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에 대해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것

생각하다

청탁금지법에 대해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것

김평범

지난 2016년 7월 28일 헌법재판소가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자 모든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이 법은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 하도록 하고 있다.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으면 액수와 관계없이 처벌하고,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 의례, 부조의 목적으로 대통령령이 정한 범위(음식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내)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이 본래 뜻을 담은 약칭인 '청탁금지법'이 아니라 대부분 언론이 '김영란법'이라는 키워드를 택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어딘가 구린 냄새가 풍긴다.

물론 이 법안을 추진한 당사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이름이 법안과 더불어 지나치게 유명세를 탄 덕분에 언론에선 손쉽게 이 법을 '김영란법'이라고 키워드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영란법’이라는 모호한 명칭은 법의 성격을 가린다. 이 법안은 어디까지나 부정한 청탁을 막고 심각한 수준에 이른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개선해보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계속 '김영란법'이라고만 미디어에서 부르는 것은, 이를 통해 정보를 접할 이들에게 불친절한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합헌 결정 이후 다수 언론 보도가 주목하는 지점이 '청탁'이 아니라 접대의 액수와 그로 인해 위축될 소비 규모라는 사실도 눈여겨 볼만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일보의 전설적인 기사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이 아닐까.

2016년 5월 12일,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된 기사.
김영란법으로 인해 농어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는 게
기사의 요지다.

이같은 보도 덕분에 "기레기 밥 굶어 죽을까 그러냐"는 비아냥거림을 기자 집단 전체가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말대로 정말 청탁금지법(aka.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레기는 모두 굶어 죽을까? 반은 틀리고 그 반의 반의 반은 맞다.

반의 반의 반은 맞고

거창하게 '접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사는 어찌 보면 기자의 취재 수단 중 하나다. 경찰기자에서 산업부 기자까지, 출입처를 막론하고 취재원과 식사 한 끼 정도는 해야 친분이 쌓이고 좋은 취재 아이템을 얻기도 하면서 그 인연이 이어지는 것이 언론계에 미풍양속처럼 자리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법 시행을 앞두고 주요 언론사들은 취재비 인상을 계획하거나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밥을 얻어먹지 못하더라도 함께 먹기는 해야 하니 '더치페이'를 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다.

실제로 한 주요 일간지는 최근 기자들을 회사로 불러 모아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고 했다. 물론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한 찌라시에서는 "취재비 인상 등 없을 군소 언론사 기자들은 밥 한 끼 얻어먹기도 힘들다며 생활이 더 어려워질 거라고 울상. 기자들의 빈익빈부익부 현상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라고 주장했다.

취재비 지급은 고사하고 월급조차 밀리는 군소 언론이 차고 넘치는 상황 역시 이미 예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들이 말 그대로 '굶어죽'지는 않더라도 쉽게 식사자리를 만들지 못해 겪을 취재의 어려움은 예상해볼 수는 있겠다. 그런 점에서 반의 반의 반은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반은 틀렸다

법 시행을 앞두고 기자들이 도매금으로 쓰레기 취급당하는 상황에 억울한 것은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기자들이다. 별로 받아먹은 것도 없고, 바란 적도 없었는데 거지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의 포인트가 대부분 ‘접대의 액수’와 ‘위축될 소비’에 맞춰져 있다 보니 기자 집단은 그간 해당 액수 이상의 접대와 향응에 익숙해진 것처럼 오해를 사고 있다. 마치 매일 온갖 사람을 만나 3만원 이상의 식사를 하고, 명절 때면 굴비며 소고기 세트를 줄줄이 선물 받는 사람들인 것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 하더라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접대를 받고 민망해져서 도리어 해당 취재원과 다시 마주하기 어색하게 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취재 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원치 않는데도 강요되는 술자리가 많다. 기자는 누구와 만날 것인지를 미리 보고하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이튿날 일일이 보고하면서 매일 점심과 저녁마다 소맥과 양폭을 말아 마시는 게 일이다. 어느 날 나와 친한 한 기자는 잦은 술자리와 구토 등으로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더라는 이야기를 푸념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문 지면이나 방송이 아닌 실제 기자 커뮤니티에서는 은근히 청탁금지법을 환영하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좀 더 많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밤에 퇴근도 못하고 잡혀서 홍보팀하고 술 먹는 것도 사라지고 데스크들이 술 약속 잡아오라는 것도 사라지겠다"는 환영의 글이 다수 올라온 것을 목격했다.

또 홍보 담당자로부터 밥 몇 끼 얻어먹었던 것을 빌미로 전화를 받아 기사 한 줄 한 줄 마다 ‘이래라, 저래라’ 요구받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해당 법과 관련해서 들어본 가장 희한했던(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기자 농담'은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전날즈음 홍보 담당자와 기자 몇이 모여 '청탁금지법 전야제'를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9월 둘째, 셋째 주에는 서울 종로와 여의도 등 기자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의 고급 음식점에 스케치라도 나가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또 '법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을 형성하려고 일부러 언론사를 대상에 포함했다'는 등의 음모론 역시 현직 기자들이 술자리에서 공공연히 주고받는 농담 중 하나다. 법 시행으로 슬플 언론 관계자가 누구일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역시 이미 받을 대로 받아 온 고위 언론관계자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밥 몇 끼 못 얻어먹는 것보다도 고위 언론관계자가 직접 타격을 입는 것은 '접대 골프'라는 말이 많다.

골프 한 번에는 그린피와 캐디피, 카트비 등을 합쳐 30만원 안팎이 든다. 골프장이 접대 수요를 노려 판매해 온 '무기명 회원권'도 청탁금지법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상황에서 접대 골프 문화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

청탁금지법에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는 않겠다. 법 적용 대상이라든가 제공 가능한 식사, 선물, 경조사비의 액수 등은 시행 과정에서 다소 조정되어야 할 필요도 보인다. 화훼농가나 외식업계의 일부 타격 우려도 예상되는 바다. 법이 실제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하는 문제 역시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현직 기자로서 볼 때도 '청탁금지법'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지나치게 호들갑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법의 진짜 목적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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