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10. 뉴질랜드 현모양처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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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10. 뉴질랜드 현모양처 되기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내 꿈은 현모양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페미니스트가 가지기에 적합한 꿈은 아니지만,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의 나쁜 점은 뭘까? 다른 꿈을 지닌 여성이 사회적 억압과 비틀린 기대로 인해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만 갇혀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대단한 꿈이 없고, 노동에 애정과 열정이 없고,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중요하다. 어차피 어떤 일이든 하면서 살아갈 거라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정성껏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오래오래
먹고 살기
프로젝트

파트너와 함께 뉴질랜드에 살기로 했고, 우리에게 산다는 건 곧 노동하는 거라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남의 나라에서 지속 가능한 생존을 도모하는 첫걸음은 학교에 다니는 거였다. 언어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채로는 안정적인 직장에 바로 취직하기 어렵지만, 일 년 이내의 짧은 과정이라도 현지에서 졸업한다면 인맥과 실력이 생겨 상황이 더 나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우리의 형편으로는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선택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공부해야 했고 누군가는 그 기간 돈을 벌어야 했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던 내가 돈을 벌기로 했다. 

작은 문제가 있다면 파트너가 선택한 학업 과정은 일 년이 넘었고, 그의 입국 시기가 생각보다 많이 늦춰져서 내가 받았던 일 년짜리 비자가 먼저 끝났다는 것이다. 순탄하지는 않았어도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우리의 이민 프로젝트는, 뉴질랜드에서 일할 수 있는 내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끝나고 직장에서 취업 비자마저 지원받지 못하자 크게 삐걱거리고 말았다. (애초에 돈을 충분히 모아두지 않은 본질적 문제는 잠시 외면하도록 하자.) 생활비는 부족한데 나는 임금 노동이 불법인 처지가 되었으니, 하는 수 없이 파트너가 일을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가게 됐다. 대신 나는 가사 노동과 일상에서 다방면으로 그를 힘껏 도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십 년 째 자취해서 집안일에도 익숙했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고양이를 돌보는 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파트너는 가사 노동을 폄하하지 않는 페미니스트고 언제나 나의 노고를 알아주고 배려하는 사람이다. 나는 새벽에 출근하는 애인의 운전기사를 기꺼이 맡았고, 애인이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함께 먹을 점심을 요리했다. 때로는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고, 장을 보거나 필요한 물건을 대신 사러 나갔다. 그 모든 일이 정말 즐겁고 기뻤다. 우리는 당연히 그런 일들을 중요하지 않다거나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돌보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돕는 것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러스트 이민

문제는 내 마음이 아니었다.

우리의 합의와 인식 따위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여겨지는 건 아니다. 내가 가사노동에 즐거움을 느끼며 꾸준히 열심히 한다고 해도, 우리 사이에서 파트너가 내 노동을 충분히 고마워한다 해도, 그게 눈에 보이는 경력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사회에 사는 한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고, 그런 내 감정과 걱정이 우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돌보는 일을 하며 쌓아갈 기술력은 이 관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만 써먹을 수 있으니까, 관계의 동향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파트너와 호흡이 잘 맞고 특화된 최고의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해도, 이 관계가 불안해지면 그 능력은 어디 가서도 인정받을 수 없다.

정성껏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던 날이 있었다. 요리에 서툴러서 언제나 품이 많이 드는데, 또 하다 보니 열중했나 보다. 팬에 그냥 식용유를 부어도 되는데 더 맛있어지라고 버터를 두르고, 베이컨만 넣어도 되는데 버섯도 썰고 양파도 썰고 브로콜리도 썰어서 적당한 타이밍에 각 재료가 알맞게 익도록 나름대로 계산도 했다. 아니면 미역국을 만들었던 날인지도 모른다. 맛있는 밥과 맛있는 김치랑 함께 먹어야 맛있을 것 같아서 그냥 밥통에 쌀을 넣고 눌러도 밥이 되지만, 더 맛있으라고 미리 쌀을 불려 놨었다. 애인이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뜸까지 다 들어 완성되길 바라며 시간을 잘 계산해서 취사 버튼을 눌렀다. 식사를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디테일이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냥 내가 좋아서 조금 더 맛있게 먹고 싶어서 하나하나 섬세하게 노력했다.

닭발이 먹고 싶다고

그런 날 중 하나였던 어느 날, 퇴근한 애인이 갑자기 닭발이 먹고 싶다며 시내에 나가자고 했던 적이 있다. 준비했던 점심은 저녁때 먹어도 되지만, 정확한 타이밍을 재며 식사 준비에 정성과 노력을 쏟았던 게 조금 허망했다. 막 퇴근한 애인 대신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그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는지 이동하는 내내 관련된 연락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정말 운전기사가 된 것처럼 옆에서 조용히 운전했고, 도착해서 우리는 주차를 하고 음식점에 들어갔다. 식당에서 음식을 고르고 주문한 뒤에 그는 말없이 다시 업무에 열중했고, 나는 잘 먹지도 않는 닭발을 바라보면서, 간식을 대충 먹으며 파트너의 퇴근을 기다리던 낮 시간을 떠올렸다. 요리가 가장 맛있을 때 함께 먹으려고 점심 때가 지나고 있지만 배고픔을 참았다. 

우리 관계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게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 같이 사는 데다가 일상을 거의 하루 종일 함께 하니까,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데이트를 하다가도 카페에 마주앉아서도 각자 업무 연락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날의 파트너의 행동이 문제였던 게 아니고, 내 모든 기대와 집중이 그에게 쏠려 있던 게 문제였다. 갑자기 식사 때마다 밥을 먹으라고 애타게 부르던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언제나 ‘이것만 하고 먹을게.’하며 컴퓨터 앞을 쉽게 떠나지 않는 딸이었던 것 같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다.

나중에 보면 사소해서 굳이 싸울 필요도 없을 일들로 속상한 날들이 자꾸만 생겼다. 파트너의 퇴근이 늦어져서 데리러 온 내가 하염없이 기다린 날도 그랬다. 나는 초보 운전자라 차를 어디에 세우기도 빼기도 어려워 주변을 돌며 빨리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다 너무 오래 걸리자 가까스로 차를 세웠고, 차 안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지쳐서 도로 집에 가던 중에 퇴근했다는 연락을 받고 이미 다 나온 고속도로를 다시 돌아갔다. 의외로 돌봄 노동은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이고,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일이다. 내가 고른 도시락통이 있는데 다른 걸 또 사올 때, 예전 같았으면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선물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거나,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용도로 물건이 더 필요해서 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주 업무가 상대를 기쁘게 하는 일일 때, 그런 사건은 나에게 실패나 무능으로 의미화된다. 파트너가 무신경한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이 업무 자체의 특성이다. 우리의 업무 분담이 어느 정도 달랐을 때, 그러니까 주로 음식을 만들고 집을 청소하고 상대방의 퇴근을 기다리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을 때 우리의 처지는 또 달랐다. 나는 자주 예상보다 늦게 들어와 실망을 주었고, 상대가 들인 노력과 기대만큼 기뻐하지 못해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둘 다 바쁘게 일하고 지낼 때 우리는 원래 누구 할 것 없이 옷을 아무 데나 걸쳐 놓는 사람들이었다.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파자마를 침대 위에 던져 놓고 휴일에 몰아서 빨래를 하곤 했다. 집안 정리와 세탁이 내 업무 범위가 되고 나니 새삼 그 모든 게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파트너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원래 그렇게 잘 지냈는데, 갑자기 그 모든 게 배려 없게 느껴진다. 

내 전담 업무로 생각하게 된 이상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회사에서 업무를 분담받으면 예상하고 계획을 수립할 수 있지만, 이건 시도 때도 정신도 없이 업무가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말이다. 상식 밖으로 무례하게 업무를 분담하는 회사도 분명 있지만, 퇴근 직전에 촉박하게 일을 요청받는다면 꼭 항의하거나 퇴사하지 않더라도 그 상황이 옳지 않다는 판단은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업무인 것이 상대방에게 업무가 아닐 때, 나는 집안일을 끝내고 쉴 참이었으나 퇴근한 동거인의 여가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면 판단이 쉽지 않다. 여가 시간에는 옷도 갈아 입고 간식도 먹고 소지품도 가방에서 꺼내 놓으며 집안을 어지럽히는 게 당연하다. 그럴 때 서로 배려를 어디까지 요청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러스트 이민

다 알면서도

가사 노동과 임금 노동을 완벽히 분리할 수 없다. 샤워를 스스로 하고 옷을 스스로 입듯이 밥을 직접 해 먹고 자기 자리를 스스로 정돈해야 하고, 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가사 노동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원하지 않는 세탁 방식으로 망가진 옷을 보며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고,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스스로 준비해야 취향에 맞지 않아 서로 서운해지는 일이 없다. 상대방의 만족을 목표로 두는 업무는 기준이 모호해서 성과에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걸 누군가 전담한다면 정작 노동하는 당사자가 일에서 만족을 얻기 어려워진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 맞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에서는 살아가려면 돈이 들고, 나처럼 비자가 없어서 누구 하나가 내 몫까지 돈을 마련하는 일을 떠맡고 있다면, 나머지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라도 온전히 내 부담으로 느끼게 된다. 한국의 이성애자 부부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런 한계를 다 알면서도 출산, 육아, 임금 격차, 경력단절 등의 이유로 하는 수 없이 그 역할을 자신의 몫으로 떠맡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작은 일에 서운하고 쉽게 불안해지는 나는 아무래도 전업주부가 되려면 정신 수양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직업의 정신적 노하우라고 생각하면, 경력이 꽤 쌓이고도 가질 수 있을까 말까 한 전문성이라 영원히 가까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모양처는 더 어려울 것이다.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는 주부의 업무를 포함하면서도 더 많은 책임과 정서적 보살핌을 동반한다. 유명한 현모양처들은 물론이고, 그걸 해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서는 누구보다 전문가다. 멋진 페미니스트처럼 보이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삶을 비난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 해도 살아보지 않은 다른 삶의 깊이를 감히 재단할 수 없다. 각자의 맥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우는 이들을 조용히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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