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6. 백인 페미니스트의 덫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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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영문학자 6. 백인 페미니스트의 덫 (하)

숙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네가 정식으로 L의 수업을 듣는 건 불가능해.”

E는 딱 잘라 말했다.

내가 그 학기 개설된 L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유일한 방법은 학점을 인정받는 것을 포기하고 청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세미나 두 개를 들을 예정이었고, 학부 수업 조교 일에 더해 매주 최대 10-12시간씩 학교의 라이팅 센터에서 튜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점 인정조차 받지 못할 수업량을 늘린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대신, 나는 그 다음 학기에 L과 독립 연구(independent study)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A와 함께.

독립 연구는 말 그대로 교수와 대학원생이 과에서 제공되는 커리큘럼과는 별개의, 독립된 주제를 정하여 진행하는 세미나를 일컫는다. 학교에서 개설되는 수업들이 대학원생들의 모든 연구분야를 다룰 수 없고, 종종 학생들이 원하는 교수의 수업을 들을 수 없다보니 생긴 제도다. 

관심 있는 주제로 소규모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원생이 꿈 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공부 환경이다. 그래서 독립 연구는 지도교수가 되어줄 교수와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학문적으로 큰 자극을 받을 수 있을 뿐더러, 미래의 지도교수와 교류하며 보다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다만 독립 연구는 보통 교수의 재량에 달려있다. 독립 연구를 위해 매 주 학생과 만나고 수업준비를 하는 시간이나 노동에 대해 학교가 추가적으로 보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교수들이 독립 연구를 하기를 꺼려하고, 이 때 학생들을 위해 중재를 하는 것이 박사과정 디렉터의 역할이다.

일러스트 이민

'비공식적인' 절차,
'비공식적인' 권력

물론 학교에서는 이런 얘기를 쏙 빼놓은 채 독립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박사과정의 장점으로 홍보했다. 독립 연구를 실제로 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지와 같은 뒷사정은, 보스턴에 도착하고서야 다른 대학원생들의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들었다. 

그런데 나와 A의 경우 위의 시나리오와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L은 독립 연구에 흔쾌히 동의했는데, 박사과정생들의 편의를 살펴 주어야 할 디렉터인 E가 오히려 독립 연구를 못마땅해 한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노조화가 된 게 아닌 이상 학교와 공식적인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는다. 노조화가 된 우리 학교의 경우에도 학교가 고용하는 '강사'로써 우리의 근무조건 등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대학원생'들의 처우에 대한 것은 노조 관할 밖이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대학원생들은 입학하는 해에 스테플러로 제본된 얇은 '대학원생 규칙 안내서 (rule book)'를 받았는데, 이게 공식적인 비공식 계약서의 역할을 했다. 입학한 해의 규칙 안내서에 적힌 내용에 따라 대학원생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 규칙 안내서는 박사과정 디렉터가 임의로, 그 누구와 논의하지 않고, 매년 내용을 수정할 수 있었다.

내가 받은 2016년의 버전에 따르면 독립연구를 신청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독립 연구를 희망하는 학생은 함께 독립 연구를 하고 싶은 교수에게 수업에 대한 동의를 받는다. 그 후, 영문과에서 제공하는 양식에 박사과정 디렉터의 서명을 받아 과 사무실에 제출하여 수강신청 절차를 대신한다. 그 어디에도 '디렉터의 허락'을 미리 받아야한다는 언급은 없다.

“E에겐 마지막까지 절대 말하지마.”

그런데 L과 독립연구를 해본 적 있는 모든 대학원생들이 마지막 절차를 밟기 직전까지 독립 연구를 하려한다는 것 자체를 디렉터인 E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E가 반대할 여지가 전혀 없게끔 L의 동의는 물론이고, 완성된 강의계획서를 준비해 갈 것을 추천했다. 

왜냐고 묻자 어떤 이들은 E가 L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E가 독립연구를 싫어하기 때문이라 했다(나중에서야 두 이유 모두 맞다는 걸 알았다). 대학원에는 명문화 된 규칙이나 계약보다 암암리에 눈치를 봐서 따라야하는 규칙이 더 많았고, 유색인종 대학원생은 남들보다 이런 사정에 밝아야 한다는 것을 이 때 정말로 느꼈다.

선배들의 조언대로 우선 L에게 연락을 했다. 직접 만난 L은 독립연구에 긍정적이었고, 수업에서 다룰 만한 텍스트들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L에게서 아무런 연락없이 일주일이 지나갔다. 나와 A는 매일 불안감에 속을 검게 태우며 문자를 주고받았다. 

“오늘은 L에게 연락해볼까?”
“아냐,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L은 너무 유명하고 바쁜 사람이었고 우리는 지도교수가 되어줄 법한 L에게 '독촉'으로 느껴질 법한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A는 우리끼리 강의계획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강의계획서 모양새라도 갖춘 뒤에 L에게 연락하면, L이 우리의 절박함을 알아줄 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우리 둘 모두 학부에서 영문과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시안 아메리칸 문학과 관련된 수업을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만든 강의계획서는 허술했고 우리가 메꿔야 할 학문적 구멍이 얼마나 큰 지 보여줄 뿐이었다. 

그래도 계획은 통했다. 엉망진창인 우리의 강의계획서를 본 L이 이틀 뒤에 완전히 새로운 (L은 친절하게 “아주 조금 수정했다”고 메일에 적었지만 폰트를 제외한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강의계획서를 우리에게 보냈다.

디렉터 E를 만날 차례였다.

백인 페미니스트의
제도적 인종차별

A보다 내가 먼저 면담을 하게 되었다. E는 언제나 그렇듯이 도식적인 스몰 토크로 면담을 시작했다. E는 늘 그렇듯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어조로 내게 말을 걸고 웃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내가 L과의 독립 연구를 언급하자마자 그는 태도를 바꿨다.

적대적인 어조에 권위적인 말투로, E는 왜 자신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일갈했다. 박사과정 디렉터인 자신이 무시를 당해 기분이 상한 것이 너무 명백했다. 나는 내가 처음부터 L과 공부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온 걸 알지 않느냐고, 그 어디에도 독립 연구를 디렉터에게 먼저 허락받아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고 항변했지만 E는 무시했다. 내가 내민 서류 양식과 강의계획서도 “지금 내가 그걸 볼 필요는 없다”며 흘긋 쳐다보더니 손대지조차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E가 나를 안좋게 봐서 불이익을 주면 어쩌나 무서워서 하고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디렉터는 경력에 도움이 되어 경쟁이 치열한 각종 학내 장학금이나 연구자 직책에 어느 대학원생을 후보로 추천할 지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다. 대학원생이 월급을 받지 않는 여름방학 3개월동안 받을 수 있는 보조금 수여 순서도 물론 디렉터가 정한다. 그래서 나는 절차를 따랐고, 대학원생으로써 당연한 얘기를 하고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E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자비를 요청하듯 말해야 했다. 그게 가장 비참했다.

“우선 내가 L과 얘기 하겠어. L은 이런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 지도 몰라.”

물론 E는 틀렸다. L은 이런 절차적 문제와 유색인종 대학원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모르는 척하며 독립 연구를 밀어붙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쨋든 E는 당장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며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끝까지 나에게 싸늘하게 대했다. 연구실 밖 복도로 나갈 때까지 나는 울면 지는 거라고 이를 물고 버텼다.

복도에 서있는데 얼굴이 홧홧하고 그저 멍했다. 너무 외롭고 서러웠다. 내가 하는 공부나, 나라는 대학원생에 대한 그 어떠한 지원이 없는 학교에서. 나는 너무 외로웠다.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의 선구자 중인 교수가 재직 중이고, 그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원생만 두 명이 더 입학했는데 관련 세미나도 개설하지 않고, 독립 연구조차 어렵게 만드는 체제. 그린듯한 제도적 인종차별(institutional racism)이다. 제도적 인종차별이란 제도적으로 자원, 권력, 그리고 기회가 백인에게 이득이 되도록 분배하면서 유색인종은 그 제도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말한다.

디렉터와 같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나에게 지나치게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당시에는 내가 도움을 요청할 만한 교수가 없었다. 이런 지리멸렬한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고, 내 괴로움을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조차 없는 백인 동기들을 생각하면 서러웠다.

나는 고작 수업 하나를 듣기 위해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나중에 나를 더 어이없게 했던 것은, E가 적극적으로 교수 J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던 A에게는 훨씬 친절하게 굴었다는 얘기였다. 자신의 권위를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자마자 만만한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감정을 가다듬은 후 A에게 상냥한 척 한 것이다.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E는 자신이 얼마나 소수자와 '연대하는' 페미니스트인지 강조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언제나 자신을 교차 페미니스트(intersectional feminist)라 자칭하며, 소수자가 당하는 억압의 교차성을 이해하고, 다인종 여성간의 연대를 지지하는 척했다. 그러더니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같은 여성인 학생에게 소수인종이란 이유로 너무나 쉽게 권력을 휘둘렀다. E는 '교차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내가 인종차별을 할 리 없다'라는 주장의 근거로만 사용할 뿐이었다. 실제로는 제도적 인종차별의 집행자 그 자체였다.

일러스트 이민

거짓말로 휘두르는 인종 권력

다음 날 E는 우리에게 메일을 보냈다. 독립연구를 “허가”한다는 한 줄 짜리 성의 없는 메일이었다. 고생 끝에 우리는 L과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 학기, 독립 연구를 시작하며 우리는 디렉터를 잘 설득해줘서 고맙다고 L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런데 L은 오히려 의아해했다. E가 지난 일년 간 단 한번도, 필수적으로 말을 섞어야 하는 정규 회의 외에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거나,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E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스물네 시간을 기다린 뒤에 L과는 어떤 얘기도 하지 않고 독립 연구를 “허락”한 것이다. 자신의 감투와 권력을 과시하며 우리를 괴롭힌 뒤에.

나는 이 때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 에피소드가, 지금까지 썼던 에피소드 중 가장 쓰기 힘들었다. 당시에 느꼈던 모멸감이 너무 생생해서 쓰는 것을 차일피일 미뤄 에디터에게도 미안했다. 이런 걸로 트라우마까지야, 라고 생각하며 이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상처 받지 않겠다 다짐한다고 E와의 일이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보스턴을 떠나고 새 프로그램의 시작을 기다리던 중, 나는 새 학교의 행정직원에게서 수강신청과 관련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새로 입학하는 대학원생들은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수강신청을 하는데, 몇몇 수업은 정원이 초과되었으니, 그런 수업은 추가적으로 수강생을 3명씩만 받을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3명이 어떻게 정해지는 지에 대해선 어떠한 안내도 없었다. 모든 질문은 오리엔테이션 당일 받을 테니 질문을 가지고 답장하지 말라는 첨언만 있었다.

후에 내 지도교수가 되었으면 하는 K 교수의 수업도 정원이 초과된 수업이었다. 그 이메일을 받은 후 나는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내 입학 동기는 무려 21명이다. 수업을 듣지 못하면 어쩌나, 보스턴에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내 연구분야의 수업 하나 꼭 들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K 교수에게 이런 상황이라고 이메일을 보내야 하나? 너무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교수에게 보내려고 작성한 이메일 내용을 두 명의 친구들에게 첨삭 받고 나서도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답변이 바로 왔다. 내가 그 세 명에 포함이 되든 안되는 꼭 수업을 듣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메일을 확인하던 날 나는 카페에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울면 안된다는 생각에 또 울음을 참았다. 그래도 새 학교에서는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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