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여성으로 연애하기: 3. 아시아도 이제는 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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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여성으로 연애하기: 3. 아시아도 이제는 글렀네

파도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아시아도 이제는 글렀네

앞서 등장한 연인 A의 형 D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일을 통해 나와 친분이 생긴 친구 F가 알고 보니 D와도 아는 사이였다. 세 명이서 커피나 한잔 하자며 만난 자리. 어쩌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야기가 나오고, 한국 내에서 여성혐오 및 성평등이라는 의제가 각종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대중적으로도 다양한 차원에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갑자기 D가 한마디 한다.

“내가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네. 물론 아시아 국가에서 그렇게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좋지. 대부분 상황이 많이 안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안 좋을 테니까. 그런데 그게 너무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조심해야 할 거야. 지금 유럽을 봐. 여성스러움이라는 가치가 완전히 사라졌어. 여성스러운 여성이 실종됐다고. 바(bar)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어서 말이라도 한번 붙이려고 하면 얼마나 무섭게 대하는지 몰라. 그건 아니지. 생물학적으로든 뭐로든 그건 아니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럼 남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연애를 시작할 수가 있겠냐고. 그건 유럽 여성들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아. 결국 유럽 남성들이 중남미나, 아시아 여성들에게 몰려가도록 할 테니까.”

북미나 유럽이나 상황이 비슷하다며 D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F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번에는 따로 기분을 챙겨야 할 사람도 없겠다, 지난번에 못했던 것까지 몰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생각하는 ‘여성스러움'이라는 것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스러움'을 타고 나는 거라 설마 믿고 있는건지, 너무나 가변적이고 문화적인 요인이라는 생각은 못 해보았는지. 한 예로 1950년대 전까지만 해도 핑크가 소위 ‘남아를 위한’ 색이었다는 건 아는지.

여성스러움이라는 가치에서 수혜를 보는 사람은 누구이며 이게 여성에게는 어떤 구속으로 작용하는지, 오히려 여성은 저렇게 수동적으로 항상 남성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당신들의 연애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은 못 해보았는지. 그 후 따로 만난 F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자리를 뜬 후에 D가 농담처럼 했다는 한마디를.

XX를 보니 아시아도 이제는 글렀다. 큰일이다.

여기서 D와 F에게 ‘연애대상으로서의 아시안 여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연애 시장에서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다. 글로벌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OkCupid1)한 조사 결과를 살펴 보자.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선호도뿐만 아니라 연애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종별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다. 

위에서도 보이듯이, 연애 시장에서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선호도는 상대적으로 높으며 백인 여성들이 백인 남성을 ‘빼앗아가는' 아시안 여성에 대해 토로하는 불만 같은 것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농반진반으로 등장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시안 여성이 동안이고 몸매 관리를 잘 해서 남성들이 선호한다는 이야기나, 이들은 남성들에게 잘 보이고자 소위 ‘비굴'하게, ‘순종적으로' 굴어서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편견 섞인 발화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아시안 여성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당사자인 아시안 여성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아시안 여성이 좋다'는 말 그 기저에 깔린 인종 및 특정 문화권에 대한 고정 관념과 기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가정들 때문이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 고충을 토로하는 아시안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좋아해 준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수많은 폭력적인 외침들에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Siren의 공동창업자 Susie Lee의 허핑턴포스트 기고글 한 단락으로 답변을 대신한다2).

아시안 여성으로서, 난 아시안 여성을 노리는 이들을 아주 멀리서부터 감지해낸다. “오... 아시안 여자들은 정말이지 신비스러워요", “저는 예쁜 중국 여자들을 좋아해요" (이봐요..난 중국인도 아니라고요)
(중략)
우리는 지금 부정적이며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고정 관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고정 관념은 그릇된 합리화와 결합하여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 지레짐작하게끔 하는 잠재적인 역할을 한다. "좋은 걸 어쩌냐"는 식으로 우리가 가진 내적, 외적 편견을 부추기고 변명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버려야 할 관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관념은 우리 자신이 타인들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하듯, 동일한 가치를 지닌 한 개체로서 타인을 대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 Yes, Even Online Dating Has White Privilege, HuffPost, 2016/01/25

나 알고 보니 인기남이더라고

앞에서 D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던 F는 최근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데다, 그 전 회사보다 대우도 더 좋아져서 F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마침 F의 친척이 한국에 있기에 F는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우선 지내면서 일을 하고, 이렇게 일을 하는 생활이 익숙해지면 한국을 시작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난생처음으로 둘러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F가 한국에서 지낸 지 석 달이 다 되어갈 때쯤, 한국에 잠깐 들른 김에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F는 쉽게 말해 숫기가 없는 너드 스타일이었는데, 다소 사람을 대하는데 서투른 감이 있긴 해도 한 마디로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F가 말을 하면 할수록 뭔가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글쎄 하루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말이지, K-pop 걸그룹 멤버같이 생긴 스텝이 내 자리로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이 냅킨을 놓고 갔단 말이야. 이거 좀 봐봐.”

F의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남겨진 그 냅킨에는 ‘너 참 잘 생겼다, 나는 한국어를 알려주고 너는 영어를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 영어로 쓰여 있었다. ‘난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데!’ 하며 F가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 그 사진을 공유하고 자신이 얼마나 여기서 인기가 많은지 자랑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략 결이 비슷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F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F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고, 눈에 띄게 들떠 있었으며, 이전에는 전혀 없던 거들먹거림이 대화 구석구석에서 묻어 나왔다.

“난 내가 여대생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와, 알고 보니 나 인기남이더라고. 내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게 아니었어.”

이후 묘하게 떨떠름한 기분으로 연인 A에게 그 날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F를 이전부터 알고 있던 A는 그거 병이라며, F도 결국 ‘그 병'에 걸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F는 그 사람들이 자신을 한 명의 동일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란 걸 지금 모르는 상태야. 자신의 성격도, 그 무엇도 아닌 완전히 자신의 얼굴 색깔에 따라 평가받고 대우받는 건데 그 모든 게 철저하게 인종에 따른 행동들인 걸 전혀 모르는 거지. F는 그 전까지 여자친구를 한 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고 해외에서 장기체류를 해 본 적도 없어. 그러다가 한국에 오자마자 사람들이 다들 잘 해주고 누구는 또 잘생겼다고 해주니,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지.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멍청한 애들이면 영영 못 벗어나는 거고. 원래 그래.”

A는 자신도 처음 아시아에 왔을 때 사실 지금의 F와 같은 생각들을 한 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고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웃기는 이야기인 거 알지만, 고국에서는 자신이 그냥 수많은 일반 남성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아시아에 오니 사람들이 먼저 (대부분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고, 자기 자신은 고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전혀 바뀐 게 없는데 만나게 되는 여성들의 태도에서 확연히 다른 부분들이 보이고,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면서 머리로는 이게 내 피부색 때문일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되면서도 기분이나 나오는 행동은 그렇지 않게 된다고도 했다.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정리된 이 ‘병'의 당사자들이 보이는 증상들로는 고국에서는 (감히) 하지 못했거나 하지 못할 행동이나 말을 생각 없이 더이상 눈치 보지 않고 하게 되는 것, 과도한 자신감 및 자존감 고취, 자기객관화 능력의 현저한 저하, 무례함 및 플러팅의 생활화 등이 있다. 한 줄로 요약하면 Quartz의 다음 기사 제목 정도가 될 거다.

내가 마치 신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I almost feel like a god.)

Quartz의 이 기사에는 연애에서 비즈니스까지, 인도에서 백인 남성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얻게 되는 여러 특권 및 특별 대우를 다룬다. 기사에서 한 백인 남성 인터뷰이는 잠재적 고객사와의 미팅에서 백인 남성이 등장하는 순간 상대방이 자신들을 매우 중요한 사람들로 인지하는 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이런 회의나 거래 현장에 등장할 때마다 항상 결과가 눈에 띄게 좋았으며, 이건 나의 능력이 좋아서가 아닌 내가 서구권 출신 남성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역시 함께 덧붙인다. 이 기사의 글쓴이는 기존의 경제학이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이러한 인종, 민족성, 젠더와 같은 요소들이 채용과 거래 같은 경제적 활동에 미치는 영향 및 기회 부여의 차이 등을 경제학 연구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자신이 가진 백인 남성의 특권을 그나마 자각이라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도대체 혜택을 받고 있는 게 뭐가 있냐며 분노하는 백인 남성들 역시 반드시 만나게 된다. 역차별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실제로 이 토픽을 다루는 기사나 블로그 글 등에는 백인 남성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분통을 터뜨리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맞을까 봐 겁이 나서 흑인들이 사는 동네 쪽으로는 가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내가 가진 특권이 있다는 거냐', ‘아시안들은 훨씬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백인들보다 감옥에도 덜 간다더라, 이런데도 백인이 누리는 특권이 있다고? 제발 말이 되는 소릴 좀 해라', ‘내가 지금 한 아시아 국가에서 10년째 살고 있는데 난 여기서 항상 소수자고 여기 사람들은 나를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대해주지도 않는다. 무슨 특권 같은 소릴 하고 있냐'.

마치 한국 남성들에게 자신들이 생득적으로 취득한 특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나오는 반응들과 무섭도록 똑같기에, 역시 착취의 민낯은 한 틀에서 찍어낸 듯이 똑같다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게 된다.

다음 글은 한 항공기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떻게 A와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1) Tinder가 나오고 주춤하는 기색이 없지 않아 있으나 여전히 건재하고, Match.com 등과 더불어 세계 최대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중 하나로 꼽힌다.

2) Siren은 투자 유치 실패로 인하여 아쉽게도 최근 서비스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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