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4.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생각하다육아

엄마, 본다 4.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Ah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사실 나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양육서를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어쩐지 양육서는 일종의 자기계발서 같고, 나는 그런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 독자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상황과 맥락을 그럴싸한 몇 마디로 퉁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을 테고 전문가들의 의견과 조언이 필요한 영역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런 내게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 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결코 떠올릴 수 없었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의 가해자 딜런 클리보드의 엄마 수 클리보드가 쓴 책이다. 재학생이었던 딜런과 에릭이 총기로 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콜럼바인 총격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내 총격 사건으로 여겨진다.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건 팟캐스트 광고를 통해서였다. 제목만 듣고도 대략 내용은 짐작이 갔지만 막상 서점에 가서 책의 실물을 보고는 좀 멈칫했다. 이 책의 표지는 다름아닌 딜런과 수의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금발머리 남자아이가 손에 장난감을 쥐고 있고 그 옆에서는 엄마가 턱을 괸 채로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십 수년 후에 그 남자아이가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되는지, 그래서 그 엄마가 어떤 책을 쓰게 되는지를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사진이다. 아마도 그것이 양육자로서 내가 갖고 있는 가장 거대한 공포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양육이 정말 어렵다고 느끼는 건 가끔 이게 그냥 ‘랜덤박스’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딜런의 가정은 평범하고 화목했다. 수는 천성이 너그럽고 애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아빠인 톰도 다정다감했다. 특히 수는 대학에서 장애인들을 가르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컸고 아이들을 윤리적으로 키우기 위해 애썼다. 둘은 모범적인 양육자였다. 수가 괴로웠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딜런이 아이를 방치하고 (적어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괴물이라고 믿고 싶어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딜런은 흔히들 말하는 ‘문제아’ 타입도 아니었고 그런 배경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학교에서도 큰 문제는 일으킨 적 없었던 아이가 어쩌다가 친구들과 선생님을 죽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걸까. 이 책은 사실상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한 수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결국 누구도, 수 역시도 완벽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인풋과 아웃풋이 분명하지 않고 어떤 결과도 장담은 커녕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무래도 그런 일인 것 같았다.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괴로운 기록이었지만 아이를 대할 때 지켜야 할 태도나 원칙같은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말로 필요한 책이었다. 딜런의 사례는 극단적인 케이스긴 하지만 양육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상상력, 조금 바꾸어 말하자면 내 아이가 (끔찍한 일을 저지를 정도로) ‘취약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여기까지 온 양육자들은 꽤 많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후에도 그 아이의 보호자로, 양육자로 남는 것이다. 수는 딜런이 총격사건의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제발 아들이 빨리 죽게 해달라고, 조금이라도 빨리 자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절실했던 바람이 그녀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다. 여전히 딜런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딜런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세상에는 좋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잔혹한 책에서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 말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내가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모르는 게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았고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는 사랑의 새로운 단면들을 발견하게 됐다. 나는 ‘당연하게도’ 여느 부모들처럼 나의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오죽하면 다음 생에도 이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겠나. 하지만 이 사랑을 아이가 ‘알게’ 되는 건, 그래서 나의 사랑이 아이에게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주는 건 전혀 다른 문제란 생각이 든다. 

수와 톰 역시 딜런을 무척 사랑했다. 단순히 무관심하지 않은 걸 넘어서서 아이에 대한 애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딜런은 자기파괴적 충동에 시달렸고 일기에는 자기비하가 가득했다. 세상은 너무 공허하고 나는 쓸모없다는 인식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어긋나버린 걸까. 부모의 사랑이 어째서 조금도 전달되지 않았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정말 모르겠다. 나 역시 부모가 나를 굉장히 사랑해주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깊게 느낀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댈 수 있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히 그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절대로 다 알 수도 이해할수도 없는 어떤 일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아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수는 자신이 17년간 딜런을 키운 모든 순간들을 돌아보며 그 때 이렇게 했었다면, 저렇게 했었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뼈아픈 후회를 한다. 나는 그녀가 가해자가 된 아들과 가해자의 엄마가 된 자신의 운명을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콜럼바인 사건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과 충격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가졌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노력은 숭고하고 이 기록은 분명 엄청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후회나 제안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가 했던 이 말이 계속해서 맴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아이에게) 사람은 누구나 선해질 능력이 있고 나쁜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겠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선한 면과 악한 면 둘 다를 사랑해야 한다고요.”

나는 과연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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