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Feminist) Scientists 5. 하나의 성(sex)만이 존재하던 때

알다과학

Mad (Feminist) Scientists 5. 하나의 성(sex)만이 존재하던 때

하미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과학이 철학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지나간 이론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학과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르치고 2000년 전 책을 읽게 하지만 자연과학대학에서 이들의 과학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좀 어렵다. 무수히 쏟아지는 최신의 연구를 습득하기만 해도 바쁠 것이다.

한편 고대에는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과학의 첫 시작을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에 두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왜 하필 시작이 또 유러피언 백인 남자일까?). 이때의 과학은 근대적 과학 방법론과 아주 다르고 ‘과학science’이라는 말 자체도 발명되지 않았으니 과학보다는 자연철학이라고 말하는 게 더 알맞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실험이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자연의 변화무쌍한 여러 현상을 이해하려 애썼다.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몸에 관한 이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적 성이 젠더(즉 시대가 정한 성적 특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젠더가 섹스를 만든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플라톤은 현실 세계를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제품으로 보았다. 이데아는 영원불변하고 완전한 세계, 기하학적 조화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로 모든 것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사물의 본질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 이데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플라톤은 감각 경험보다는 이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짜증이 날 정도로 상대에게 논리적 질문을 퍼붓는 이유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의 중요성을 좀 더 아는 자였다. 그는 사물의 본질(=형상form)이 실재reality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관찰을 통해 만물을 분류하고, 만물에 내재된 고유한 속성을 확인함으로써 자연 전체의 작동질서를 짜 맞출 수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론에서는 지상계의 원소가 흙, 물, 공기, 불로 네 가지다(무거운 순서). 이들은 무게에 따라 본연의 위치를 향해 운동한다. 호수에 던진 돌멩이는 가라앉고, 공기 방울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불은 위로 타오른다. 그 이유는 물이 흙보다, 공기가 물보다, 불이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꽤 많은 자연현상에 상식적이면서도 탁월한 설명을 제공했다. 이러한 체계성과 통일성, 그리고 고대 철학자라는 권위 덕에 그의 철학은 서양 세계에서 자연에 관한 정통 학설로 2000년 동안이나 군림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이다

스승과 제자가 이토록 다른 자연철학을 펼쳤지만, 이들은 만물의 조화와 질서를 강조하는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같았다. 만물의 질서. 그 안에는 여성과 남성의 위계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 속에서 신과의 거리에 따라 모든 존재의 위계가 엄격히 구분된다고 보았다. 특히 이들은 여성이 남성의 열등하고 불완전한 버전이라고 보았다. 곧 여성과 남성이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나 그 위계에서 차이가 난다고 보았다. 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열기heat’가 낮기 때문이다.

흙, 물, 공기, 불의 4원소는 각각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불은 뜨겁고 건조하며, 공기는 축축하고 뜨겁고, 물은 차갑고 습하며, 흙은 차갑고 건조하다. 4원소 사이에도 위계질서가 있다. 뜨겁고 건조한 원소가 차갑고 습한 원소보다 위에 위치한다. 열기는 이중에서도 특별한, 생명을 담은 불멸의 물질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기가 부족해, 차갑고 축축하기 때문에 열등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의 특징에 따라 성적 기질(오늘날의 젠더)이나 다른 특성을 정의했다. 태양처럼 뜨겁고 건조한 존재는 남성적인 것이고, 달처럼 차갑고 습한 존재는 여성적인 것이었다.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은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4원소가 어떻게 혼합되어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러한 원리 아래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생식기관의 차이는 우주의 원리가 드러나는 수단에 불과했다.

미국 UC버클리의 역사학과 교수 토마스 라커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한 가지 성(sex) 모델이라고 이름 붙였다. 곧 한 가지 성이란, 남성이라는 기준 성만이 존재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버전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가지 성 모델에서는 몸 안의 여러 가지 체액이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피의 연속적인 스펙트럼 안에 있다. 혈액, 정액, 젖, 월경혈 등에서 여성만의 체액은 없고 남녀 체액의 분명한 경계도 없다. 그런 점에서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월경혈은 같은 종류다. 다만 더 상위의 형태가 열기를 더 많이 포함한 정액이다.

임신을 설명할 때에도 이러한 위계가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액을 통해 운반되는 ‘스페르마’가 핵심적인 본질을 부여하여 태아를 만든다고 보았다. 스페르마는 마치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하는 장인처럼 기능한다. 목수가 나무 책상에 흡수되지 않듯, 그 과정에서 생명을 담은 스페르마는 질에서 없어지거나 증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임신(conception)이란 남성이 여성의 뇌와 자궁 안에 예술가, 혹은 장인의 생각(conception)인 관념(idea)를 불어넣는 것이다.

갈레노스

갈레노스:
여성의 성기는
남성의 성기를 뒤집어 놓은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고대 로마의 해부학자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 이래 최고의 의학자로 꼽히며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2세기 갈레노스는 여성이 남성과 같다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같지만, 생명의 열기 혹은 완전성의 결핍 때문에 남성에게는 눈에 보이는 구조가 여성에게는 내부에 갇혀 있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질은 내부에 있는 음경이고, 음순은 음경의 포피, 자궁은 음낭, 난소는 고환이라고 생각되었다. 난소는 오랫동안 여성의 고환이라고 불리었으며 19세기가 될 때까지 2천 년 동안 이름이 없었다. 자궁을 지칭하는 용어 역시 18세기까지 유럽의 어떤 언어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음경은 자궁 목과 질이 되고 포피는 여성의 외음부가 되며 여러 관과 혈관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해부학적 대칭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되는데 여자를 가지고 남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Laqueur, 1990)
자궁을 바깥으로 꺼내어 튀어나오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 고환(난소)은 자궁 안쪽에 있게 되지 않겠는가? 자궁이 음낭처럼 고환을 품게 되지 않겠는가? 여태까지는 회음부 안에 숨겨져 있던 목(자궁목과 질)은 밖으로 늘어져 남근이 되지 않겠는가?(Laqueur, 1990)

갈레누스는 남성 성기의 모든 부분이 위치만 바뀌면 여성 성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관은 부적절한 곳에 있다. 이렇게 중요한 차이가 생긴 원인은 열기다. 여성에게는 성기를 밖으로 밀어낼 열기가 전혀 없다. 이 같은 점에서 갈레노스는 인체에서 가장 고귀한 부분이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피를 덥히는 고환이라고 생각했다.

흥미로운 것은 갈레노스가 생전 수많은 해부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 여성의 생식기는 남성의 생식기를 그대로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하였다.

생명의 열기의 정도에 따라 남녀를 위계적으로 배치하는 한 가지 성 모델은 17, 18세기에 남녀를 질적으로 다르게 보는 두 가지 성 모델이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서구 세계를 지배했다.

이러한 점에서 라커는 17세기 이전까지 섹스는 생물학적 범주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학적 범주라고 보면서, 젠더가 훨씬 더 중요했으며 이것이 사물의 질서를 구성했다고 본다. 곧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나뉘기 전에 사회적으로 먼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성 모델이건 두 가지 성 모델이건 만물의 기준이 남성이라는 점은 같다. 여성의 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늘 구성되는 존재였다.

참고문헌

Laqueur, T. W. (1992). Making sex: Body and gender from the Greeks to Freud. Harvard University Press.

Schiebinger, L. (1991). The mind has no sex?: Women in the origins of modern sci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스탠퍼드대 early science lab 사이트, “A HISTORY OF THE MALE AND FEMALE GENITALIA” (https://web.stanford.edu/class/history13/earlysciencelab/body/femalebodypages/genitali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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