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테크유감: 블록체인과 트래비스 캘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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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테크유감: 블록체인과 트래비스 캘러닉

도명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자 없는 블록체인 세계

전 세계 블록체인 커뮤니티의 여성 비율이 9%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블록체인을 인류의 다음 정거장이라 여기는 업계 분위기 탓에, 당장 저쪽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한 해였다. 작년만 해도 VR이나 AI에서 ‘미래를 봤다!’고 외치던 인재들이, 올해는 블록체인 업계로 넘어가 한 자리씩 꿰차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역시 미래는 태세전환에 능한 자들의 것이다.

그런데 이 업계, 정말 여자가 없다. IT 업계 자체가 남초집단이긴 하지만 그것을 고려한다 해도, 여태 만나본 블록체인 투자자와 창업가가 모두 남자였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모수가 적거나, 피해 의식이거나, 뭐 기분 탓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블록체인 생태계 지도라는 걸 펼쳐놓고 지금까지 관련 업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암호 화폐 거래소들을 살펴봤다. 14개 거래소 대표, 전원 남성. 블록체인 투자사 쪽은 어떨까. 홈페이지가 확인되는 투자사의 대표 파트너, 전원 남성. 돈을 벌고, 돈을 대는 기업의 최종 결정권자들이 모두 남성인 세계.

바깥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10월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9% 미만이다. 이 중에서도 개발자의 비율은 훨씬 낮다. 다수의 여성이 홍보, 마케팅 직무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IT 업계 전체가 그렇다. 블록체인 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뾰족한 해답을 찾기도 어렵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다만 뭐라도 해보려는 기업도 분명히 있다. 뉴질랜드의 블록체인 기업인 센트럴리티(Centrality)는 여성 개발자 채용을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련 기준을 채용 과정에 넣었다.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는 리더십의 33%를 여성이 맡을 것을 규정으로 정했다. 일찍이 투자를 시작한 해외 블록체인 기업들은, 다양성을 양분으로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갈 것이다.

요새 국내 블록체인 기업이나 투자사가 해외 컨퍼런스에 참석하면 엄청난 관심을 받는다고 한다. ‘김치프리미엄’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뜨거운 코인 열풍을 이끈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덕분이다. ‘주목받을 수 있을 때 멋있는 거나 먼저 하지’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코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가 ‘칙칙한 코인판에 여성 유저들을 끌어모으는 방법’이라는 블록체인 서비스 홍보글을 봤다. 그만 알아보자, 싶었다.

‘아는 IT 형님’ 트래비스 캘러닉 

지난 10월 성희롱과 인종차별 문제로 대표직을 사임한 우버의 전 대표 트래비스 캘러닉이 한국에서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아는 형님>이라는 프로그램이 싫다. 불법을 저지른 남자 연예인들의 재기 발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들춰내는데, 서로 킬킬대고 놀리고 나면 그게 또 아무렇지 않은 게 되어버리는 점도 싫다.

그리고 언젠가 업계 전체가 <아는 형님>을 찍고 있나 싶었던 적이 있다. 우버에서 쫓겨난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 전 대표의 새 소식이 들려오면서부터다. 트래비스 캘러닉은 2017년 성희롱과 인종차별 문제로 우버 대표직을 사임했다. 2014년 한국 출장 당시, 그가 룸살롱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추가 폭로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17일 한국에 들어와 극비리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고 한다(100명이 넘게 참석했다는데 어느 부분이 극비리인지는 모르겠다). 캘러닉이 새로 들고 온 아이템은 ‘공유 주방(Cloud Kitchen)’이다. 마치 클라우드 서버를 빌려주듯, 레스토랑에 대규모 주방과 요리사를 빌려준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공유 오피스와 배달업을 결합한 모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왜 한국인가?’라는 질문에 공식적으로는 한국의 배달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좀 더 사적으로는 그가 LA에서 한인 대상으로 SAT 학원을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친숙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뉴스가 뜬 이후 몇몇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의 빠른 실행력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칭찬하는 글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캘러닉의 성추문 문제는 작은 에피소드 중 하나로 축소됐다. 누군가는 ‘캘러닉의 한국 트라우마 극복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언론도 다를 바 없었다. 한 매체는 그의 수많은 실패를 나열하고, 그 끝에 우버 대표 사임 건을 달아놓았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궁극의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논조여서 불쾌했다.

사업의 성패 여부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시작만큼은 참 화려하다. 공유오피스와 배달 쪽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전 우버 대표가 직접 한국에 와서 창업을 한다고 했으니, 돈 대고 싶다는 투자사들도 줄을 설 것이다(투자가 필요 없겠지만).

서비스가 잘돼서 그가 한국에서 번 돈, 한국에 투자한다고 하면 창업계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아는 IT 형님’을 두둔하는 남초 창업계의 분위기가 왜 이리 거북할까. 아마도 내가 ‘남자가 큰 일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아버지에게서부터 듣고 자란 한국 여성이기 때문인가보다.

그 밖의 테크 동향

사내 성추행 은폐 반발, 전 세계 구글러 동맹 파업

11월 1일 11시 10분, 전 세계 구글 40여 개 지사 1만7천여명의 직원들이 동맹 파업했다. 구글이 앤디 루빈 전 수석부사장의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고, 거액의 퇴직금까지 챙겨줬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그 시발점이 됐다. 파업의 공식명은 ‘구글 워크아웃(Google Walkout)’. 싱가포르에서 시작한 이번 파업에는 미국 마운틴뷰 본사와 베를린, 취리히, 도쿄 지사 등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이 소식이 국내에도 전해져 오자 ‘한국 패치된 구글코리아는 이번에도 쏙 빠졌다’는 조롱이 잇따랐다. 그런데 사실 구글코리아 내부에서도 소규모 인원이 모여 이번 파업의 의미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긴 했다고 한다.

‘왜 구글코리아만 빠졌나'보다는 ‘왜 구글싱가포르에서 시작했나'를 살펴보는 게 더 생산적인 것 같다. 이번 운동은 싱가포르의 여성 엔지니어 집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싱가포르는 구글의 아시아 총괄 법인과 데이터센터가 있는 나라다. 엔지니어 수가 많은 지사인 만큼 자연스레 여성 엔지니어의 수도 늘어났을 것이다. 머릿수는 곧 힘이다. 여기에 아시아 허브라는 특성상 다양한 인종과 국가의 인재가 모이게 되면서, 인권에 대해 여러 논의가 오갈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니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는 구글싱가포르 직원분이 계신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궁금하다.

美 벤처 투자, 올해도 여성 창업가 몫은 2.2%뿐

지난 4일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미국 전체 벤처 투자 중 여성 창업가에게 돌아간 몫은 단 2.2%다. 이는 작년과 정확히 똑같은 수치다. 올 한 해 동안의 미국 벤처투자 규모는 총 967억 달러(한화 108조3천억 원)이며, 올해 말에는 1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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