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에 있는 카페골목에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카페보다 술집이 많다. 그 한 가운데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가 있다. 2018년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 현실에 존재하는 이 유토피아는 놀랍게도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공간이다.
낯설지만 편안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는 시민단체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아래 BIYN)의 활동가로서 정책간담회 <서울, 기본소득, 시작>에 토론자로 참여하며 처음 방문했다. “신지예 후보와 함께 눈부신 평등의 서울로”, “웰컴 투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녹색과 보라색이 상쾌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계단을 지나 공간에 들어서자 미러볼의 빛이 빙글빙글 돌고있었다. 뚝딱뚝딱 만든 듯한 탁자와 집기들. 해먹과 화분들. 입구에 있는 청소년 전용 이브 콘돔 자판기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깔려있는 상식의 톤을 대번에 전했다. 직접 세운 듯 보이는 벽면에는 볼드한 녹색과 보라색의 글자들이 간절하고 좋은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서울”, “덜 일하고 더- 많이 쉬고 서로 돌보고 사랑하는 서울”.
낯설고 거친 공간인데도 어쩐지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안락함과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없었지만 대신 낙관과 자유로움이 주는 여유가 있었다. 혐오발언은 절대 용납않고 다양한 취향과 생각들은 긍정할 것 같은 공간의 분위기 덕분에 나는 금방 이 유토피아를 신뢰하게 됐다.
최악이나 차악 말고 대안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 사회에서 여성혐오에 의해 내가 직접 피해를 당하는 게 최악, 순응하면서 간신히 생존하는 게 차악이라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는 공간과 캠프는 최악도 차악도 아예 없는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거기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 채영
흥미로운 공간을 둘러본 뒤 후보의 생각을 넘어 그와 함께 이 정치적 행보를 기획하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기성 정치의 느낌도, 운동권의 느낌도 나지 않아서 가장 정치적으로 느껴지는 이 새로움은 어떤 얼굴들이 만들어 낸 것일까? 그래서 캠프 실무자 인터뷰를 위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다시 찾았다. 후보 등록일 이틀 전 오후였다. 낮에는 미러볼대신 큰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일곱여 명의 젊은 여성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곁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가는 선거
이날 주요 안건은 8미터짜리 선거용 현수막에 들어갈 문구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이건 일단 스킵하죠.”, “다시 안건으로 돌아갑시다.” 큰 웃음소리 사이로 정돈의 말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쿵짝이 맞으면 갑자기 드립이 난무한다. 회의는 직관적인 아이디어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나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가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회의를 지켜보다보니 이 질문에 답이 없을 것 같았다. 각자가 낸 아이디어를 모두가 경계없이 함께 결정하고 다듬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쉽게 던진 말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요. 사람들의 직관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현되고 현실화되는지를 캠프에서 거듭 확인해요. 처음에 이 이름을 어떻게 짓자고 했었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그냥 다 같이 직관적으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하자고 했어요. 그게 캠프 명이 되고, 녹색과 보라색의 시각적 컨셉으로 이어진 거에요. - 은정
나는 이들을 보며 지난 협업의 경험을 떠올렸다. 잘 모르는 사이에 함께 일하며 서로의 직관을 신뢰할 수 있으려면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이 기본적으로 공유되어 있어야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테이블에서 그것은 이미 문제가 아닌 것 처럼 보였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캠프라면 모두가 녹색당이 추구하는 평등문화와 페미니즘에 대한 동의는 기본적인 공통 분모로 가져가고 있는 것일까?
여기 구성원이 전부 페미니스트니까 모두의 의견을 수평적으로 물어보고 반영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걱정 없이 다 할 수 있어요. 깔끔한 사람들과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 채영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면 페미니즘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그 현상의 한 가운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의 도중 명료한 말이 귀에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문장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의 선거캠프에서는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 페미니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정치를 하기 위해 서울시장 후보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이 우선인 것 같았다. 아니 우선이라기 보다 두 문제가 ‘어떻게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제대로 전달해서 표를 얻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통합되고 있었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기준은 두 가지로 수렴되어갔다. 첫째, 이 의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의 인상에 남을 수 있을만한 강력한 문구일 것. 둘째, 의제에 익숙한 사람이 빠르게 포착할 수 있는 코드를 담을 것.
그중 페미니즘 의제 문구들은 도시에 사는 30대 비혼 여성인 내게는 익숙한 구호들이었다. 2018년 우리의 구호라고도 부를 수 있을법한 문구들을 보며, 나는 페미니스트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이 곧 우리의 구호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서울 시내 곳곳에 높이 내걸리게 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1) 고작 “Girls can do anything”이 해명을 요구받을 일이 되는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와 생활동반자법 입안의 선언과 페미니스트 후보라는 말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공식적으로 게시되다니. 상상만으로도 마치 유토피아의 예고편처럼 짜릿했다.
제약이 곧 전략이 된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원외 정당인 녹색당의 자원은 원내 의석이 있는 정당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만여 명의 당원들이 내는 당비가 있지만, 많게는 연 수백억씩 지급되는 국가보조금을 받는 기득권 정당과는 비교가 안된다. 게다가 한국은 광역지자체장에 출마하기 위해서 기탁금을 5,000만원이나 내야 하는 나라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금액이다. 선거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거나 당선되면 선거비용을 국가로부터 돌려 받을 수 있지만, 이 역시 이미 권력을 가진 쪽에 유리한 제도다. 모든 것이 그렇게 돌아간다. 힘이 있는 쪽에 힘을 더 실어주는 방식으로. 같은 금액의 기탁금을 내도 지지율이 낮은 원외 정당은 TV토론회에 출연할 수 없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이전에 선거를 치르는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투쟁이고 싸움인 셈이다.
녹색당은 이에 정공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각각의 싸움을 모두 작은 승리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투쟁을 통해 제주도 내 방송3사 토론회 출연권을 따내는 승리를 거뒀다. 기탁금과 선거비용을 위해서는 “만원이면 됩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3000여 명이 참여해서 3억원 웃도는 돈을 모았고 무사히 15명의 지역후보와 18명의 비례후보를 등록했다. 소수의 고액후원 대신 대중을 대상으로 소액 모금을 택한 것이다. 같은 액수여도 정치적 의미로 따져보면 그 질량이 다르다.
그러나 언론은 이 승리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캠프는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직접 활용해 유권자들에게 더 직설적으로 말을 거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자원이 적으니 하나를 해도 더 효율적이고 폭발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그것이 곧 전략이 된다. 예컨대 가로 6미터 크기와 8미터 크기의 현수막을 각각 몇 개 씩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예산 부족으로 모든 곳에 현수막을 못 다니, 큰 8미터 짜리 현수막으로 주요 지점을 정복해버리기로 결정하는 식이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공사를 직접 하기로 한 것도 적은 금액 문제를 해결하면서 캠프가 표현하고자 하는 지향성과 캠프에 필요한 기능을 당사자들이 직접 공간에 반영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결과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자기주장이 확실하면서도 유연한 공간이 되었다. 일관된 톤 위에서 사무실로, 행사장으로, 회의실로, 스튜디오로 다종 다양하게 활용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활용해 서울 자체를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로 만들어내기 위해 빠르고 유연하게 굴러가는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있다.
사실 돈이 없기 때문에 벽을 사방에 다 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벽을 최소한으로 만들면서 조명만 있어도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곳에 일단 한 개를 세워서 회의실을 분리했어요. 그리고 직사각형으로 긴 공간의 끝은 스튜디오로 하얗게 칠했고요. 저희가 언론의 주목을 못받는 대신 영상을 많이 활용하거든요. 평소엔 암막커튼을 치고 촬영을 하고, 그 커튼을 걷으면 무대가 되고. 변주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게 되었죠.
- 은정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정치’의 재정의
어떤 이들은 선거가 이기는 것이 중요한 ‘전쟁터’고 ‘선수’들을 ‘기획’하는 전략가들이 판치는 ‘프로’들의 장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말들은 승리가 정책이나 가치, 의제에 선행하는 소위 ‘정치공학’적인 전략들을 옹호할 때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발화자는 주로 남성이다.) 누가 이길 지 뻔히보이는 정치 지형에서 이기는 것이 정말로 문제인가? 그보다 이기는 데에 골몰하느라 본래의 역할을 잃은 정치 자체가 문제는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이미 공고한 하나의 재생산체계다.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것 같이 누적된 문제들 위해 또 다른 문제가 또 쌓이고 쌓인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에게 이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끊임없이 외쳐왔다. 그들은 공동의 문제를 공동의 권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니까. 하지만 사회의 흐름에 비해 정치권의 발걸음은 더디다. 현재 국회의원 중 여성은 고작 17%에 불과하다. 세대로 보면 20대는 아예 없고 30대는 1%다. 한술 더 떠 더불어 민주당은 다가올 지방선거의 광역지자체장에 남성 후보만 내서 빈축을 샀다. 문제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필요한 정치는 이 판 자체를 바꿔낼 정치다.
신지예 후보는 바로 그런 ‘진짜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직설적이고 명확하다. 여성을 위한다고 말하기에 앞서 그 자신이 20대고 여성이며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서울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로”…586정치 맞선 성평등 정치, 경향신문) 편보다 적을 먼저 만드는 이런 발화 방식에는 기득권 남성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여성의 표만 얻겠다는 속셈이 전혀 없다. 대신 기득권 정치에 없던 ‘판’을 직접 기획해서 승리를 증명해보이겠다는 야심이 가득하다.
‘유토피아’와 ‘눈부신 평등의 서울’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의 심상은, 유권자의 새로운 정치적 감각을 깨우는 구석이 있다.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이것을 체계가 없고 아마추어적인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대적 곤란을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대번에 이 캠프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공동의 감각이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현실에 기반한 ‘진짜 정치’가 발아되는 지점이다. 신지예가 우리의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비로소 제대로 문제를 직면하고 함께 최선의 답을 구해볼 수 있는 정치인이 등장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이미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전에 다른 정당 후보의 캠프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그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참여한거였지 후보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없었어요. 후보와 이야기 나눌 일도 없고요. 그냥 일하러 간 거에요. 하지만 여기선 내가 신지예 후보와 직접 만나고 토론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후보는 서울에서 없을 거야. 이제 이런 사람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하며 캠프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 서진
눈치챘겠지만 이 기획은 후보보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둘러싼 맥락과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다음 글에서는 위에 조각들로 인용된 개인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담는다. 어떤 사람들이 무슨 경위로 이 캠프에 모여들었는지 조사하고, 그들에게 선거라는 싸움터에서 어떻게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승리로 이끌 것인지를 물었다.
1) 선거 후보의 현수막 및 포스터 등을 훼손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