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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항하고 깨뜨린다

5월26일, 서울 이태원에서 퀴어에 의한, 퀴어를 위한, 새로운 퀴어 축제가 열린다. 제 1회 서울드랙퍼레이드다. 드랙퍼레이드라는 이름이 낯설다. 정체가 뭘까? 한국 최대 성소수자 축제인 퀴어문화축제와는 다른 점이 무엇일까? 서울드랙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는 히지 양씨에게 물었다.

사진 김지연

드랙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자. 넷플릭스에서 ‘루폴의 드랙 레이스(Rupaul’s Drag Race)’라는 예능 시리즈를 보면, 자막에서 ‘드랙 퀸(Drag Queen)’을 ‘여장 남자’라고 번역했다.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번역이다. 드랙은 남성 퀴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다.

‘드랙’이라고 하면 코르셋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긴 머리 가발을 쓰고, 화려한 화장을 한 게이 남성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여성 입장에서는 코르셋과 하이힐은 억압의 상징이다.

드랙에 대한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드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드랙을 그렇게 일반화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퀴어나 트랜스젠더인 드랙 아티스트는 그런 정의에 들어가지 않는다. ‘남자’의 모습을 한 ‘드랙 킹(Drag King)’도 있고, 수염을 달고 머리카락을 완전히 민 드랙도 있다. 젠더 밴딩(Gender-bending)을 추구하는 소위 ‘중성적인’ 드랙도 있다.

100명이 드랙을 하면 100가지 모습이 있다고 본다. 심지어 한 사람이 하는 드랙도 그날 그날마다 차이가 있다. 서울드랙퍼레이드에서는 결코 특정한 외모에 드랙의 정의를 한정시키지 않는다. 남성적인 것이나 여성적인 것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을 고착 시키고 후퇴하게 하는 것은 서울드랙퍼레이드가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나 트랜스젠더를 조롱하거나 지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드랙’은 무엇인가?

드랙은 자신의 몸과 퍼포먼스로 사회가 억압했던 본인의 스타일과 생각, 정체성을 표현하는 엔터테인먼트다. 사람마다 패션, 코미디, 개그, 노래, 립싱크, 춤, 행위예술 등 다양한 예술장르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잘 바르지 않던 립스틱 하나만 발라도 ‘드랙’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나를 보여주는 힘과 용기

퀴어문화축제에서도 드랙 퀸들의 행진이나 무대가 많았다. 서울드랙퍼레이드는 어떤 점이 특별한가?

성소수자의 인권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서울드랙퍼레이드는 드랙이라는 주제에 좀 더 집중해보고자 한다. 시스젠더나 헤테로섹슈얼이 드랙을 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하지 말라’고 제한할 수 있는 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드랙은 퀴어 문화에서 출발했다. 특히 성소수자들의 저항의 역사와 항상 함께 존재했던 것이 드랙이다. 드랙 문화는 스톤월 항쟁(1969년 6월28일 미국 뉴욕 스톤월 인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의 단속에 맞서 싸운 사건) 등 중요한 정치적 행동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퀴어 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드랙을 소개하며 성소수자 인권 쟁취를 위해 행진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서울드랙퍼레이드의 첫 번째 의미다.

두 번째 의미는 젠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남자다운 것에 대한, 여자다운 것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을 억압하는 성차별의 수단이자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고 ‘비정상’으로 낙인 찍는 가장 흔한 수단이다. 다양한 모습의 드랙은 이를 무시하고 깨면서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표출한다.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외모에 대한 억압이 심한 사회에서는 굳이 드랙이 성소수자 이슈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드랙퍼레이드는 드랙을 통해 ‘진짜 나’를 보여주는 힘과 용기를 얻는 자리이고자 한다.

서울드랙퍼레이드는 정치적인 행사인가?

엔터테인먼트로서 존재하는 드랙 바(bar)나 드랙 쇼보다는 훨씬 정치적인 의미가 강하다. 네온사인이나 디스코볼 아래서만 존재하던 드랙 아티스트들이 햇빛 아래에서도 당당하게 자신감과 프라이드를 가지고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깃발, 플랜카드를 준비하는 참가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약 10여개 내외 단체와 참여를 조율 중이다.

서울드랙퍼레이드는 무뚝뚝한 시위가 아니라 즐거운 시위였으면 한다. 다양한 색깔의 메이크업과 의상이 모이면 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행사 당일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나?

일단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에 법을 준수하는 선에서는 제한이 없다. 예를 들면 성기 노출은 곤란하다. 물론 여성의 가슴 노출과 관련해서는 법이 좀 ‘구리다’. 남성의 유두 노출은 불법이 아닌데 여성의 유두 노출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서울드랙퍼레이드가 결코 이런 ‘정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번에는 ‘준법 시위’를 추구하고자 한다.

어떤 계기로 서울드랙퍼레이드를 주최하게 되었나?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개인적인 예술 활동을 해 오면서 생긴 네트워크로 크고 의미 있는 행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주변에서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내년에도 열릴 예정인가?

가능하다면 매년 열리면 좋을 것 같다.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 연 2회 열려도 좋지 않을까?

어떤 행사가 열릴 예정인가?

26일 오후 3시에 이태원 The LINK 바에서 출발해 해방촌 앞까지 행진을 한다. 저녁 7시부터 이태원 The LINK에서 한국인 드랙 아티스트 4명(허리케인 김치, 에리카 발렌시아가, 호소 헤일리 사탄, 로헵 문라이트)이 출연하는 1차 애프터파티가 열린다. 입장료는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일반 1만원, 드랙 8천원). 모든 수익금은 서울드랙퍼레이드의 행사자금으로 사용된다. 미성년자는 참여할 수 없다. 밤 10시30분부터는 Rabbithole Arcade Pub에서 2차 애프터파티가 열린다. 다음날 아침까지 진행되는 2차 파티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드랙 아티스트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2018.05.16 15:46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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