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10. 노래, 그리고 기억

생각하다

다시 줍는 시 10. 노래, 그리고 기억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핀치 웹툰 중 이민 작가의 <오늘 하루, 가장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웹툰이 있다. 지난 20회의 제목은 ‘기억'.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만 웹툰을 읽고 나니, 눌러 놓았던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학관에서 철학 전공 수업을 듣던 때였고,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이 있어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교수님도 학생들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지냈던 그 날이었으나,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 어떠한 어수선함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며 계속 올라오는 속보들을 읽고 있었다. 옆사람과 조그맣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걱정 섞인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오니 저녁 뉴스를 보며 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 매일 아침 마다 엄마는 울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억하는 불편함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매해 4월 16일이 어떠했는지가 떠올랐다. 내게 4월 16일마다의 기억들이 쌓이고 있었다. 기억들로 인해 나의 마음은 무척 슬프고 우울해졌다. 나는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엔 세월호 참사 자체의 무게와 그로 인한 슬픔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기억하다’라는 행위 자체를 무척 불편해하고 있었다. 이민 작가의 웹툰을 계기로, 스스로가 과거를 무척 혐오하며 과거를 기억하는 일을 버거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니 얼마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바람이 부는 봄 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저녁 식사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 받은 후, 친구는 자연스레 함께 보냈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했다. “추억팔이 말고 할 얘기 없어? 나 과거 얘기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아.” 친구는 내게 화를 냈다. “대체 왜 그렇게 과거를 지우고 없애 버리려고 하는 거야? 네가 그럴 때마다 네 과거를 함께 했던 나도 지워지고 사라지는 기분이야. 너 그럴 때마다 나 너무너무 서운해.” 친구의 말마따나 나는 과거를 지우고 없애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본 공연과 영화 티켓을 수시로 버리고, 정성이 담긴 편지와 선물을 최대한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치워버리면서. 친구에게 사과했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홀로 생각했다. 대체 나는 왜 이러는 것일까?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는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들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를 폭력적으로 대한 일, 선생님과 선배로부터 모욕이나 수치를 당한 일, 친구나 애인과 싸우거나 헤어진 일. 과거에 힘들었던 기억들은 현재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과거 자체를 지우고 없애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과거로부터 달아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러한 믿음으로 과거로부터 열심히 달아나왔다. 세 번째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과거의 기억들은 언제나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등의 감정을 일으킨다. 그러한 감정들은 내게 영향을 끼쳐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나는 나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싶기에, 최대한 과거와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그로부터의 감정들을 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취약한지

1995년에 세상에 나온 이수명의 첫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타인과 세상에 취약하고 헐거운지를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는 <슬픔>으로 시작한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 비로소 슬픔은 완성된다./한 고통에 묶여 다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슬픔>) 우리의 슬픔은 타인의 위로를 요하며 타인의 위로가 함께할 때에만 완성된다. 또 타인으로 인해 사라진 슬픔의 자리에는 타인으로 인한 새로운 고통이 자리하게 된다. 시인은 우리 존재의 취약성을, 우리 존재의 지극한 슬픔으로부터 발견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수명의 시편 <너의 노래>는 너를 사랑하여 너의 노래를 품고 잠이 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밤마다 너의 노래를 품고 잠든다.” 그런데 너의 노래는 나를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나를 길 잃도록 만든다. “너의 노래는 인적이/끊긴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벌판 한가운데로. 나는 신발/이 벗겨지고 나는 날마다 같은 지점에서 길을 잃는다.” 너의 노래를 품고 잠드는 일은 너를 사랑하여 너를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혼란과 고통을 불러 일으킨다. 또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온전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타줄이 모두 끊어졌다. 너의 긴 손가락들도 끊어져 눈처/럼 녹아 흘러갔다.” 아무리 밤마다 너의 노래를 품고 잠들어도, 어떤 밤에는 너의 기타 줄이 끊어지고 또 어떤 밤에는 기타를 매만지던 너의 긴 손가락들도 끊어진다. “너의 노래는 고아가 되어간다. 밤마다 너의 노래는 노/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만두지 않을 것

기억이 내게 혼란과 고통만을 불러와도, 기억하는 일이 언제나 실패를 담보하고 있다고 해도, 시인은 너를 사랑하여 너를 기억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너의 노래를 벽/에 건다.” 너의 노래는 이제 나의 노래가 되고, 너에 대한 기억은 이제 나의 것이 된다. 그것은 나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여전히 비수를 꽂기도 한다. “밤마다 나는 치유된다. 밤마다 너의 노래는 벽/에서 걸어나와 한 줌의 재가 된다. 밤마다 내가 품고 잠/든 것이 마치 비수가 아니라는 듯이.” 이수명은 아주 취약하고 헐거운 존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일을 지속함으로써, 결국은 그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힘을 주어 누군가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기억해야 너의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되는 것일까. 언제쯤에야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 용기를 내고, 과거와 과거의 기억들을 감당해내고, 결국엔 과거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지난 세월호 4주기에는 광화문 문화제에 찾아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문화제는 거의 끝물이었다. 사람들은 <내 영혼 바람되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갖는 무게를 생각하며 노래의 가사를 함께 읽어 보고 싶다. “그곳에서 슬퍼 마요/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하늘한 가을비 되어//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새가 되어 날아올라/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부드럽게 빛난다오//그곳에서 슬퍼마오/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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