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투'할까 1. 피해사실 알리기

알다미투성폭력

어떻게 '미투'할까 1. 피해사실 알리기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올봄, 대학가에 미투 열풍이 불었다. 그 덕에 나도 '미투'를 외칠 수 있었다. 교내 다른 교수의 성추행 고발을 화두로 학생들은 미투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가해 교수의 연구실 방문부터 복도까지 포스트잇 시위가 이어졌다.

내가 학교에 실명으로 교수를 신고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졸업 여부' 였다. 성추행을 당했던 다음 날, 교내 성폭력피해상담센터 번호를 몇 번씩 눌렀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재학생이 실명으로 교수를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교내 성폭력피해상담센터에서는 피해자의 신변을 최대한 보호하려 할 테지만, 신고자가 누군지 정도는 아주 쉽게 드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졸업 시기가 되어 겨우 결단을 내렸다.

미투에 참여하고 나서, 나는 포털에 '안전하게 미투 운동 하는 법'을 검색했다. 안전해지고 싶었다. 미투를 하되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에서 해야, 나의 인생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을지는 물론 어떻게 미투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얘기들은 하나도 없었다. 

미투 이후 짊어져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무거운 줄 알았더라면 과연 내가 미투 운동에 참여했을까? 나는 몰매를 맞고, 의심받고, 미움받았다. 신고 이후 모든 순간에 ‘괜히 일을 벌였다’는 후회를 저버릴 수 없었다. 운동의 결과를 얻어낸 이후에도, 나의 시간과 노력을 소진했을 만큼 이 운동이 가치 있었는지 고민했다. 교수의 징계 내용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없어서 미투 운동에 대한 회의를 더 크게 느끼기도 했다. 

증거확보 등을 위한 초동조치를 알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고, 선택하는 수단에 따라 어떤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없어 불안했다. 직접 겪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미투 운동을 진행했으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미투의 '방법'에 대한 기록을 정리했다. 다른 이가 '미투'를 망설이고 있는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데에 조금의 도움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편집자주: 이 글에 사용된 구체적인 기관명 및 인명과 이니셜 등은 실제와 다르도록 편집하였습니다. 

 

신고 후에 공론화 하는 게 낫습니다

당시 내 사건이 공론화되기 직전에 다른 성추행 사건으로 학교가 시끌벅적했었다. 몇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피해 학생들이 모두 익명의 제보자라는 점
  2. 대자보에 교수 실명을 걸어 넣은 점

교수가 대자보를 직접 떼어 경찰서에 가서 명예훼손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제기를 위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썼다. 먼저 공식적인 루트로 교내 성폭력피해상담센터에 직접 신고했고, 그 이후에 교내 학생들과 언론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을 공론화시켰다.

나의 경우, 학교에서 몇 차례 공론화되었던 성추행 폭로 건에 바로 이어 신고 절차를 밟았다. 쏟아지는 폭로에 학교 관계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 사항을 바로 접수해주었다. 나 역시 시의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유선상으로라도 먼저 신고에 임했다. 단 이후 이뤄진 수차례의 조사는 대면 방식이었다는 점을 밝힌다.

공론화 방법에 따라 차등화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공론화를 할 때는 진실한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의견표현이나 허위사실은 적시하지 말아야 하며, 공론화에 앞서 표현내용의 진실성/공익성의 인정 근거를 최대한 남겨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공론화와 명예훼손

공론화를 할 때는 명예훼손의 위험을 항상 고려해야만 한다. 불법행위는 형사상, 민사상 불법행위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형사상 명예훼손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형사소송 진행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가 민사사건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 공론화한 내용에 대한 회고와 함께 법률 자문에게 찜찜했던 점을 정리해 물어봤다. 아래는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Q. 명예훼손이란 무엇인가? 모욕과는 무엇이 다른가? 

형법 제 307조 1항의 명예훼손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사실'을 드러낸 경우 성립한다. 여기서 '사실'이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관한, 증명 가능한 진술'을 의미한다. 모욕죄는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경우 성립한다. 가령 A가 "B는 바보"라고 떠들고 다녔다면 모욕죄가, "B의 IQ는 80이다"라고 떠들고 다녔다면 명예훼손이 문제가 된다. 

Q. 어떤 경우 명예훼손이 이뤄지는가?

사람은 비방할 목적으로 언론사의 출판물을 통해 명예훼손을 한 경우, 형법 309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단체 카톡방 등에서 명예훼손을 한 경우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 두 경우 모두 형법 307조의 위법성조각사유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가 필요하다. 

Q. 공익을 위한 공론화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던데? 

대법원에서는 공익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원칙적으로 비방 목적이 부인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형법 제 310조(형법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가 적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 공익성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 

Q. 공론화시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한다면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할 수 있나? 

그렇다. 특정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공익성에 대한 판단에도 다소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Q.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외부 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행위도 명예훼손에 해당하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다. 

Q. 내가 겪은 일이 아니고, 전해 받거나 제보 받은 일을 공론화 시켜도 되는가? 

피해자가 아닌 관여자의 입장에서는 진실성을 입증하기가 어려울 수 있고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공론화 전 단계에서 '표현내용이 진실이라 믿은 사실, 진위 확인을 위한 조사를 충실히 한 사실'의 근거를 남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공론화가 상책이 아닐 수 있다. 나는 공론화하는 모든 순간에 심혈을 기울였고,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도 수습해야 할 일이 생겨났다. 공론화란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범위로 손수 이 사건을 밀어 넣는 일임을 말하고 싶다. 공식적인 신고 절차를 밟음으로써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당연히 잘못되었다’고 여겼을 일들에 대해, 미투를 진행하게 된다면, ‘잘못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을 만큼 판단력이 취약해질 수 있다.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이 어려워졌다면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녹음은 적극적으로 

대화마다 녹음하기가 번거롭고 아는 사람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이 부담스럽겠지만 사건과 관련된 모든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권한다. 성폭력 사건 당시에 녹음하지 못했더라도, 신고를 포함한 모든 조치 과정에서라도 녹음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에 대응하려면 모든 상황에 대한 기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녹음 원본은 증거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도청/감청

'증거능력'은 주로 형사 절차에서 문제가 될 뿐, 조직 내 징계나 민사재판에서는 제한이 없으므로 녹음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단, 녹음파일이 적법해야 한다. 적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 자문과의 일문일답. 

Q. 녹음이 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나? 

가해자의 목소리를 녹음한 경우, 가해자가 피고인인 형사제판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녹음자'가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이 진술한 대로 녹음되어 있음'을 인정하면 형사소송법 제 313조 제 1항에 의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단, 녹음한 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복사과정에서 편집이나 변조를 하지 말아야 한다. 

Q. 녹음 전 반드시 동의를 얻어야 하나? 

대화자들이 내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내가 듣고 있는 말을 내가 녹음해도 위법하지 않다. 가령 옆 방의 말소리를 몰래 녹음한 경우는 위법하다. 하지만 녹음한 사람이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면 비밀녹음이라도 위법하지 않다. 대화가 1:1인 경우는 물론이고, 3인 이상인 경우도 그렇다. 

Q. 녹음에 관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기타 지점이 있다면? 

녹음이 민사소송 증거확보의 목적이었더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취득한 전화녹음으로 음성권과 사생활 비밀이 침해되었다면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고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신고 과정에서 모든 순간의 합리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합리성의 판단 기준은 철저히 ‘나’여야 한다고 전하고 싶다. 학교의 처지를 대변할 필요는 없다. 또 내가 도움을 얻은 사람들이나 특정 기관의 상황을 대변해서도 안 된다. 철저하게 신고자인 내 처지에서 불리한지 따져보고 알아보아야 한다.

만일 신고 이후 모든 과정 중 하나라도 피해자인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사건 자체를 공론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학교에서도 이런 사건을 처리해본 경험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무엇보다 사건 처리 방식이 미숙했고, 학교 내부 규칙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외부의 전문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구하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고민 끝에 두 외부기관에 연락을 취했다. 하나는 ‘한국여성의전화’였으며, 또 하나는 모 언론사였다. 사실 나는 공론화를 하기보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더 많은 도움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의뢰했을 때는 “최근 미투 운동으로 전례 없을 정도로 신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삼자대면을 추진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최대한 학교의 신고절차를 밟고 나서 학생에게 불리한 일이 생긴다면 저희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학교도 나름대로 잘 해보고 싶을텐데,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지요.”라는 답변을 먼저 받았다.

기대했던 만큼 ‘한국여성의전화' 측의 도움을 직접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학교 내 성윤리대책위원회의 조사를 받을 때 ‘한국여성의전화'에 자문을 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학교에서 합리적인 일 처리를 하지 않을 경우, 학교를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의전화’뿐만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성 단체가 많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안내하는 성폭력 상담 전화에서, 사안별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관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은 어떻게 '미투'할까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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