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18. 어른의 세계를 사랑하는 법

생각하다

다시 줍는 시 18. 어른의 세계를 사랑하는 법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어른의 세계를 이루는 것

돌을 괴어 어른의 세계를 쌓아보자. 첫 번째 돌은 기본적인 생활 환경의 확보. 먼저 우리에게는 잠을 자고 깨어나고 씻고 밥 먹을 수 있는 거주 공간이 필요하다. 부모님 댁의 작은 방 한 칸부터, 월세 300에 30짜리 지하 쪽방까지.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찾았다면, 매일 같이 그곳을 쓸고 닦고 관리해줘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 편의점에 서서 먹는 삼각김밥부터 주말에 숟가락 들고 대기하는 국물 음식까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먹고 사는 일을 충실하게 하기란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폭염과 한파를 견디기 위한 4계절 옷가지와, 하나 구입하면 다른 하나 떨어지는 생필품의 마련이 필요하다. 매일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는 일과 생활의 부족한 부분을 기억하고 채워 넣는 일이란 엄청난 부지런을 요한다.

두 번째 돌은 직업과 활동의 마련. 우리에게는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르바이트부터 밤하늘의 별 정규직까지. 여기에는 시험을 보고 면접을 치르는 노력의 과정 뿐 아니라, 수십 번 떨어지고도 정신을 잃지 않는 초인적인 힘까지 요구된다. 애써서 한 자리 얻었다면, 매일 그곳에 스스로를 있는 힘껏 갈아 넣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나 자신을 잊지 않게 해주는 활동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활동을 하기. 만약 삶에서 단 한순간도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 한다면, 우리는 삶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삶에는 어떠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보는 일부터 마음 속에 자리 잡은 풍경을 시로 적어 내리는 일까지. 결국 좋아하는 일이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돌은 건강한 관계의 형성, 유지. 우리에게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평생 같이 살아온 엄마부터 모르는 세계에서 날아온 애인까지. 내가 타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그러므로 타인과의 소통은 순간의 착각 혹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에게 호기심으로 말을 걸고 애정으로 손을 건네야만 한다. 그리고 어렵게 형성된 관계의 유지에는 소중히 대하는 마음과 진실한 태도가 요구된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함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공동체와의 관계가 필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나와 내 친구들의 현재와 미래를 도모하는 일. 여성에게 국가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망할 한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목소리 내고 행동하는 일이란 분명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고작 세 개의 돌을 쌓았을 뿐인데, 이쯤 되면 글을 읽는 당신도 여기서 글을 쓰는 나도 생각하게 된다. 과연 어른이 되는 것은 가능한가? 그러나 하나의 돌을 더 생각해보고 싶다. 네 번째 돌은 자기 관리와 마음 돌보기. 우리에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 그리고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일과, 셋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미래를 도모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끝없는 주제 파악으로 인해 마모되는 마음을 돌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바닥을 남에게 드러내거나 전시해서는 안 된다. 어른은 존엄과 품위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른, 될 수 있는 건가?

시인 김민정은 세계를 활보하며 온갖 돌들을 줍는다. 이번 시집의 첫 작품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는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주웠던 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시인은 돌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돌의 쓰임에 대해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시인은 어떤 존재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그 존재의 쓰임을 생각하는 일을 사랑이라고 명명한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이처럼 아름답고 쓸모없는 돌들이 세상에서 어떠한 쓰임과 가치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은, 시의 쓰임과 가치에 대해 묻는 일이며 시를 쓰는 시인의 쓰임과 가치에 대해 묻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는 어른의 성립 요건을 자신에 견주어 보며,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고 궁리하는 작품이다. 헌책방을 하기 위하여 시인은 책과 돌을 모아 놓았다. 책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지를 보여주는 존재다. 돌은 그러한 사람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숨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시인은 책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자신을 유지해 나가며, 그러다 돌로써 멈추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고 어떤 사람인지를 질문에 붙이며 살아간다. 시인은 책과 돌을 모으며 그렇게 더 나은 사람, 어른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책과 돌을 모아 놓고 책장의 디자인까지 정해 놓았을 때, 시인에게는 어김없이 자신이 진정 어른이 맞는지 묻는 질문이 나타난다. ‘근데 나 언제부터가 어른일까/그때가 이때다 불어주는 호루라기/그런 거 어디 없나 그런 게 어디 있어야/돌도 놓고 돈도 놓고 마음도 놓는데’

어른의 요건을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우리는 시인과 함께 알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고, 그러므로 어른이 되려는 사람은 평생토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어른은 어렵고 어른은 어지럽고 어른은 어수선해서/어른은 아무나 하나 그래 아무나 하는구나 씨발/꿈도 희망도 좆도 어지간히 헷갈리게 만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정은 끈덕지게 어른에 대해 생각하고 어른이 되고자 노력한다. 어른으로부터 절실하게 어른됨을 배우면서, 어른 아닌 사람에게 가차없이 욕하고 침 뱉으면서. 그녀는 엄마가 된 동생으로부터 아이를 품는 포즈를 배우고, 부처웃음 만개한 국회의원에게 경멸과 조소를 날린다. 그렇게 그녀는 결국 네 번째 돌을 손에 쥐고 헌책방 앞에 서게 된다.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는 거친 세계를 활보하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돌을 쌓기 위해 달려온 김민정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존엄과 품위의 세계 앞에 서서 네 번째 돌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 역시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녀가 말했듯, 돌의 쓰임과 가치를 궁리하며 돌을 만지작거리는 행위란 사랑이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시편들을 읽어 내리며 한없이 언니 같고 저 멀리 어른 같은 김민정에게서 어른의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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