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6. 분만에서 단유까지, 내 몸에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나(上)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6. 분만에서 단유까지, 내 몸에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나(上)

Ah

일러스트레이터: 해일

태동은 경이로운 경험이었고 아름다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낭만은 딱 거기까지다. 임신과 출산에 더 이상의 낭만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아이와 내 몸을 나눠 쓴다는 것은 내 몸을 지속적으로 변형시키는 일이었고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은 내 몸에 여러 가지 타격을 입혔다.

나는 자연분만을 했다.

 자연분만을 한 건 부끄럽게도 내가 별다른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결정’이나 ‘선택’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 나는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를 비교해 본 적도 없고 그럴 만큼의 정보를 갖고 있지도 못했으니까. 그저 수술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막연히 제왕절개가 더 두려웠고 산모가 특별히 의견을 내거나 의료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자연분만’이 디폴트인 분위기도 거들었다. 나는 많은 산모들과 비슷하게 '되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수술을 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걸 ‘입장’이라고 쳐줘야 할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정바당은 병원에 도착한 지 정확히 네 시간 만에, 내 뱃속에서 나왔다. 예정일을 3일 앞둔 날이었다. 병원에 갔을 때 이미 자궁문이 4센치나 열려있었고 진행은 빨랐다.(*분만 시점에는 10센치 정도가 열린다.) 초산 치고 수월한 분만이라고들 했다. 보통 열 시간 전후, 길게는 하루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게 되어 응급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에 비하면 좀 나았다고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걸 정말 수월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네 시간 동안 나는 야만을 경험했다. 

그 방에서 나는 말 그대로 시방 위험한 짐승이었다. 온 몸을 뒤틀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울부짖었다. 진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는 마치 배 속에 거대한 돌덩어리가 꽉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내 배를 갈라서 그것들을 꺼내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두려웠던 건 누구도 나를 그 고통에서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 나는 간호사와 남편을 붙잡고 너무 아프다고, 내진(*질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자궁 경부의 길이, 경도, 태아의 골반 진입 정도 등을 파악하는 진찰법) 좀 해달라고, 무통은 이제 정말 못 맞는 거냐고 묻고 애원하고 짜증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이건 그저 내가 견뎌야 하는 일이라는 걸. 끝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물고 참는 것 뿐이었다.

사실 분만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그 일련의 시간을 ‘야만’이라고 기억하는 건 분만실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 중 정확히 내가 의사를 표현했거나 내게 정확히 고지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꼭 산부인과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환자와 의료인의 관계엔 ‘정보의 비대칭성’이 내재하지만 분만은 나의 안일함까지 더해져 더 심각한 지경이 되었다.

"안 맞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가장 타격이 컸던 건 ‘무통주사’다. 임신 기간 내내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던 무통주사를 척추측만증 때문에 맞지 못했다. 문제는 내가 과거의 측만증 병력을 얘기하자 간호사들이 ‘마취과장님께 물어보고 알려주겠다’는 얘기만 하고 그 후로 어떤 피드백도 해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나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때가 되면 놔 주리라 기대를 하고 있었다. 참고 참다가 물어봤던 내게 간호사는 “안 맞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이미 지났는데.”라고 얘기했고 나는 그때부터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불가능을 통보하면 내가 너무 절망(?)할 거라는 걸 알았던 분만실 크루의 전략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래도 나는 환자이고 당사자이니 사실대로 알려주고 설명해줘야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흔히 출산의 3대 굴욕으로 불리는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도 그랬다. 나 역시 분명히 진통 중간에 회음부 제모와 절개를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무도 내게 나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인터넷에서 다른 산모들의 출산 후기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런 일들을 겪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점이 가장 경악스럽다. 내 병원이나 담당의사가 특별한 케이스도 아니었다. 산모들은 대부분의 정보를 검색창과 인터넷 맘 까페에서 얻는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일테고,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특성도 한몫 하는 거겠지만 대부분 잔뜩 희화화된 후기들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것도 임산부의 몫이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일까. 게다가 나는 막판에 힘을 거의 주지 못했다. 과호흡이 와서 손발이 저렸고 호흡은 계속 토막났다. 결국 온전한 내 힘만으로는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간호사 둘이 침대로 올라와 내 배를 눌렀다. 아이가 초음파로 봐오던 것보다 훨씬 컸고 나는 힘을 잘 주지 못하는 타입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정말 무자비한 그림이다. 나는 정말로 성인 여성 두 명이 내 위로 올라오는 일 같은 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모두 분만실에서 비일비재한 일들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성인으로서 내 몸에 대한 많은 결정권을 행사하던 나는 정작 ‘분만'이라는 가장 드라마틱하고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배제되어 있었다.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건, 남편이 아이를 신생아실에 인계하러 가고 나홀로 분만실에 남았을 때다. 후처치를 하고 고여있는 피를 빼내는 중이었다. 간호사는 내 아랫배를 꽉꽉 눌렀다. 아,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이건 뭐랄까, 거의 고문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지혈이 잘 되지 않는다며 간호사는 여러번 피를 찍어냈다. 다행히 몇 번 만에 지혈이 되었고 간호사는 내게 조금만 기다리면 보호자가 올 거라고 했다.

그제서야 분만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 팔에 주렁주렁 매달린 바늘과 그 끝에 달린 수액 주머니들, 내 배위에 달았던 태동검사기와 갓 나온 아이를 씻겼던 작은 욕조, 아이의 발도장을 찍었던 스탬프패드, 피와 양수 등으로 얼룩져 분만 후 조산사 분이 갈아 주었던 시트 같은 것들이 보였다. 졸음이 밀려왔다. 비행기 안에서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보니 완전히 다른 도시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노곤하고 정신이 없는데 잠결이라 그런지 으슬으슬하고 추웠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방금전까지 아주 보드랍고 따뜻했던 아이가 내 가슴팍 위에서 쌔근쌔근 잠자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너무 추웠다. 이렇게 얼어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침대 위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담요를 갖다달라고 해야겠단 생각을 줄곧 했지만 몸을 까딱할 수가 없었다. 다리에 묻어있던 피들이 말라붙는 게 느껴졌다. 무서웠다. 아무도 영영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과 조산사가 돌아와 나를 안다시피 해서 휠체어에 내려줬을 때에야 나는 안심했다. 너무 추워요, 이상해요. 너무 추워요. 라는 말을 반복하는 내게 조산사는 내 손을 잡아주며 괜찮다고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제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 나이든 여자의 손을 만졌을 때에야 내 안에서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창밖을 보라고,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다고. 졸음이 쏟아졌지만 그녀가 내게 하는 말들을 입 안에서 필사적으로 굴려가며 곧게 앉아있으려고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병실에 온 후 나는 바람빠진 풍선 같았다. 

간호사가 와서 몇 시까지는 꼭 소변을 보고 그 후에 전화를 걸어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냥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언어와 문명의 세계로 돌아올 시간이. 화장실까지 걸어갈 힘이 없어 남편이 나를 안다시피해 데려갔고 나를 변기에 앉혀주고 팬티까지 벗겨줬다. 다리 사이는 아무렇게나 닦아낸 피로 얼룩져있었고 산모 패드에도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내가 아무리 이 남자와 수백 번 넘게 섹스를 하고 온갖 밑바닥을 다 본 사이지만 거기에 이런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출산 후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나오자마자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묻곤 했다. 어떤 감동, 환희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나 역시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 그런 압도적인 감정은 없었다. 나는 울지도 않았고 정말 끝났건지, 아기가 무사히 나왔다는 건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그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더 이상 턱이 부러질 것 같이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제 이 방을 나가 원래 내가 속해있던 곳으로 갈 수 있단 생각에 살았다 싶었다. 내 몸에 벌어질 일들에 나는 너무 안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기 반성을 한 것도 지독한 출산후유증에 시달리며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였다.

내 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분만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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