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의 우대 4. 원빈

알다연예인영화

무정의 우대 4. 원빈

복길

판타지

<프로포즈>, 원빈

 자기 품보다 큰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큰 저택에 살며 대형견을 산책시키는 연하의 남자. 불쑥 나타나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개와 함께 유유히 자리를 떠나는 남자. 신인배우가 미니시리즈에서 맡은 역할은 저게 다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뭔지 모르겠다. 좀 소름 돋을 정도로 이상한 캐릭터 아닌가? 그걸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원빈이라는 것까지 듣고 나면 대체 이 고통스러운 판타지는 누구의 것인지 머리를 쥐어뜯게 됐다. 하지만 막상 이 배우의 얼굴을 보면 설정이나 이름 따위를 지적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를 좋아하진 않아도, 그가 아름다운 외형을 가졌단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데뷔 후 20년 동안, 원빈이란 이름은 그런 종류의 과찬이 쏟아지는 미남배우의 대명사로 기능했다.

가면

당시 쏟아지던 청춘 드라마는 원빈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서문에서 말한 대로 [프로포즈]의 개 끄는 미소년이 그랬고, 모두가 발랄한 청춘 캠퍼스에 행복해할 때 혼자만 고독에 젖어있는 [레디 고]도 그랬다. [광끼]에서는 기무라 타쿠야를 생각나게 하는 장발로 등장해 ‘테리우스’라는 고루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세 편의 드라마에서 그의 캐릭터는 주인공의 주변에서 시선을 끌기 위한 장치로 쓰였다. 외모는 배우의 자산 중에 하나이며, 그 때는 지금보다 그것이 고평가 되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그 당시 미남스타의 대표주자는 장동건이었다. 그런 그가 원빈이 출연한 드라마 [레디 고]에서 그의 친형으로 우정출연 했을 때, 그걸 캐치한 사람들은 ‘연기? 모르겠음. 나는 뭐 이렇게 미남인 채로 있을 것임’ 클럽의 조용한 환영식이라 평가했다. 

<레디 고>에서의 장동건과 원빈.

원빈의 90년대는 장동건과 많이 닮아있었다. 정서적 공감이 불가능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그저 아름다운 채로 존재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배우. 대중들은 외모가 상징일 수 있는 권위를 아무에게나 부여하지 않았고 원빈은 장동건에 이어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강원도 정선 출신의 ‘김도진’이라는 본명을 가진 사람이고, 데뷔 전에는 카센터에서 일을 했으며, 연기를 하기 전까지는 SM의 연습생이었고, 앙드레 김의 추천으로 배우가 되어 실제로 기무라 타쿠야를 벤치마킹했다는 사실들은 어쩌면 모두 각각 다른 의미의 정보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미남 전학생의 전설’ 같이 여겨졌다. 미남배우클럽 멤버들은 늘 그렇게 멋진 과거를 가지고 있고 과묵하며, 추종자들로 하여금 의심을 받지 않는다.

굴레

그는 긴 머리를 잘랐다. 장편드라마 [꼭지]에서 그는 [가을동화]의 태석과는 완전히 다른, 70년대 노동자를 연기했다. 연상의 여인 박지영을 사무치게 연모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싸우고, 불의에 맞섰다. 긴 호흡의 드라마여서 가능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는 그 작품으로 비로소 한 인간을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극이 다 설명해주지 않는 고독에 빠져 분노하고, 슬퍼하던 전작의 무책임한 캐릭터들과 달리, 따라주지 않는 여건 속에 괴로워하는 상대 여성 때문에 고뇌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에 번민하며 기다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했을 때 그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반항아’ 캐릭터가 각성을 하는 과정은 꽤 섬세하게 다뤄졌고 그것을 단지 남성성이 강조된 캐릭터로 해석하는데 비중을 두느냐, 혹은 그 과정에서 배우가 발휘했던 섬세함을 높게 평가해야하느냐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은 원빈이라는 배우의 방향에 관한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꼭지]는 50회로 종영했고, 이 드라마에서 그를 지도하고, 그의 태도나 자세를 높게 평가한 원로배우 박근형은 이후 방송이나 지면에서 여러차례 ‘가장 아쉬운 후배 배우’로 원빈을 꼽았다. 그의 평가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빈은 이후 [가을동화]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벽에 밀어붙이고 “사랑 웃기지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하는 인물 태석을 연기했고, 그 드라마는 [겨울연가]의 붐과 함께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아시아 프린스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장진의 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마치고 그는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어필하기 시작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아 기획한 양국 합작드라마 [프렌즈]를 통해 일본배우 후카다 쿄코와 함께 공연하면서 그는 소위 ‘4대 천왕’이라 부르는 가장 큰 한류 팬덤을 등에 업었다. 그때의 한류는 지금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개인이 아닌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때마침 ‘한국의 스필버그’로 불리고 있던 강제규의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를 선택한 것은 그맘때 그가 가졌던 야심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신파로 버무려 당시 함께 개봉한 [실미도]와 함께 ‘천만’이라는 스코어를 달성했고, 모두 당연한 듯이 아시아 각국으로 수출되었다. 민족, 아픔, 고통, 수출, 산업, 천만. 그 시기에 그 영화의 흥행이 가져온 것은 모두 감정을 과잉시키는 것들뿐이었고, 그 영화 속의 원빈의 연기는 확신도, 의심도 없는 상태였다. 늘 그랬다. 남자배우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는 일은 가장 빨리 이 바닥에서 스타가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모든 것들의 과잉 속에 자신을 숨겨 평가 받지 않는 배우가 되는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했다. 한류스타는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선택적으로 누리며, 본인의 영향력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남동생

[태극기 휘날리며]는 ‘원빈 일병 구하기’로 불렸다. 항상 그의 영화 속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거나, 무언가가 결여된 인물로 그려졌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바로 선택했던 [우리 형]에서 그는 자신의 포지션을 유지하는 대신 또다시 이유 없이 거칠고 폭력적으로 그려지는 인물 종현을 선택해 연기했다. 미소년 같은 외모로, 형님사회에서 어딘가 불안한 남동생 역할만 맡는다는 건 일종의 무해함으로 해석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형] 속 그의 연기에서는 오로지 그의 남성다움을 어필하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후 군대를 갔고, 부상으로 만기 제대하지 못했으며 봉준호의 [마더]에 캐스팅 되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을 모델로만 활동하며 보냈다.

올림픽 배우

<마더>, 원빈

우리는 4년 주기마다 볼 수 있는 원빈을 ‘올림픽 배우’로 불렀다. 또 출연 협의는 한 적 있지만 출연은 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날 때 마다 저것이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어그로’의 정석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실제로 봉준호의 신작 [마더]는 올림픽 같은 영화였다. [괴물]은 흥행과 비평적 성공을 모두 이룬 작품이었고 그가 내놓는 후속작의 제목이 ‘마더’인데 한국인의 ‘마더’ 김혜자가 캐스팅 되었으며 한동안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연약한 한류스타 원빈이 그의 아들 역을 맡았다. 돌아온 원빈은 여전히 보호받는 인물이었으며, 익숙한 방식으로 김혜자를 조력함으로서 본인의 존재를 어필했다.

그리고 전처럼 그는 자신의 전작과 싸우듯이 오로지 자신이 주인공이자 구원자가 되는 [아저씨]를 후속작으로 선택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좀 더 능동적이었다. [마더]에서처럼 미남인 본인을 굳이 감추려들지 않았고, [우리 형]에서처럼 일반적인 남성 관객들의 정서에 호소하려 들지도 않았다.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아름다운 미모의 전직 특수요원. 그 영화는 원빈이 맡아서 특별해졌다고 평가받았다. 실제로 그 결과물은 스타와 배우를 구분했을 때 그 두 조건에 충족할 수 있는 합의처럼 보였다.

진정성을 추궁당하는 존재감

이후 원빈은 6년이란 시간동안 어떤 작품에도 출연하지 않고 있다. 배우 본인의 신중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여론과, 과거에 쌓아둔 이미지를 이용해 여러 편의 CF로 돈을 벌면서 작품을 하지 않는 점을 게으르다 지적하는 여론이 있다. 두 주장 모두 한 배우를 무조건적으로 질타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과 달리, 그는 늘 호명 당한다. 이것은 그가 획득한 ‘미남의 대명사’, ‘한류스타’와 같은 타이틀 때문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의 수요에 답하듯 본인이 만들어 놓은 이 커다란 존재감은 늘 진정성을 추궁 당했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성실함으로 보답받길 원한다.

오래 작품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나도 모를 일이고, 이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게 됐지만 오랫동안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느꼈던 회의감을 배우 본인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의 원래 성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나는 그가 늘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린 존재감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떤 이미지에 가려진 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그의 연기는 대개 불안과 유약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알탕영화’, ‘진짜-사나이 영화’로 불리는 작품들 속에서 공회전하고 있고, 동시에 그는 ‘늠름한 남자’를 원하는 ‘한류’의 주인공으로 해외팬을 향한 사랑에 보답해왔다. 그는 언제든 다시 돌아와 영화를 선택할 수 있다. 오히려 별다른 구설 없이 조용히 보낸 오랜 공백이 흥행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가 만약 복귀를 한다면, 나는 몇 개 되지 않는 출연작 나열에서도 느껴지는 이 숱한 고민의 흔적이 부디 좋은 쪽으로 향하길 바라며 몇 가지 단서를 더 붙여 놓는다. 한류는 케이팝으로 완전히 힘이 이동했음. 더 이상 남성성을 입증하지 않아도 됨. 남성배우로서 영화를 선택할 때, 본인의 고민이 곧 메시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함. 그리고 정말로 원빈의 얼굴이 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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