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생각하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김쿠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남자친구가 택시를 잡아 태워줬고, 문까지 닫아줬다. 

내일 보자.

그렇게 일상적인 인사를 주고받았다. 남자친구의 집에서부터 내 집까지 약 10분 남짓한 거리였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고, 늦게까지 데이트하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그 날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안일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 얄팍한 기대는 완전히 부서졌다.

10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택시 기사는 과속과 급정거, 급커브를 반복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차를 타고 가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주변의 차들과 사고가 날 뻔도 했고, 그럴 때마다 과도한 욕설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그 뿐이면 다행이었을 텐데, “남자친구랑 늦게까지 뭐 하느라 이제 집에 들어가?”로 시작하는 각종 성희롱이 이어졌다. 백미러를 통해 힐끗힐끗 나를 살펴보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는 ‘무서워서’ 택시 기사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해야 했다.

그 날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당시 살던 집은 산에 위치한 학교 근처의 작은 원룸촌이었고, 초입에 24시간 편의점이 위치해 있었다. 택시 기사들에게 집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 일상적으로 편의점 앞에서 내렸기에 그 날도 그 곳에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당연한 요구에 돌아온 대답과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러스트 이민
아가씨 집 여기 아니잖아. 집 어디야? 집에 내려줄게.

승차 거부를 당한 적은 있어도, ‘하차’를 거부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편의점에서 살 것이 있다고 한참을 실랑이 한 끝에야 겨우 편의점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내가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고르는 척하며 바깥을 살폈을 때, 그 택시는 나를 내려준 그 곳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시간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편의점 내부를 돌아다닌 것만 약 십 여 분. 그 때까지도 택시는 그 곳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결국 편의점 알바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 모습을 본 후에야 택시는 사라졌고, 택시가 사라진 후에도 몇 분 동안 편의점 안에서 떨다가 집으로 달려갔다. 나는 집에 도착한 후에도 혹시나 그 택시 기사가 지켜보고 있을까 무서워 방의 불도 켜지 못한 채 한참을 떨었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 나는 한동안 밤에 혼자서 택시를 타지 못했다. 한낮에도 택시 기사와 단둘이 차 안에 있는 것을 힘들어 했다. 물론 내가 특이한 경험을 한 것일 수 있다. 이런 경험이 분명 ‘흔한’ 것은 아닐 테다. 흔해서는 안 되는 경험이니까. 하지만 정도가 다르면 달랐지, 여성과 같은 대부분의 약자들은 택시를 탈 때 승차 거부는 기본이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 승객임에도 불구하고 감정 노동을 강요당하고, 각종 성희롱에도 웃어 넘겨야 한다. 차량이라는 작고 닫힌 공간 속에서 핸들을 쥐고 있는 건 택시 기사이기 때문에.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질 일들에 타인이 개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택시 안의 권력

내가 겪은 ‘보통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나는 한 때 학교에 택시를 타고 다닌 적이 있다. 학교 공대 건물이 구석지고 먼 곳에 위치한 데다 학교 셔틀을 타기가 힘들어 놓치면 백 퍼센트 지각 확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주세요.

한 마디에 나는 ‘이대녀’ 타이틀을 얻었고, 그 때문에 이십 분도 채 되지 않는 탑승 시간 동안 각종 정제되지 않은 혐오언설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공대 건물이 구석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때로는 학교에서 돌아나가는 비용을 추가로 요구 받기도 했다. 종종 여성혐오와 이대혐오로 점철된 말에 내가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도 흔하게 들었던 욕설이 따라왔다.

일러스트 이민
이대생이라서 택시 기사를 얕잡아보는 거냐. 박히면 꼼짝도 못할 년이.

공대 건물까지 무사히 도착하면 다행이었고, 많은 경우 공대는 멀고 돌아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중간에 하차해야 했다. ‘포관’이라고 불리는 포스코관 앞에서 주로 내려야 했는데, 그 곳에서 공대까지는 산을 타 넘어야 했기에 지각을 면하러 탄 택시가 의미가 없었다. 왜 공대까지 가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냐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데 왜 그런 요구도 당당하게 하지 못하냐고? 답은 하나다. 무서워서.

학교 재학 당시 주로 학교 근처에 거주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광화문이나 시청 근처를 지나갈 일이 많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였고, 졸업 전에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까지 보았기에 각종 시위 때문에 차가 막히거나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몇몇 택시 기사들은 시위대를 향해서 증오 섞인 욕설들을 거르지 않고 내뱉었고,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안 그래?” 같은 질문과 함께 본인의 그런 가치관에 동의할 것을 강요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웃으며 동조하는 것.’ 나에게 ‘택시를 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동일한 요금,
동일하지 않은 서비스,
여성이기 때문에

일러스트 이민

 택시의 문제는 결국 동일한 요금을 내고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음에 기인한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남성들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것이 과연 택시 기사들의 장시간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장시간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하는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 역시 사회적 약자를 향해 각종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아도 면죄부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이 문제를 단순히 택시 기사들의 노동 강도의 문제로, 근무 환경의 문제로 해석해도 되는가? 본인이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불안에 떨면서, 혹은 불편을 겪으면서도 꾸역꾸역 참으며 택시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말하면 ‘일부’ 남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겠지. “그건 ‘일부’ 택시 기사들의 문제가 아닌가요? 전체를 싸잡아서 일반화하고, 모든 택시 기사들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면 안 되죠.” 맞다. 그렇지만 내가 방금 잡아서 탄 택시의 핸들을 잡고 있는 기사가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수 없이 많은 일들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확률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택시 타는 게 무섭고 불편하면 택시를 안 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소리를 할 거라면 내가 차를 뽑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한 푼이라도 대 주고 이야기하자. 살다 보면 버스와 지하철로 커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정말로 택시를 한 번도 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보시길.

사람답게 택시 타게 해 주시죠

앞서 말한 것들은 내가 택시를 타면서 겪은 일들의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정말로 택시 기사들의 ‘친절’을 바랄까? 친절한 택시 기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왜냐면 나는 여성으로 패싱되는 20대의 여성이니까. 하이힐을 신으면 하이힐을 신었다고, 짧은 치마를 입으면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긴 치마를 입으면 긴 치마를 입었다고, 숏컷을 하면 머리가 짧다고, 머리가 길면 머리가 길다고, 화장을 하면 화장을 했다고, 화장을 안 하면 화장을 안 했다고 ‘고나리질’이 따라오는 것이 여성이니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은 여성의 얼굴과 몸, 언행을 두고 온갖 품평과 고나리질을 해도 되는 곳이니까. 내가 운전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 운전 전문 학원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을 때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아가씨가 운전할 생각 말고, 남자친구가 태워주는 차에나 타는 게 최고야.

뭐 이 정도야 이제는 ‘애교’로 넘어갈 정도의 ‘면역’을 가지게 되었다. 슬픈 일이지만,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려면 ‘택시 기사의 불쾌한 언행을 참고 웃으며 넘어가기 자격증’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근에 나는 숏컷으로 머리를 잘랐다. 택시를 타면 “아가씨도 뭐 페미니즘인가 뭔가 하는 쓰잘떼기 없는 거 한다고 그러냐.”부터 “그렇게 머리 자르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혹시 뭐 동성애 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같은 소리 듣는다.

일러스트 이민
내 딸도 탈코르셋인가 뭔가 한다고 머리를 빡빡 밀고 왔길래 아주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서 집에다 가둬 놨어. 여자는 그냥 남편 잘 만나서 집에서 살림이나 잘 하면 되는 거야.

이건 이주일쯤 전에 들었네. 그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내가 장시간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택시 기사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는 것인가요? 저는 그저 ‘사람’답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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