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여성으로 연애하기: 4. 하나만 해라 하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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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여성으로 연애하기: 4. 하나만 해라 하나만

파도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2017년 4월 11일 자 핀치 클립에도 나왔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사건을 아마 많은 사람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연인 A와의 관계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피를 흘리며 경찰에 의해 기내에서 끌려나가는 아시안 피해자의 이미지는 너무나 강하게 내 뇌리에 박혔다. 내가 이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에서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형편없는 시스템과 대응에 대한 분노가, 그리고 아시아 현지 사람들과 각국의 아시안 지인들의 절망 어리고 충격을 받은 반응들이 혼재했다. 승무원을 태우기 위해 강제로 끌어내려진(해당 사건은 오버부킹이 아니라 자사나 타사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승무원을 배치, 이동시키는 데드헤딩으로 인해 야기된 사건이다) 60대 베트남계 미국인인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뇌진탕 증상을 보였고, 코와 앞니가 모두 부러졌으며, 피를 흘리는 채로 수화물도 없이 시카고 공항에 남겨졌다. 논란이 가중되면서 가해자인 경찰은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아시안들은 그 날 그 경찰의 피해자를 향한 무자비한 폭행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을 느꼈다.

당시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였는데, 특이하게도 이 분노어린 반응들이 백인 남성인 연인 A를 둘러싼 세상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서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한 예로 A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그 분노는 온전히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형편없는 고객 서비스'에 대한 질타에 완전히 맞춰져 있었다. 한 마디로 ‘당사자성'에서 오는 공포는 빠져 있었다. 한 아시아계 배우가 이번 사건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 한 가지가 피해자의 인종일 수 있다는 트윗을 하자마자 순식간에 수많은 욕설과 피해망상이라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미국 현지 토크쇼의 호스트들은 해당 사안을 다루며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이름이 걸린 쇼에서 당시 사건을 희화화해 재현하며 게스트들과 박장대소했다. 당시 잠깐 떨어졌던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주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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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이 문제에 대해 왜 아시안들이 특히 충격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손만 내밀면 닿을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인데 마치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절망적이지만 사람의 공감 능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고, 똑같은 사건 앞에서도 받아들이는 측의 느낌과 반응은 무수히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시리아 난민이 겪고 있는 참상에 대해 분노할 수는 있겠으나 당사자가 겪고 있을 괴로움과 공포를 아무리 노력해도 (부끄럽게도) 완전히 느낄 자신이 도저히 없다. 그런 의미에서 A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는 왜 수많은 아시안이 이 사건의 피해자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인종차별적 행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콜라를 주문한 이슬람 사제에게 ‘따지 않은 캔은 무기가 될 수 있다’며 거절하면서 다른 승객에게는 따지 않은 맥주캔을 제공하고, 뇌성마비를 앓는 20대 흑인 남성에게 기내 휠체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이 고객이 기어서 비행기를 빠져나간 사실이 알려져 국제적인 질타를 받기도 했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직원이 아시아나 항공 214편 착륙 사고(중국인 여고생 3명이 사망했다)를 희화화하며 아시아나 항공의 직원 복장을 할로윈 파티 코스튬으로 입고, Ho Lee Fuk, Sum Ting Wong, Wi Tu Lo (이런 젠장: holy fuck, 뭔가 잘못됐다: something wrong, 너무 낮게 날고 있다: we too low) 같은 명찰을 달고 환하게 웃은 채로 사진을 찍은 일도 있었다1)

이렇듯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이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기업문화로 지금껏 무수히 많은 비판을 받은 일과 백인 대비 비백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폭행률이 상당히 심각함을 알리는 통계를 보여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A는 ‘아무리 봐도 인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 사건에 왜 아시안들이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보이지 않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두터운 벽이 느껴졌다. 그리고 A의 다음 말이 그 벽의 실체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왜 아시안들이 이 문제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충격을 받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만약 정말 충격을 받았고 또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문제인 부분이 있다면 그걸 온라인상에서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대신 그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쓰는 건 어떨까?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거지.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책을 쓰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그렇게 말하기는 쉽겠지(That’s easy for you to say). 아, 비백인은 어떤 식으로든 인종으로 인한 부당함을 느끼면 거기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 말고 얼른 하던 일은 제쳐두고 책을 쓰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인생을 바쳐야 하는 거로구나, 그런 거로구나!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정작 가진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고 지적받으면 불쾌해하는 ‘몰라도 되는 권력'을 당연하게 가진 삶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참 인생 편하겠구나.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마가렛 조가 한 말이 진리라는 생각이 거듭 드는 순간이다.

I think what it is that white people like to tell Asians how to feel about race because they're too scared to tell black people. (백인들은 아시안들에게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왜냐면 흑인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무서울 테니까 말이다.)

메울 수 없는 이 거대한 틈, 거리를 인지해버린 상황에서 A와 이 여성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까? 그건 읽는 이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아시안 여성, 끝이 없는 수많은 이야기

여기까지 여러 편에 걸쳐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기억과 지인들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이들을 글로 옮기는 과정 내내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기가 막혔지만, 더 절망적인 부분은 이 정도 일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인종 간 연애 등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삶을 아시안 여성으로서 오롯이 온 몸으로 겪어 나가고 있는 전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

‘인종 간 연애'라는 틀에 정확하게 맞지는 않아 당장 이번 시리즈에서는 뺀 이야기만 해도 나열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난 10년 간 겪은 일 중에서도 ‘이건 참 참신하다' 싶어 어이가 없었던 순간은 현지 아시안 여성들을 죄다 ‘starfish’로 부르는 걸 들었던 순간이었다. 이 용어는 섹스할 때 마치 불가사리처럼 팔과 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누워 섹스가 끝날 때까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하거나 즐기지 않는 여성을 지칭할 때 쓰인다. 일단 이 단어부터가 문제다. 듣는 순간 바로 남성의 사정만을 최종 종착지로 삼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섹스의 현장이 바로 연상되지 않는가? 누가 그들을 불가사리로 만들었냐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현지 아시안 여자들은 죄다 전형적인 불가사리들이라며 사석에서 불평하는 백인 남성들을 보며 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언제는 현지 아시안 여자들이 특히 순종적이고 자기 주장 없어서 좋다면서요. 당신들이 불가사리라고 불평하는 그 여성들로부터 성적 주체성을 빼앗은 장본인이 바로 그 여성들을 순종적으로 만든 가부장제입니다. 제발 하나만 해라 하나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 ‘하나만 해라 하나만'에 해당하는 경우가 참 많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종종 등장했던, ‘연인관계를 망치는 주범’인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여성을 찾아 남미 출신 연인 E와 만남을 가지고 있는 백인 남성 D가 최근 자신의 연인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남미 국가의 문화와 전통 상, 가족끼리의 유대가 매우 끈끈하고 먼 친척 간에도 교류가 잦으며 경조사를 빠지지 않고 챙기는 등 혈족 간 거리가 매우 가깝다. D가 이런 국가 출신의 여성 E와 교제하면서, 약혼이나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혈족의 테두리에 들어간 걸로 간주되어 거의 매주 가족 행사에 불려 다니는 등의 이런저런 체험들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거기에 대해서 얼마나 당장 죽을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는지, ‘페미니즘의 영향을 안 받았고', ‘전통적인 가치와 가족이라는 가치를 챙길 줄 아는' 여성이 그렇게 좋다더니 이것 참 그야말로 ‘하나만 해라 하나만’이다.

내가 직접 겪은 개인적인 경험, 그중에서도 정신적인 타격이 꽤 컸던 건 일 때문에 잠시 한 동유럽 국가에서 머무를 때였다. 그 도시는 해안에 있어서 관광객이 상당히 많지만 아시안은 거의 없는 곳이었는데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밤길에 한 백인 남성 관광객으로부터 심한 추근거림을 당했다. 그리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짧게 거절하고 돌아서는 내 뒤에서 그 남성은 엄청난 욕설과 성적 모욕을 해댔다. 얼른 숙소에 돌아와 그 당시 교제하던 연인(백인 남성이다)에게 전화로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매우 속상해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 네가 이국적이어서 그런 거야. 거기에 아시안이 없을 테니 더 눈에 도드라지고 더 독특해 보여서 그런 걸 거야.” 이쯤 되면 일말의 인류애가 내게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상황이 오히려 말이 안 될 지경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으로 출장 다녀온 한 백인 남성 지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한 바에 들렀는데, 마음에 드는 현지 여성이 있어서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요약하면 ‘관심 없으니 내 시간 뺏지 말고 가던 길 가시라’고 했다는 거였다. 그 남성은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하며 ‘예전에는 전혀 이렇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현지 여성들의 반응이 이렇지 않았는데'라고 하더니 다음과 같은 나름의 결론을 내게 전했다. “XX, 너는 페미니스트니까, 네 고국의 여성들이 이제 이렇게 더 이상 백인 남성에게 쉽게 혹하지도 않고, 칼같이 거절하게 된 상황이 아마 뿌듯할 거야. 네가 예전에 말했던 대로 한국에서도 확실하게 여권이 신장되고 있는 것 같아.” 여기에는 일말의 비꼼도 없었고, 이 사람 자기 나름대로는 좋은 의도로 내게 한 이야기였다. 난 여기서 ‘현지 아시안 여성이 영어를 잘 아는 게 신기했다는 점', ‘이제는 아시안 여성들이 바뀌었다는 점' ‘그래서 뿌듯하지 않냐' 등 이 이야기에서 어이가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라고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한국만 떠나면 좀 더 높은 젠더 감수성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곳으로 가면 여성혐오로부터 완전히, 적어도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자 새롭게 내 발목을 잡는 덫이 하나 더 있음을 발견했으니, 바로 내 인종이었다. 차별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덜한 상황이라면 내가 가진 인종, 성별 같은 요소들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의 정도 역시 더 가벼워져야 한다. 그런데 특히 인종 간 연애에서 이 무게는 가벼워지지만은 않을 때가 많았다.

나는 살면서 내가 ‘아시안 여성’이라는 걸 지금보다 더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건 갈수록 또렷해지면 또렷해졌지, 결코 희미해지지는 않았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많은 한국 여성들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걸 피가 나도록 거듭 가슴 한 켠에 새기게 되었듯이 말이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다음 편에서는 이런 아시안 여성에 대한 전형화가 어떻게 아시안 여성들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안 여성인 우리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한다. 

1) 여기서 승무원들이 사용한 이름들은 아시아나 항공기의 추락 사고를 조사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 NTSB가 사고기 조종사들의 이름을 방송사에 전달할 때 사용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방송국 KTVU는 NTSB가 전달한 이 인종차별적 이름을 그대로 보도했으며, 이후에 비판이 일자 인턴의 실수라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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