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멘토'는 남성의 전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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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멘토'는 남성의 전유물인가

해일

친한 친구는 고등학생 때 심한 따돌림을 겪은 적이 있다. 그는 무거워 터질 것 같은 책가방에도 혜민스님 책을 항상 넣어 다녔다. 그 후, 주변 다른 친구들이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그는 항상 가방 속 혜민스님 책을 꺼내며 위로를 건넸다. 파워 트위터리안, 베스트셀러 저자 등 혜민스님을 부르는 수식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힐링 멘토’다.

사실 이전에도 이른바 '혜민식 힐링'이 부질없고 근본 없다는 비판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그의 처방이 부질없음을 넘어 기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엄마가 새벽에 놀아주세요'

2012년, ‘새벽에 놀아주세요’ 트윗을 되돌아보자. 

 직장과 육아의 짐을 한 몸에 지고,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고 살면서도 아이와 놀아 주지 못해 미안한 워킹맘의 고민에 혜민이 제시한 해법은 다름 아닌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을 안 자면 되는 것이다

어찌 됐건 논란이 커지자 그는 여러 차례 사과했다. 

제 삶이 알차지 못해 거품을 물어 죄송합니다

 자기 삶의 내용이 풍요롭지 못하면 정치 이야기나 연예인 이야기밖에 할 이야기가 없게 됩니다.

정치는 누군가의 삶이 걸려 있는 주제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 벌이는 삶의 투쟁을 ‘남 일에 거품 물기’로 격하시켰다. 게다가 스님, 힐링 멘토라는 사람이 애초에 하는 일이 남 일 카운슬링 아닙니까. 그리고 스님, 연예인 이야기가 뭐 어때서요. 

이번에도 논란이 커지자 수차례 사과했다.

그래도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냥 적당히 좋은 말씀을 하시는, 우리 엄마나 내 친구가 좋아하는 스님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라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큰 불편 없이 잘 살았잖아요?”

와중에 책 광고 링크가 도드라진다. 

혜민 스님의 책 속 문구다. 문제는 이 글이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 때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 글은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을 ‘바람을 넣어 조종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별 문제가 아닌 것을 깊게 생각할 수록 불편해질 뿐이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아무말’이었다. 

당시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일상의 위협으로 존재하는 폭력 및 성범죄의 공포를 자각한 여성들에게 있어, 이 글은 ‘그것을 폭력이라 자각하면 불편하다’ 는 뜻으로 들릴 여지가 있었고 곧바로 여성들의 분노가 쇄도했다. 혜민스님은 논란이 거세지자 페이스북에서 해당 글을 삭제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사람들

자기 삶에 즐거운 자극 주기 싫은 사람도 있을까. 봉사활동, 외국어, 운동, 뮤지컬도 여유가 있어야 배우고 즐긴다. 보고 싶은 뮤지컬 앞에서 티켓 값에 절망하는 사람들,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조차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하다. 혜민스님 말씀이라면 일단 믿고 따르는 엄마는 아마도 그의 ‘힐링 멘토링’을 들으면 ‘그래, 내 삶에 즐거운 자극이 없어서 그렇지’ 하고 봉사활동도 알아보고 영어 학원도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빠와 남동생의 밥을 차리느라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일생을 남편에게 맞다가 쫓겨 나온 아내에게 '기대가 클수록 인간관계는 어긋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가 자기 독자들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스님이야말로 멈추어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기를 바란다. 멈추면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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