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잔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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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잔술집

어니언스

한 잔에 천원,
서서 마시는 선술집

노인들은 대개 지갑이 없다. 그들이 입은 양복 주머니에서, 등산조끼 윗주머니에서, 가방 안 쌈지에서, 바지춤에 이어진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가 나온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 가득 채운 술잔으로 바뀐다. 이 곳에선 모든 술이 한 잔에 천원이다. 

소주를 주문하면 맥주 상호가 적힌 유리잔에 한 잔이 나온다. 막걸리를 주문하면 막걸리 사발에 한 사발 가득 나온다. 가게 주인은 창이 트인 가게 계산대에 서서 주문과 동시에 술을 따라준다. 잔돈을 거슬러 줄 일이 별로 없고, 잔에 술을 채우는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어 그 모습이 경쾌하다.

노인들은 술을 받아들고 가게 안에 있는 원형테이블 앞으로 가 서서 마신다. 혹은 계산대와 창을 두고 바깥에 놓인 선반 앞에 서서 마신다. 그야말로 선술집이다. 테이블과 선반에는 부추전, 찐 감자, 도토리묵, 번데기 따위의 안주거리가 그릇마다 담겨있다. 술을 주문한 사람은 안주를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다. 노인들은 한 손엔 이쑤시개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각자의 방식대로 술을 마신다. 잔을 하나씩 들고 서서 마시는 풍경이 영국의 펍 같다. 

종묘공원 옆길을 따라 이런 형태의 잔술집이 두 곳 있다. 생긴 지 오래 되진 않았다. 2002년 탑골공원 성역화사업 이후 탑골공원에서 밀려난 노인들이 종묘공원으로 이동하면서 공원 옆길을 따라 값이 싼 술집과 이발소들이 생겨났다. 종묘공원 또한 정비사업을 거치면서 종묘공원 일대에 노인 인구가 많이 줄었지만 잔술집만은 아직도 손님들로 붐빈다.

공통의 위안

잔술 파는 가게들은 아침 9시부터 가게를 열었다가 저녁 7시 무렵 문을 닫는다.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종각역 ‘젊음의 거리’는, 아침에는 한적하고 밤에는 요란하다. 청년과 노년은 일과 시간부터 다르다. 

노인들은 저녁이면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공원도, 가게도 초저녁부터 한산해진다. 잔술집의 1000원은 얼핏 보기에는 저렴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종이컵 ⅗ 가량 채운 술 한 잔에 1000원이라 두 잔, 세 잔 마시다보면 지갑이 얇아지기 마련이다. 편의점에서도 소주 1병은 1000원 남짓이다. 정량으로 따지면 싸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뭘까.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자에게 물었다.

사람들하고 대화하거나 막걸리 시원하게 한 잔 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한 병이 많고 같이 올 사람도 없고.
이 사람들은 사람 찾아 온 거예요. 또 잔술집에 가면 거기 주인들이 말상대를 해줘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존재하는 거지.

천 원이라는 값은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이 사람들 틈에서 ‘한 잔’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게 만든다. 술집 안은 항상 혼자 온 노인들로 붐빈다. 중절모를 쓴 양복차림이거나 평상복에 등산조끼를 걸쳤거나 삼베옷을 입었거나 차림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어쨌거나 노인이다. 

신기한 건, 한 테이블에 둘러서서 초면에 거리낌 없이 대화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주제는 없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이 살아갈 인생보다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전쟁에서 살아남고 황폐해진 국토를 일으켜 세우고 가족을 먹여 살렸다는, 신파같은 이야기다. 현세대에서 생명력을 잃은 플롯이 그들에겐 삶이었다. 물론 지금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요즘은 기계가 다 해서 사람이 할 일이 없어.”

“사는 게 너무 녹록치가 않아. 이명박 때 보다 더한 것 같애.”

“박근혜는 주택 정책, 복지 정책만 제대로 해도 아주 괜찮을 거라고.”

“가족들이랑 연을 끊은 지 오래됐어. 날 버리고 연을 끊고 혼자 산다고.”

“가양동에서 보건소를 갔더니사람이 너무 많은 거야. 기초수급권자들 많은 동네에는 간호 인력을 그 만큼 늘려야 한다니까.”

듣고 있자면 어느 때는 합이 착착 맞는 대화를 하기도 하고, 제각각 다른 얘기들을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진다. 

막걸리에 부추전을 집어먹으면서 그들은 오로지 말하는 행위에 열중한다. 스스로 삶을 되새기려는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주인은 제 할 일을 하다가도 성실히 대꾸해준다. 간혹 취객이 주정을 부리면 가게에서 내쫓고, 불편한 말은 큰소리로 가로막기도 한다. 면박을 당해도 노인들은 다음날이면 다시 이 곳을 찾는다.

노인은 세간의 관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 동년배를 만나는 일은 그들에게 위안이 된다. 사회의 무관심으로부터 오는 고독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잔술집을 나서는 순간 노인은 다시 혼자가 된다. 

잔술집에서 맺는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마음이 맞아서 자리를 옮겨 관계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또한 길게 이어지진 않는다. 노인들에겐 고독이 몸에 새겨 있다. 연락처를 주고받아도 며칠이면 흐지부지, 모르던 사이보다 못하게 될 관계가 될 것을 안다. 

그들은 잔술집을 나와 취기만을 간직한 채 천천히 세상으로 편입된다.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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