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 1. 게이머는 당연히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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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 1. 게이머는 당연히 남자?

하빈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 때 그 애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초중학교 시절 나는 용돈을 달에 두 번에 걸쳐서 받았다. 하나는 현금, 하나는 게임 캐쉬였다. 나는 게임을 꽤 좋아했던 아이였다. 국내 온라인 게임은 한 번씩 다 해봤고, 퇴근한 아빠랑 PC방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영어는 하이 헬로우만 할 줄 알면서 GTA의 치트키는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게임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주변에도 게임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없었다. 내가 여자라서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게임을 다시 시작한 계기는 수능 선물로 받은 <폴아웃: 뉴베가스>였다. 감사한 척 받고, 예의상 적당히 하는 척 하다가 그만두자는 생각을 하며 시작버튼을 눌렀더랬다.

그 이후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전혀 관심 없던 게임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돈도 많이 썼다. 특히 여성 주인공을 선택할 수 있는 게임에 몰입했는데, 그때 여성서사를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 그 이상이다.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도전하고 성취와 보람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묘한 공백감에 시달렸다. 남자애들이 흔히 그러듯, 나도 또래 친구들과 게임 얘기를 하고 싶었다. 왜 이 애들은 게임을 안 할까? 옛날엔 주변 친구들 모두 게임을 했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말고는 게임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개인 과제 주제를 게임으로 잡고 그룹 토의를 하는데,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팀원들이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까요, 저도 어릴 땐 게임 되게 좋아했거든요.”
“나도! 나도!”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게임을 좋아했던 어린 아이일 때, 주변 친구들 역시 나처럼 게임을 좋아했다. 지금도 2000년대에 유행했던 게임 이름을 늘어놓으면 어릴 때 좋아했던 게임이라며 반갑게 반응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도 게임을 싫어하다가 다시 좋아하게 된 케이스다.

이들에게 게임을 왜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여자들은 원래 게임 싫어하니까. PC방이 무서워서. 날 위한 게 아닌 것 같아서. 폭력적인 게 싫어서. 경쟁하는 시스템에 질려서. 오락실에서 슈팅 게임을 즐기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들의 성토를 듣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게 된 거라고.

일러스트 이민

게임, 그 남성화의 역사

게임 광고에는 게임이 아닌 욕망이 있다

얼마 전 친한 지인 하나가 ‘저질 게임 광고 보기 싫어서 유튜브 레드를 결제했다’고 내게 토로했다. 나 역시 그 게임 광고를 질리도록 봤기 때문에 무엇인지 안다.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내용의 모바일 게임으로 광고 내용의 대부분이 후궁을 고르거나 공주의 외모를 결정하는 등 불쾌할 정도로 선정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유튜브 레드를 결제한다고 ‘저질 게임 광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선정적인 광고는 유튜브 광고에서 보이는 일부 게임만의 현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내 게임이 여성의 성적대상화에 홍보를 의존하고 있다. 갑옷을 빼입고 늠름하게 서있는 남성 캐릭터들과 대비되게 여성 캐릭터들은 아찔한 포즈와 옷차림으로 보는 이들을 유혹한다. 혹은 걸그룹 아이돌이나 배우 같은 여자 연예인이 등장한다. 그런 광고들의 상당수는 얼핏 보면 게임 광고인지도 모를 정도로 게임과는 연관이 없어 보인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웹사이트, 앱스토어, 게임 웹진 등 많은 장소에서 이런 게임 광고들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의 광고들은 유튜브에서처럼 마음대로 차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다 스크린 도어에 붙은 섹시한 여성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와 어색하게 눈을 마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갓챠> 사진제공 아타리

아케이드, 콘솔 게임이 대세였던 70~90년대의 게임 광고들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노골적인 선정성으로 승부하는 것들이 많다. 막상 게임 내에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드 펀처(The Final Round)>의 광고, 사진제공 코나미

코나미 사의 아케이드 복싱 게임 <하드 펀처(The Final Round)>의 광고에는 배가 보이는 탱크톱을 입고 복싱 글러브를 낀 여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게임 속에선 오로지 남자 선수들만이 복싱을 한다. 타이토 사의 <정글 킹(정글 헌트)>의 광고에도 천으로 중요부위만 가린 야생적인 분위기의 여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게임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정글을 모험하는 이야기다. 스턴 사의 <문 워> 역시 게임 자체는 우주 배경의 슈팅 게임이지만, 광고에서는 엉덩이가 반쯤 드러나는 짧은 핫팬츠를 입은 여성이 유혹하듯 등을 내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사기광고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낚시용’으로 내놓은 섹시함도 불쾌하지만, 가장 노골적인 것들은 따로 있다. 바로 여성을 아예 소비자가 아닌 것으로 그려내는 종류다.

사진제공 네오지오

네오지오 사의 아케이드 게임 <사이버 립>의 광고 중 이런 것이 있다. <사이버 립>을 플레이 하느라 정신이 없는 남자 뒤에서 섹시한 란제리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다. 여자는 “그이가 나를 가만히 두지 못했던 때도 있었는데!”라고 말한다. 

사진제공 닌텐도

닌텐도의 게임보이 포켓 광고도 비슷하다. 게임보이를 쥐고 있는 남성의 손 앞에 침대 위에 납치당한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손발이 묶인 채에 침대에 누워있다. 하단에는 ‘새로운 게임보이 포켓, 완전 방해돼(distracting).’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는 지금도 자주 등장하는 유형이다. 최근 국내 플레이스테이션 광고가 대표적이다.

해당 광고는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아내에게 빌고 부탁해서 기기를 사는 것보다 일단 질러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쉽다는 내용이다. 게임기를 사고 싶은 남편과 ‘바가지를 긁는’ 아내라는 진부한 성적 고정관념을 사용하는 광고다. 이 광고는 2017 서울영상광고제의 비TV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남성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로서 그려질 때 여성은 게임을 하는 남성을 질투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으로 그려진다. 마치 게임은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취미라고 말하는 듯하다. 게임을 하는 여성이 등장해도 이들을 담은 카메라의 시선은 주로 남성 모델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예상 소비자라기보다는 남성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매혹적인 대상으로 등장한다.

게임 광고 속의 여성들은 주인공이 아니고, 소비자가 아니다. 마치 모터쇼의 섹시한 레이싱 모델 같다. 게임을 소유하는 것이 곧 그 여성을 소유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리고 여성에게 느끼는 매혹과 이끌림을 게임에 전이시킨다.

남성성 판타지

한편 최근 발매한 서양 제작사들의 게임은 성상품화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러나 그것이 서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남성성 표출의 다른 방식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 게임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하는 건 이 부분이다. 대상화된 여체가 아닌 힘과 권력과 같은 남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이상적인 남성성 판타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유혹적인 여성 인물에게 매혹을 느끼지만 이상적인 남성 인물에게도 다른 맥락의 매혹을 느낀다. 우리의 원초적인 욕망에는 성적 욕구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표출하고 자신감을 얻고자 하는 인정 욕구 역시 존재한다. 많은 서구 게임이 광고나 타이틀에서 (대부분 남성인)주인공, 혹은 주연 캐릭터를 앞세운다.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주인공 B.J. 블라즈코윅즈는 강인한 턱과 넓은 어깨를 가진, 그야말로 ‘상남자’ 같은 모습으로 게임 타이틀과 트레일러에 등장한다. <폴아웃> 시리즈 역시 시리즈의 상징인 파워아머를 강조하고, 무장한 팩션 전투원(BOS 팔라딘이나 NCR 레인저 등)을 내세우머 홍보한다. <위쳐3>는 게롤트가,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은 노르드족 근육질의 남성으로 설정된 주인공 도바킨이, <파크라이> 시리즈에서는 페이건 민이나 조셉 시드, 바스 몬테네그로와 같이 카리스마 있는 남성 악역들이 표지 중앙을 차지한다. <매스 이펙트> 시리즈도 남성 버전의 셰퍼드 소령이 트릴로지 타이틀을 장식한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기꺼이 이입할만한 강하고 마초적인 남성, 이상적 존재로 그려진다. 자신의 강함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무기와 능력, 권력을 한껏 과시하며 위엄을 뽐낸다. 이들에게는 섬세한 이목구비나 불필요하게 부각되는 특정 신체부위 같은 것이 필수가 아니다. 즉 게임 광고 속 여성이 욕망의 대상일 때 남성은 선망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게임 광고는 늘 남성중심적으로 이루어졌다. 남성을 예상 소비자로 두고 남성의 욕구를 반영한, 남성을 위한 상품으로 홍보해온 것이다. 여성은 그 과정에서 더욱 효과적인 광고를 위한 장치로 이용됐다.

광고는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지만, 상품 그 자체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광고는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산업이 소비자로 어떤 이들을 상정하는지, 상품의 어떤 점을 강조하는지, 더 나아가 당시의 사회상까지 읽어낼 수 있다. 게임 광고가 우리에게 보내왔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것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남자들의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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