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탈혼기 9. 기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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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탈혼기 9. 기분의 문제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건강을 되찾자마자 나는 틈날때마다 간략한 사정을 정리해 인터넷, 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한 상담을 받았다. 나에게는 답변서를 내기까지 약 한 달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가능한 많은 곳에 연락을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애썼다. 약 일주일 동안 나는 이런 저런 변호사 사무실에 내 개인정보를 뿌리고 다녔다. 나와 그의 나이, 혼인 기간, 자녀의 나이와 양육기간을 비롯해 지금까지 써온 이야기 중 굵직한 사건 몇 가지,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이 글에 포함되지 못했던 몇 가지 일을 적었다. 내가 주로 강조한 것은 그의 폭력성과 경제력 없음,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내게 저질렀던 것들이었다. 

곧 답이 오기 시작했다. 빠르면 몇 시간 내로 늦으면 하루 이틀 내로. 나는 그들이 알려준 내용을 차곡 차곡 정리했다. 그들의 조금씩 답변은 달랐지만 대체로 겹치는 맥락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의 내용과 증거가 확실하다면 그를 유책배우자라 부를 수 있으며 내가 그로부터 얼마의 위자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알려준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1. B의 거짓말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 자료
  2. 별거 기간을 증명할 자료
  3. 혼인 기간 동안 내가 벌어들인 소득 증빙
  4. B의 폭력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 자료

나는 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빅브라더의 세상이라며 비꼬았지만 이번만은 그 사실에 감사했다. 그가 자신의 돈으로 샀다고 주장한 물건들의 상당수는 내 카드 내역에 남아있는 것들이었으며, 내 통장에는 그의 부모가 준 돈이라고는 두 번 정도 생일에 받은 용돈 외에는 찍힌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그와 내가 나눈 메신저 대화와 문자 메시지는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심지어 그는 어느 날 나와 다툰 뒤, 내게 “미안해. 다시는 (물건을) 던지지 않을게.” 라는 문자를 보낸 적도 있었다. 어찌나 이 세상이 사람의 흔적을 찾기 쉬웠던지 나는 그의 아이디 검색 몇 번으로 그동안 그가 몇 시간동안 몇 번의 게임을 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아, 물론 유리지갑인 나의 수입이 투명했음은 물론이다. 여기까지 모든 일은 명확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하지만 끝내 나는 억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그들이 예상하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3000만 원이 최대라고 했다. 그것도 유책 배우자와 10년 이상을 함께 살면서, 유책 배우자가 외도와 물리적인 폭력 등을 일삼았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겨우 그와 2년 정도를 살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들을 다 보았을 그들이 보기에, 그저 귀여운 수준의 폭력을 겪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위자료는 끽해야 1000만 원에서 500만 원 선이었다. 

그의 수입이 적거나 없다는 점도 내가 받을 수 있는 위자료를 줄이는 것에 한 몫 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은 내 고통이 고작 그 정도 값밖에 안 된다는 것이 분통이 터졌다.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 자발적으로 낙오한 B를 배려해, 내 고통의 값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법이 그렇다는 데 어쩌겠는가. 분통이 터지는 일은 그 뿐이 아니었다. 나는 당장 적어도 300만 원에서 500만 원 가량의 변호사 수임료를 써야 했다.

기분의 문제

며칠 뒤 나는 휴가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 투어를 시작했다. 얼마 없는 휴가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담 일정을 알차게 짜야 했다. 다행히 이혼을 전문으로 다룬다는 변호사 사무실과 로펌은 대부분 내가 사는 도시의 가정 법원이 있는 곳 근처에 밀집해 있었다. 나는 차근차근 상담 일정을 맞췄다. 두 곳은 유료 상담이었고 세 곳은 무료 상담이었다. 유료 상담은 대체로 5에서 1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요구했다. 유료 상담을 한 곳들은 이후 사건을 수임하게 될 시 상담료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들의 대답은 대체로 온라인을 통해 했던 상담과 비슷했다. 다들 내가 알아보고 온 것에서 크게 다름없는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 모두 승소를 확신했다. 사실, 아마도 소송이 끝나기 전에 합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의 소액 위자료 재산분할 소송은 별 것이 아니라며 말이다. 어느 변호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 금액으로 소송을 하신다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는 기분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의뢰인 분께서 정말 이 돈이 필요해서 보다는 말이에요.

그렇다. 기분 문제였다. 그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말이다.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변호사와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 변호사 말대로 그 기분 문제를 위해 진행하는 소송이다. 그 문제를 위해 나는 그 정도 수임료를 낼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중간 정도의 수임료를 말한 변호사와 계약했다. 상담 내내 명쾌한 느낌이었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경험이 많고 명쾌한 느낌을 주었던 변호사를 본 것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들은 내 사건을 그 변호사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변호사에게 배정해 주었다.

상처를 후벼파는 일

사무장은 메신저로 내게 사건을 맡을 변호사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당연히 상담을 진행한 변호사가 사건을 맡을 줄로 알고 있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내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젊은 여자 변호사였다. 나는 차라리 안심하기로 했다. 그는 나와 비슷한 또래이고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이니 나를 잘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내게 반소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과 증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는 B와 만났던 시간부터 그 괴로웠던 시간들과 지금까지의 일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여 모두 적었다. 그 때에 맞춘 증거 자료는 모두 시간 순으로 문서에 표시해 놓았다. 점심시간에는 분주히 경찰이 출동했던 내역이나 병원에 갔던 것과 같은 것을 증명할 서류를 받으러 다녔다. 전화기를 뒤져 그 동안 쌓아뒀던 녹취 증거도 모아 보냈다. 나는 이 시기를 소송 중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아직 상처에 붙은 딱지도 제대로 굳지 않았는데 그 상처를 들춰내서 다시 후벼내는 기분이었다. 특히 녹취를 다시 듣는 일은 정말 지옥 같아 몇 번을 멈춰야 했다. 퇴근 후 집에 와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본 뒤 나는 컴퓨터를 켜고 그때의 일들을 하나 둘씩 상기했다.

결국 서류 작업을 마무리 할 때 즈음 나는 수년 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동안 갈고 닦은 업무 능력을 활용해 최대한 잘 정리 된 자료를 사무장에게 전달했다. 변호사는 내가 보낸 자료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보낸 몇 시간 분량의 녹취 중 B가 위자료를 지급하겠다는 언급을 했던 부분만 증거로 사용하자고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나는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도시의 밤이 그렇듯 수많은 간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그 간판들이 다른 동네와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반듯하고 조금 더 간결했다는 것뿐이다. 나는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이 곳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다. 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는 동네일 뿐.

‘정말 많구나.’

많았다. 저 많은 사무소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건들이 있다는 뜻 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변에는 그 누구도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아니 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냥 잊고 있어

곧 나의 담당 변호사는 내게 반소장의 내용을 모두 작업했다며 문서를 보내왔다. 놀랍도록 내가 작업한 내용과 차이가 없었다. J는 가사 사건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사건 당사자이므로 내가 쓴 내용과 변호사가 쓴 내용의 차이가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잘 정리해 줬으니까 깔끔하게 빨리 끝났지. 필요한 내용 잘 적혀있는 것 같아. 걱정하지 말고 진행해. 그리고 다시 연락 오기 전까지는 이 일은 그냥 잊고 있어. 알았지?”
“... 고마워.”

J의 말처럼 이 일은 다시 연락 오기 전까지 그냥 잊고 있는 편이 나았다. 나는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왔다. B에 대한 것은 조금도 언급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곧 나는 이 일을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2주 뒤, 조정기일이 잡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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