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삵의 삶 2. 내 몸으로서의 삶(1)

생각하다

암삵의 삶 2. 내 몸으로서의 삶(1)

[웹진 쪽] 위단비

일러스트레이션: 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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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삵이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닐 때면

다른 주민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았다.

 

작년에 살이 많이 빠졌다. 일 년 동안 대략 20~30kg정도 빠졌으니 꽤 극적인 변화였다. 일부러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식사량이 갑자기 줄고 자전거라는 취미가 생기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직장 동료들은 ‘살을 어떻게 뺐냐’고 물어봤다. 심지어 날 모르는 사람이 우리 팀 동료에게 저 사람 살 어떻게 뺀 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는 일부러 뺀 게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나를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사회에서 다이어트가 여성에게 필수가 된 것은 따로 말하기 어색할 정도로 이미 오래됐다. 예전엔 접근성과 인식이 좋지 않았던 다이어트약도 이제는 공공연하게 광고되고 소비된다. 이런 사회에서 다이어트를 시도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나와 같은 케이스는 흔치 않을 것이다. 살이 빠지기 전의 내 몸을 난 참 좋아했다. 곡선적이고 부드러운 선이 좋았다. 사람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나는 내 몸을 받아들이고 살았다. 옷을 사거나 체형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조금 불편했지만.

일러스트 킨지

낯선 몸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더 좋은 지금의 몸이 나는 조금 낯설다. 물론 처음에는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났다. 예뻐졌다는 말들도 듣기 좋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옷을 살 때 조금 더 편한 것 빼고는 좋은 것이 별로 없다. 평소에는 내가 똑같이 나로 느껴지는데, 가끔 예전 사진을 보거나 거울을 보면 새삼 낯선 느낌이 든다. 예전의 둥글고 부드러운 인상과 지금의 직선적이고 탄력 없는 몸.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늘 어떤 경각심을 가지고 살게 됐다. 만약에 내가 모종의 기대를 하고 일부러 이만큼 살을 뺐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고를 들인 만큼 경각심은 더욱 커지고 좋은 느낌은 더욱 줄어들 것 같아서.

통통했던 나의 몸도 지금의 내 몸도 다 내 삶의 반영이다. 그때는 어떤 부분은 밝았고 어떤 부분은 목말랐으며 일부는 고립되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어떤 부분은 무력해졌고 어떤 부분은 내가 만들어가게 됐으며 조금은 더 독립적으로 삶을 살게 되었다. 언젠가 내 삶을 살아가는 느낌이 필요하다 싶어졌을 때 일단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먹고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먹는 것과 움직임들은 나의 삶을 나타낸다.

그놈의 '자기관리'

문제는 ‘바람직한 삶’, ‘바람직한 몸’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 있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처음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둔 건 열 살 무렵이었다. 살이 찌기 시작한 그때부터 어른들은 내게 한 마디씩 건넸다. 어릴 땐 예뻤는데, 살을 빼야겠다, 등등……. 나의 몸은 열 살 무렵에 이미 바람직하지 않은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바람직한 몸과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우리는 자기관리를 한다고 말한다. 자기관리. ‘관리’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어떤 일의 사무를 맡아 처리함.
  2. 시설이나 물건의 유지, 개량 따위의 일을 맡아 함.
  3. 사람을 통제하고 지휘하며 감독함.
  4. 사람의 몸이나 동식물 따위를 보살펴 돌봄.

이 중 자기관리에 포함되는 ‘관리’는 4번을 의미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물이나 사무, 군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자기관리는 3번의 의미로 자신을 ‘관리’한다는 걸 의미한다. 3번의 의미로 자신을 관리하더라도 4번의 목적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조차도 배제된 채, 사회에서 통용되는 바람직한 몸과 바람직한 삶을 목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지휘, 감독하는 것을 흔히 ‘자기관리’라고 부른다.

사회적 기준의 내면화. 내면화된 기준에 맞춰 본인을 통제하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분까지도.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지만 그렇기에 그 부분은 더욱 생각해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내 몸뿐 아니라 타인의 몸까지도 그렇게 바라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신체에 대한 인식은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러스트 킨지

이건 아니야,
벗어나야겠어

오랜 친구로부터 얼마 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적 매체에서 여성의 골반을 강조하는 내용만 보다 보니 본인은 남성에게는 골반이 없는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남성인 그 친구는 어릴 적 본인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에 무척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전했다. 그러나 나는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몸을 조각조각 나눠 평가하는 것에 익숙한 사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보이는 나의 몸을 외부의 시선에 맞춰 나누고 구분하지 않고 나의 삶의 반영으로 생각하는 것. 내 삶을 살기 위한 첫 번째 시도였다.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 열 살 무렵부터 뒤집어쓴 바람직하지 못한 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삶과 몸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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