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는 여자의 파격 5. <거꾸로 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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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는 여자의 파격 5. <거꾸로 가는 남자>

새입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거꾸로 가는 남자>는 탈코르셋 방아쇠를 당기기에 적합한 영화다. 성 반전 사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판타지를 기반으로 ‘수줍은 남자’나 ‘터프한 여자’를 보는 일은 영화적으로 유쾌할 뿐만 아니라, 성별 이분법적인 현실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영화를 본 한 네티즌은 자신이 '앉아서 하는 정적인 취미'를 가진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사회가 생각하는 여성상에 맞추다보니 생긴 취미인지 새로운 의문이 생긴 것이다.

영화의 묘미는 두가지다. 여남이 뒤바뀐 세계에서 여주인공이 얼마나 ‘잘생길’ 수 있는지 감상하는 것과, 남주인공 ‘다미앵’이 약자의 자리에서 어떤 취향과 성격으로 변하는지 보는 것. 다미앵은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가부장 사회를 살던 사람이므로, 처음엔 여성 중심 사회를 부정한다. ‘이건 꿈이야!’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여성이 만든 룰을 따르지 않는 다미앵은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섹스를 거부당한다. 그러다 유명 작가 알렉산드라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부하 직원인 ‘비서’로 채용되면서.

첫 출근 날 다미앵은 알렉산드라에게 비서로서도, 남자로서도 잘 보이고 싶어 꾸밈 노동을 한다. 가슴털을 가지런히 깎고, 눈썹과 발가락을 포함한 온갖 털을 관리한 후에, 각선미를 뽐낼 핫팬츠를 입고 당당하게 출근한다. '꿈'이라며 거부하던 세상에 대한 불만은 온데간데 없고, 세상을 가진 듯한 충만한 표정으로 걷는다. 

차를 운전하던 한 여성이 다미앵을 보고 아름다운 그가 길을 건널 수 있게 차를 멈추어 배려한다. 그는 '나 정도면 이런 대우는 받아야지' 하는 도도한 웃음을 지으며 길을 건넌다. 수많은 영화들에서 여성이 '커리어 우먼' 으로 '변신'했던 클리셰가 겹쳐 보인다.

꾸밈은 곧
'나는 쟤랑 달라'

다미앵은 어떻게 꾸밈을 통해 단번에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남성이 여성을 통제해 온 방식은 여성 집단을 가르고 위계화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원제는 <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예요’다. ‘쉬운 여자’를 미러링한 것이다. ‘쉬운 여자’와 ‘된장녀’는 같은 의도에서 태어났다. 위계는 다층적이면 다층적일수록 견고하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들은) 멸칭의 지시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행동했다. 이는 여성을 통제하는 효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멸칭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둔 결과 그것이 여성혐오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중에서

다미앵은 차별적인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꼈지만 세상은 그대로였다. 결국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옆에 있던 친구가 꾸밈을 권유한다. 

우린 더 이상 청바지만 입어도 섹시한 나이가 아니야

결국 다미앵은 알렉산드라에게 선택당한다. 성별 위계를 내재화한 채,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와 달리) 뚱뚱하지.

폭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토대

일러스트 이민

다미앵이 꾸미고 다투는 동안 알렉산드라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성을 혐오하고 배제함으로써 여성인 출판사 사장과 사업 파트너십을 다지고, 책을 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남자를 성매수하여 쾌락을 얻는다. 알렉산드라는 출판사 사장과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한다. 

다미앵이 화가 나면 건설적인 대화를 망쳐 놓죠.

알렉산드라는 약자라는 토대 위에 자신이 바라는 것을 건설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권력관계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별 위계 관계의 구조적인 '토대'로서, 남성 지배의 중요한 '동인'이다."
 - 정희진, <미투의 정치학> 중에서

미용 산업의 토대는 성매수

정희진이 짚은 지점을 남성 중심 사회는 잘 알고 있다. 여성의 몸과 노동에 대한 국가와 개인의 착취 없이는 남성 중심 사회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꾸밈은 단지 개인적 취향으로만 존재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미용 산업은 성매수(성매매) 산업, 금융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돌아간다.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책에 따르면, 성매수 여성들은 자연 그대로의 몸이 아니라 꾸며진 몸을 팔기 때문에 미용을 위한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을 성 노동 업주(포주)가 금융업과 손을 잡고 여성에게 빌려주게 되는데, 이것이 '성형 대출', '아가씨 대출' 등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화장품이나 성형과 같은 미용 산업에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거시적인 파급력이 있다. 지난 9월, 최근 2년 동안 '탈코 세대' 20대 여성의 화장품 소비가 줄고 자동차 소비가 늘었다는 통계 기사가 주목받았다.  <거꾸로 가는 남자> 속 세계는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여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진 자동차에 관해 다미앵이 술술 대답하자 알렉산드라가 놀라는 장면이 있다. 산업과 젠더는 밀접하다.

어떤 것을 부정할 것인가

알렉산드라를 영화 내내 더 멋있게 만드는 사람은 다미앵이다. 다미앵이 반대급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엠넷의 프로그램 <퀸덤>에서 AOA의 '너나해' 무대가 화제가 되었다. 걸그룹 AOA는 긴 팔, 긴 바지의 검은 수트를 입고 무표정으로 각이 잡힌 춤을 췄고, 남성 백댄서들은 짧은 원피스와 큰 귀걸이, 짙은 화장을 한 채 가는 선의 춤을 췄다. 이 무대에서 AOA의 춤은 백댄서들의 것과 대비되어 더욱 강하고 절도있게 느껴졌다.

"'남자 됨'은 머뭇거림이나 주저함, 겁먹음이 '여성의 태도'라는 강력한 안티테제가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다. 모든 의미, 정체성은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 이루어진다."
-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중에서

우리의 취향과 성격은 누구에게 토대를 만들어 주는가. 어떤 산업을 돌아가게 만드는가.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을 착취하는 문화와 산업에 반대한다. 누구를 타자로 두고, 무엇에 반대할 것인가. 이것만 결정해도 정체성과 행동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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