하자, 음악 꽤나 한다는 친구들은 “대단하다”며 감탄사를 쏟아낸다. 실제로 블루하츠는 일본 팝 펑크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전설적인 밴드 중 하나다. 1987년 발매한 동명의 데뷔 앨범 <The blue hearts>는 2007년 일본의 롤링스톤지가 뽑은 ‘일본 록의 100대 앨범’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음악을 비롯한 일본 내 인디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도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을 시작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록밴드들이 한때 큰 인기를 끌었다.

블루하츠 – 린다 린다(1987)

일본인 3명과 한국인 1명으로 구성된 밴드 파란마음은 블루하츠의 히트곡 ‘린다 린다’와 ‘내 오른손(Bokuno Migite)’, ‘끝나지 않은 노래(Owaranai Uta)’를 커버한다. 한국인 유학생 송 역할은 배우 배두나가 연기했는데, 예상하다시피 그는 노래를 잘 못한다. 일본인들이 듣기에 노래하는 그의 일본어도 어눌할 터. 세션의 실력도 그럭저럭이다. 그럼에도 밴드 파란마음은 오직 그 시절 청춘만이 노래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그저 함께 하는 것이 좋아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에 빠져들 수 있는 여고생들의 열정에 샘이 나기까지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순수함은 파란마음의 노래뿐 아니라 영화 전반에 속속들이 숨겨져 있다. 호기롭게 “컷트!”를 외치며 축제 영상을 만드는 학생들, 봐주는 이 하나 없어도 학교 곳곳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저마다의 축제를 준비하는 낭만적인 풍경들.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여학생에게 대뜸 “사랑해”하고 고백해야만 하는 어설프고도 폭발적인 감정까지. 어쩌면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목격하는 듯한 이 청춘의 한 페이지에는 전혀 생경함이 없다.

그저 함께 하는 것이 좋아

영화는 고등학교 축제 소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지한 얼굴로 시바고 히이라기 축제를 알리는 여고생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순간을 어른으로 변신한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그만두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아이를 그만 두는 순간”을 맞이했지만, 그의 말처럼 아이가 아니라고 해서 스스로를 어른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주변의 눈치를 보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수치심은 스스로를 검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버렸다. 어떤 행위의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의미 찾기에 골똘한 나머지, 무언가를 일단 저지르고 보는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블루하츠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2004년의 시바고 히이라기 축제에는,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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