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생활일지 6. 맞춤형 가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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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6. 맞춤형 가족의 시대

백희원

아주 가까이에서 여자친구의 눈을 들여다봤던 적이 있다. 해질 녘의 눈부신 햇빛 때문에 한층 더 연해보였던 갈색 눈동자는 언제나 또렷한 심상으로 떠오른다. 나는 작년까지 그 부드러운 질감의 연애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헤어질 때 비겁하게 굴었던 스스로를 외면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동성과의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걸 숨기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벨기에였던가. 나중에 동성결혼이 합법인 나라에 가서 살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을 때 마음 속에 떠올랐던 당혹감도 생각난다. 이별을 생각하진 않았지만 ‘우리 둘 다 좀 먼 미래엔 남자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스쳤던 것 같다. 여성 둘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게 단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제대로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이렇게 모호한 영향력에 이끌려 살게 된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 증거다. 결국 나는 상황에 몸을 맡기고 이별 같지 않은 이상한 이별을 했다. 뭐, 어리긴 했다고 나이 탓을 해볼까. 지금 다시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분명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때보다는 자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이제 분명히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나의 욕망과 사회의 조건들을 하나 하나 자문하며 나다운 삶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니까. 지금이라면 그때의 여자친구와 내가 서로를 지켜주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텐데. 그 이후의 삶도 충분히 소중하니 후회는 없지만, 연인과 친구를 동시에 버린 어리석음은 유감스럽고, 무엇보다 내 삶 뿐 아니라 그의 삶까지 그렇게 대했던 것이 여전히 너무 부끄럽다.

가족의 조건

사실 한국의 헌법은 혼인과 가족에 대해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통상적으로 혼인과 혈연에 의한 관계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무척 하찮게 느껴졌다. 그것 뿐이야? 특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네. 법이 아닌 걸 법처럼 만든 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가족다운 가족을 만들면 되는 거잖아. 성별에 상관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라면.

남보다 못한 가족이라는 말이 공연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혈연, 혼인이라는 관계의 형식말고 가족을 정말 가족같이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가족은 감정적으로 친밀성을 나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며, 서로에 대한 양육과 부양의 의무를 지고 있는 관계이기도 하고, 함께 생활을 꾸리며 자산을 축적하는 경제생활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부부의 경우 성적인 관계에 있어 서로를 독점한다. 그러니까 현재의 제도 위에서 온전한 가족을 만들려면, 이성 중에 서로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을만큼 말도 잘통하고 육체적으로도 매력적인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이랑 경제 공동체로서, 또 가사와 양육의 파트너로서 괜찮은 동료로 합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는 하는데, 정말 그게 가능한가? 아니, 좀처럼 쉽지 않으니까 수 많은 드라마가 결혼이란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돈과 사랑을 저울질하는 이야기는 계속 나오는 거겠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은 분명 어떤 의도를 담아 생겼을 것이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싸움을 무마시키기 위한.

현대적 가족의 모델

평생을 혼자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지금의 ‘정상가족’은 너무 많은 탐색비용을 요구한다. 실패할 경우 감당해야 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연도 한정된 자원인데, 특정 시기에 친밀성, 섹스, 돌봄, 규모의 경제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운명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인 것 아닐까? 우리는 ‘가족’이라는 모임에 너무 많은 기능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인들이 각자 자신의 우선순위를 따져보고 요구사항을 정리한 뒤 맞춤형 가족을 구성할 수 있으면 어떨까? 이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백 가지 조건들을 상세히 적은 배우자 기도를 매일매일 하며 하나님이 운명의 상대를 점지해주시기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난이도가 낮고, 결혼정보회사 등록보다는 값이 쌀 것 같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한 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집담회 “페미니스트 5인의 가족 이야기 : 아빠 성은 떼어냈지만”에 참여해 나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서로 다른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은 더 구체화되었다. 원가족을 ‘등본메이트’라고 부르는(참 가볍고 경쾌한 호칭이었다) 퀴어 페미니스트 동희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퀴어 활동가들과의 관계야 말로 서로 돌봄을 주고받는 가족 관계에 가깝다고 말했다. 유성애자 게이로서의 정체성은 특히 섹스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그의 가족 안에서는 섹스도 중요한 요소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내 나름대로 머릿 속에 다이어그램을 그려보고 있었다. ‘흠, 나는 섹스는 가족 관계에 안 넣을래. 돌봄이랑 친밀성이랑 규모의 경제는 넣어야겠어. 말이 통하는 사람과 살고 싶으니까. 섹스와 연애는 하나로 엮어서 가족 밖에서 해야지. 양육은 좀 더 큰, 친족공동체 같은 레이어를 하나 더 두면 좋겠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내 시뮬레이션 역시 그 변화의 일부이고, 미국에 사는 데이빗, 하이디, 네이트 가족은 그 변화를 실감하게끔 하는 실제사례였다. 데이빗은 커밍아웃한 게이이고 이성애자인 하이디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두 사람은 서로가 좋은 부모가 될 것으로 생각해 세 번의 삽입 섹스를 통해 네이트를 낳는 데 성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빠인 데이빗이 쓴 기사를 통해 접했지만 하이디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아이를 함께 키우기에는 1년 간 만난 연인보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가까운 게이 친구가 더 좋은 파트너로 느껴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과 하이디의 가족을 위에서 떠올렸던 옵션으로 재구성해보면,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고, 생활은 나누며, 돌봄과 신뢰,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이었다. 다른 많은 가족들처럼.

행복으로 가는 길은 자유

내가 가족에 기대하는 것도 행복과 평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다만 각자 그에 이르는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다운 가족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가족을 만드는 한 가지 방법만 인정하는 것도, 두 가지 방법만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떤 방법도 금지하지 않는 것 아닐까. (제도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행복한 가족은 제로섬 게임 같은 것이 아니니까. 각자가 각자의 행복을 알아서 찾을 수 있도록 그저 길을 막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수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못한 가족 안에서 착취당하거나 가족 밖으로 소외당함으로써 발생하는 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혈연과 혼인 외의 관계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은 그 시작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의 가족과 얼마 전 결혼한 내 친구의 가족과 나의 가족과 동희씨의 가족과 내가 아는 자매들의 가족과 세상의 모든 가족이 나란히 존재하는 세계가 속히 오기를. 그리고 그 세계에 그의 행복도 있기를. 저절로 되는 일은 없지만 모든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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