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사라진 종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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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사라진 종묘공원

어니언스

섬과 육지

종로는 섬으로 불렸다. 서울 시내 특정 연령층이 모이는 동네가 종로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종로만이 섬으로 불린다. 노인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섬이라는 인식에는 다름이 전제되어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다름이 틀림으로 규정되는 순간 우리는 섬을 해체하고 육지의 규칙 안으로 편입시키게 될 것이다. 

‘파고다공원 성역화 사업’이 그랬다. 파고다 공원의 명칭을 탑골공원으로 바꾸고, 공원 내 의자를 없애고 기존에 자유롭게 개방했던 공원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투어 형식으로만 돌아볼 수 있게 바꾸었다. 섬을 해체시킨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원에 상주하던 노인의 숫자가 줄었다. 이용객의 반발과 가이드 유지의 어려움으로 이내 종전의 자유 개방하던 공원으로 돌아왔지만 파고다 섬의 주민들은 이미 근처 종로 4가의 종묘공원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하지만 2016년, 이제는 종묘공원도 해체되고 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9년에 걸쳐 진행된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 때문이다. 서울시 문화국에 따르면 종묘광장의 고정 이용 인원은 2007년 하루 평균 3500~4000명이었으나 성역화사업 이후 2000명 내외로 급감했다.

공원을 밀어낸 성역화 사업

문화재청과 종로구청은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원의 상당부분을 녹지화시켰다. 공원 곳곳에 있던 커다란 나무를 들어내고 묘목을 심었다. 이제 갓 사람 키를 넘긴 묘목은 그늘을 만들기에 턱 없이 작다. 그마저도 묘목 주위로 잔디를 심어 사람의 진입을 막았다. 잔디 사이로 두 사람이 겨우 걸어갈 만한 좁은 길을 냈다. 그 길 가운데 드문드문 세 사람이 앉을 만한 벤치 몇 개를 두었다.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 이후 종묘공원에 머무르는 사람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따금씩 홀로 그 길을 걷는 노인들이 있지만 그 수가 몇 되지 않는다. 공원 곳곳에선 노인들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이게 사람을 위한 거야, 식물을 위한 거야?”
“나는 종로구청장 다시 선거 나오면 낙선 운동할 거야.” 

애써 청해 묻지 않아도 들리는 불평이다. 노인들은 공원 외곽으로 밀려났다. 몇몇 노인은 지하철역과 연결된 환풍구를 따라 둘러 앉아 있다. 다른 몇몇은 공원 바깥의 인도를 따라 늘어앉아 장기를 둔다. 공원 곳곳에선 완장을 찬 관리인들이 순찰을 다닌다.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공원에서 노인이 사라지게 될 것을 종로구청은 이미 알았다. 아니, 그것을 바랐다. 종로구청은 밀려난 노인들을 서울시 노인복지센터에 수용할 계획이었다. 공원 성역화 사업에 발맞추어 센터도 건립됐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무료급식과 집회는 문화유산의 위상을 훼손시키는 행위였다. 성역화 사업 계획서에는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출입구인 종묘광장에는 각종 불법 노점상, 무료급식장, 노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 집회·시위 등 불법행위가 자행되면서 위상이 훼손됐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단계 성역화 사업으로 무질서의 원인이 된 주요 요인부터 정리했다.
(서울신문 2007-10-11, 종묘광장 제 모습 찾는다)

공원 성역화 사업에 발맞추어 센터도 건립됐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무료급식과 집회는 문화유산의 위상을 훼손시키는 행위였다. 성역화 사업 계획서에는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 8조에 ‘공원녹지기본계획 수립권자는 공원녹지기본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하기 위해서는 주민과 관계 전문가 등으로부터 의견을 들어야 하며 의견이 타당할 시 반영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종묘공원은 정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주민과 이해 당사자, 전문가 등의 시민 참여 절차가 전혀 없었다.

또 유네스코 관계자는 '등재취소가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이 '쉽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평가가 우선적으로 실시되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평가가 문화재청에서 문화재위원을 통해 실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종묘공원이 종묘의 가치를 훼손시키는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문화재청이 하는 셈이었다. 유네스코 핑계를 대긴 했지만 종묘공원을 문제로 인식하고 공원 보수라는 방법으로 해결한 것은 문화재청이었다.

도시인의, 도시에 대한 권리

오히려 유네스코와 유엔 헤비타트는 2005년부터 공동으로 도시 공간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른바 ‘도시 정책과 도시에 대한 권리(이하 도시권)’ 프로젝트이다. 도시권은 도시를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합적 공간으로 보는 것이다. 재산이나 나이, 성별, 계층, 인종, 국적, 종교에 따른 차별이나 배제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화유산과 도시권은 크게 다른 개념이 아니다. 세계문화유산이 인류가 남긴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시도라면, 도시권은 앞으로 도시에서 다양한 문화를 배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도시의 소외집단을 포용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도시권의 핵심은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 및 존중이다. 시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듣고 그를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몬트리올,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들은 이미 도시에 대한 권리를 담은 도시 차원 조례와 헌장을 제정했고 브라질은 도시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사람을 공간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유네스코는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수납 불가능한 존재들

종로구 노인복지센터 홍승표 복지사는 가장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신규 회원을 적응 시키는 일'이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노인들이 떠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복지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노인도 상당수 된다고 했다. 모든 노인을 동질 개체로 보고 한 곳에 수납하겠다는 서울시의 생각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상당수의 노인은 복지관에서의 생활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곧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종묘공원은 원래 어떤 곳이었나. 국악정이라는 공원 내 정자에서 수시로 공연 따위의 볼거리가 열렸다. 공원 곳곳에선 시국강연과 토론이 이루어졌다. 나무 그늘이 있었고 그 밑에선 노인들이 장기를 두거나 앉아서 쉬었다. 서예나 다른 잡기 등에 재주를 가진 노인들은 다른 노인에게 강연을 하는 재능기부를 했다. 매일 3000여 명의 노인이 공원을 이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부작용도 있었다. 공원 내에서 성매매 호객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음주와 폭력 시비가 발생하기도 했다. 

탑골, 종묘공원에 40년 동안 출석했다는 계룡산(88, 별칭)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있기도 했지.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게 아니야. 60억 들여서 공원을 이렇게 만들 바에 단속을 더 강화하면 될 일 아니야. 규제를 하고 박카스 할머니들 내보내고 하면 되는데 이건, 공원이 너무 볼품없어졌어.”

그는 공원에 왜 오냐는 질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여기는 자유로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싫은 사람 있으면 내일은 다른 사람 사귀고 또 그 다음 날은 다른 사람 만나고 그러면 되는 데거든 여기가.

강 교수 역시 “공원에서 술과 담배, 성매매 호객 행위, 확성기 정치 집회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규제되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어떤 곳은 고유한 특성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인들의 공간 탑골(종묘)공원은 그 자체로 이미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종로로 몰려들던 노인의 수가 서울시 추산으로만 40% 이상 줄어들자, 일대도 활기를 잃어 예전만하지 못하게 됐다. 이 때문에 시에서도 공원 일대를 ‘어르신 거리’로 변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갈 곳 없어진 노인들의 불만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2012년 9월 7일에 보도자료가 뿌려졌지만, 4년이 지난 현재까지 큰 진척은 없는 상태다. ‘락희 거리’, ‘즐거움의 거리’라는 이름의 디자인 사업이 전부다. 보도블럭 정비, 벽화 그리기, 잔술집 근처 정비 등을 통해 노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이 느낄만한 변화는 아직 없다.

공원에 노인이 사라졌다. 아니 사람이 사라졌다. 녹지화 된 공원에는 방문객이 드물다. 식물만이 자란다. 텅 빈 공원에서 수시로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라진 노인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저 나무들이 자랄 때까지 내가 살겠냐 이거야. 정말 이건 사람을 위한 공원이 아니야.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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