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민낯: 3. 잡지 한 권 속의 사람들 - 마감,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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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의 민낯: 3. 잡지 한 권 속의 사람들 - 마감, 그리고 사람들

김도민

마감

작성된 원고는 에디터와 그가 만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지난한 취재 과정의 결과물이자, 마감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준비물이다. 기획 회의와 콘티, 각종 섭외 업무로 초반을 달렸다면, 촬영은 중반, 원고와 마감 업무는 후반전에 속한다. 여기서 에디터는 한번 더 업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레이아웃, 교정지, 교열 언니

우선 그동안 모아온 비주얼 자료와 작성한 원고를 보기 좋게 지면에 레이아웃한다. 이는 편집 디자이너의 몫이다. 물론 에디터와 디자이너, 편집장의 마음에 들 때 까지 크고 작은 수정을 계속한다. 완성된 레이아웃은 컬러프린트로 출력한다. 이 출력물은 ‘교정지’라고 부른다. 교정지엔 에디터가 발견하지 못한 오탈자와 잘못 쓰인 표기가 있기 마련. 정확한 정보 전달과 이해를 위해 이 과정에 ‘빨간 펜 선생님’, 교정자가 등장한다. 에디터가 교정지를 읽고, 교정자가 다시 읽는다. 교정지가 저장된 인디자인 파일에 수정 사항을 대치해줄 교열자가 그 교정지를 받는다. 에디터와 교정, 교열자 셋은 교정지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이 과정을 평균 3번 반복한다. 교정자와 교열자는 마감 기간 동안 출근하는 프리랜서로, 흔히 ‘교정 언니’로 불린다. 꼼꼼하게 확인한 교정지는 편집장에게 간다. 편집장은 마지막으로 원고는 물론, 리터칭 후 삽입된 화보 사진의 머리카락이 삐뚤어졌는지 까지 최종 점검한 뒤 ‘OK’사인을 준다. 흔히 마감에서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분주한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이 과정까지다.

출력

제한된 기간 내에 많은 에디터가 한정된 인원의 디자이너와 교열, 교정자들과 수 차례 소통하다 보면 사무실은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정지가 ‘OK’가 난 후부터는 적막이 흐르는, ‘기다림’의 마감이 시작된다. 바로 최종 교정지를 실제 잡지에 쓰이는 종이에 맞게 출력한 샘플을 가져오는 ‘인쇄소 팀장님’을 기다리면서 부터다. OK 교정지가 어느정도 쌓이면 한꺼번에 출력하고, 인쇄소 담당자가 출력물을 직접 들고 온다. 이 때 육안으로 확인한 출력물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화보의 컬러 톤과 인쇄물이 맞지 않거나 흰색 제품이 배경 색과 맞물려 잘 보이지 않는 경우 등) 몇 번씩 재출력을 보낸다. 그렇게 출력물을 기다리다 보면 새벽을 지나 푸르스름한 이른 아침에 사무실을 나오는 일도 다반사. 앞선 모든 과정과 OK교정지까지 속도 1위를 달리고 있어도 출력물에서 발목이 잡히면 ‘최종 퇴실자’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는 말이다. 긴 기다림의 시간 동안 다음호 기획안을 미리 쓰면 되지 않겠냐 싶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에디터에겐 달콤한 휴식이 필요한 바, 그동안 보지 못한 미드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몰아 보기도 하고, 사무실 근처에서 자극적인 야식을 즐기기도 한다. 혹자는 ‘역시 너네 업계는 ‘프리’하구나’라 말하지만, 할 일을 마치고 새벽녘까지 퇴근할 수 없는 직장인에게 이정도는 약소한 보상정도다.

모든 출력물이 OK되면 1~2명의 에디터가 남아 확정된 목차에 맞게 출력물에 매직으로 커다랗게 페이지 순서를 매긴다. 기다리고 있던 인쇄소 팀장님이 수거해 가면 그 다음은 진짜 인쇄 공장 행, 편집부의 업무는 쫑이다. 한 드라마에서 에디터가 인쇄 공장에 뛰어 들어가 기사를 삭제하는 장면은? 솔직히 뻥이다! 수거해간 출력물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다. 몇일 쉬고 나면, 다시 기획 시작이다.

사람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월급쟁이 에디터는 그동안 ‘너는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맨날 새벽에 퇴근하냐는’ 질문을 받아왔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에 패션에 관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글과 사진을 채워내는 과정은 분명 다른 업계에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니 어쩌면 남들과 다를 바 ‘있는’ 직업이기도 하겠다. 포토그래퍼, 모델,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 편집 디자이너, 리바이저와 오퍼레이터까지 잡지 한 권엔 에디터가 만난 크리에이터의 재능이 모여있다. 정해진 양식도, 규칙도 없이 하얀 종이에 매 달 무언가를 채워가는 일이기에 크리에이터들은 대체로 주관과 개성이 뚜렷한 게 사실이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은 ‘너네 업계 사람들은 진짜 기가 세겠다. 너처럼 예민하겠다”다. 대체로 맞고, 때로는 틀리다.

포토그래퍼는 에디터보다 강한 에너지로 촬영 현장을 지휘하기도 한다. 자신의 톤을 추구하는 포토그래퍼와 화보의 주제를 명심해야 하는 에디터 간에 미묘한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그만큼 포토그래퍼는 에디터와 절친하며 막역한 사이기도 하다.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에디터의 든든한 친구다. 각종 도구와 헤어 & 메이크업 제품들을 들고 촬영장을 누비기에 항상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그들은 모델과 가장 가깝게, 오랜 시간 소통하는 스태프다. 모델의 컨디션과 다른 스태프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현장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주역이기도 하다. 모델이 아닌 특별한 셀러브리티일 경우, 이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닫는다.

모델은 외모에서 풍기는 이질감과는 반대로 남들과 똑같은 직장인이자 패션계의 스태프다. 편집장의 에디터 시절을 함께한 연차 높은 모델은 그만큼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교복을 입고 스튜디오에 등장하는 ‘꼬꼬마’ 모델은 나이가 가늠 안될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인다. 참고로 그들은 대체로 가리지 않고 많이, 참 잘 먹는다. 어떤 모델은 특유의 외모나 포즈로 많은 패션인의 ‘뮤즈’가 되기도 한다.

편집 디자이너는 때때로 까칠하다. 에디터가 늦게 전달한 원고와 비주얼을 더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작업할 뿐더러, 프로그램에 무지한 컴맹 에디터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야 하니 그럴 수 밖에. 교정-교열 언니가 출근할 때면 몇 에디터들은 저승사자를 본 것 처럼 긴장한다. 건네야 할 원고는 아직 쓰지 못했는데, 그들의 출몰(?)은 곧 마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니까. 일반적인 편집장은 영화 속 미란다와 버금가게 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내부로는 편집부의 수장이자, 외부로는 광고주와 브랜드를 쉴 새 없이 만나며 ‘영업’도 불사한다.

작은 업계에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문도 빠르다. 업계 출신으로 잘 알려진 누군가는 드라마 뺨 치는 스토리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회사 동료의 이직 소식을 바깥에서 먼저 듣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업계지만 어떤 곳 보다 예의를 중시하며 태도에 조심스런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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